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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채널 어디를 돌려도 여성은 '민폐 김치녀'

최근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논란이 터져나왔다. 한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사건에 여성혐오 논란이 터진 건 그만큼 이 사안이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피의자가 여성을 노렸고 경찰에게평소 여자들에게 무시당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별개로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사건 원인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가능했지만 사람들은 여성혐오 문제에 집중했다. 여성혐오 이슈가 이미 일촉즉발의 상태로까지 커져있었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여성들이 강남역으로 모여들어 추모 집회를 열었고 이런 움직임이 지방 도시로까지 확산됐다. 그러자 거기에 반대하는 집단이 출동해 현장에서 물리적 폭력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 사태는 여성혐오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뜨거운 이슈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이렇게 정신질환자 묻지마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논란 사태가 터질 정도로 여성혐오 이슈가 끓어오르는 과정에서 대중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미디, 예능, 가요, 드라마, 광고, 인터넷 문화 등 대중문화의 전 영역에서 여성혐오가 등장했고, 그것이 사회의 여성혐오에 영향을 미쳤다. 여성혐오가 대중문화 속에서 너무나 일상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고조되어 여성혐오 이슈에 대한 민감성도 더 커졌다. 이렇게 민감해진 정서도 이번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추모 열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코미디에 만연한 여성혐오 -

 

코미디 프로그램은 여성혐오나 여성 대상화가 글자 그대로 만연한 부문이다. <개그 콘서트> 등의 프로그램은 과거부터 여성의 외모와 몸매를 웃음거리로 삼아왔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2015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사업에서 <개그 콘서트>가 대표적인 성차별 프로그램으로 꼽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못 생긴 여성이나, 뚱뚱한 여성은 무가치하고 막 대해도 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희롱, 인격적 모멸은 물론이고 폭력까지 가할 때도 있다.

 

강자를 웃음거리로 삼는 것은 풍자인데 반해, 약자를 웃음거리로 삼는 것은 조롱이고 비하다. 한국 코미디는 강자보다는 주로 약자를 웃음거리로 삼는다. 한국의 강자들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집권세력이 자신의 희화화를 어느 정도 용납했지만 새누리당 집권 이후 코미디계에는 북풍한설이 불어닥쳤다. 감히 윗 분들을 풍자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만만한 약자를 조롱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이는데, 자극적이면서 만만한 약자가 바로 여성이었다. 그래서 여성을 조롱하는 것이 우리 코미디의 주요 소재가 된 것이다.

 

강자들의 압력뿐만 아니라 코미디언과 제작진의 소양 부족도 조롱개그의 만연에 영향을 미쳤다. 인권이나 양성평등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툭하면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비웃는 내용을 웃기다며 내보내는 것이다. 코미디언들의 소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옹달샘 사태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 등으로 이루어진 옹달샘의 팟캐스트 방송이 논란이 된 사건이다. 당시 그들은 개같은 X' 등의 욕설을 하며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한테 안돼 머리가라는 이야기와 함께, 여자가 남자와 소주 한 잔 함께 먹었다고 하면 그게 같이 잤다고 고백하는 거라는 이해하기 힘든 주장까지 했다. 함께 술 먹는 정도를 성관계에 대한 허락으로 받아들이고 성적인 시도를 하는 일부 남자들의 편견이 담긴 논리였다. 아무리 팟캐스트라고 해도 이런 말들을 마이크 앞에서 할 정도로 코미디언의 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코미디 속 여성혐오 흐름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2009<개그콘서트>남보원코너였다. 이 코너는 남성인권보장위원회를 표방하면서 이 시대에 약자 신세로 떨어진 남성들을 대변한다는 내용이었다. ‘영화표를 남자가 샀으면 팝콘값이라도 여자가 계산하라’, ‘왜 비싼 호텔커피를 먹으며 계산서는 남자에게 맡기냐는 등의 대사로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는 비루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마지막엔 여성여러분, 그렇게 살아서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라고 조롱하며 끝냈다. 여기에 남성 시청자들의 격한 환호가 이어졌고, 이 코너를 비판하는 글에는 적대적인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개그콘서트>에선 그후 난 김치 먹는 데 성공해서 김치녀가 될 거야”, “오빠 나 명품백 사줘. 신상으로. 아님 신상 구두이런 식의 대사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 여성을 싸잡아 비하하는 김치녀코드가 그대로 코미디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웃찾사>남자끼리코너도 노골적인 여성혐오 콘텐츠인데,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식당에 남녀 커플이 등장한다. 여성이 한껏 밉살스러운 태도로 한정식이나 떡갈비를 사달라고 떼를 쓰면 남자친구는 주머니 사정 때문에 곤란해 한다. 이때 식당 주인이 여성을 골탕먹이자 식당 안에 있는 남성들 전원이 스크럼을 짜고 통쾌해하는 식의 내용이다. <코미디 빅리그>오지라퍼코너에서도 여성이 남성에게 많은 것을 귀찮게 요구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 예능과 가요계 -

 

예능에서 여성들은 언제나 보조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과거에도 그런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훨씬 강화됐다.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역할은 남성 출연자들이 도맡아 하고 여성은 미모, 섹시함, 애교 등으로 분위기만 살린다. <라디오 스타>에선 애교를 요구당한 카라의 강지영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세바퀴>에선 현아가 미성년자였던 시절, 현아의 섹시 댄스를 감상하는 40~50대 아저씨 패널들의 표정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주요 프로그램에서 남성 MC는 한번 자리 잡으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는 데에 반해 여성 MC는 주기적으로 갈린다. 물론 더 어린 여성으로 말이다.

 

요즘 큰 인기를 얻는 리얼리티 생고생 예능에선 여성들이 남성의 도움을 받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식사부터 잠자리까지 모두 남성들에게 기대는 모습이다. 이런 구도가 여성들이 남성의 등골을 빼먹는 존재라는 의식을 재생산한다. 과거 예능 토크쇼에 신상녀라는 캐릭터가 수시로 등장하면서 여성이 명품백에 몰두하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생산하기도 했다.

 

<SNL 코리아>에선 자율주행차 이슈를 다루는 중에 "이게 상용화가 되면 '김여사' 문제는 없어진다"라는 대사가 등장했다. 김여사는 운전에 미숙한 여성을 일컫는 말로, 여성을 싸잡아 비하하는 표현이다. 네티즌은 잘못 주차된 차량이나 황당한 사고 사진을 놓고 무조건 김여사를 조롱한다. 운전자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이원일 셰프가 잘못 주차된 차량 사진을 SNS에 올리곤 대한민국 김여사님들 파이팅!!ㅋㅋ라고 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주차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여성을 조롱한 사건이었다. <SNL 코리아>는 바로 그러한 여성혐오 놀이를 그대로 예능소재로 차용한 것이다.

 

가요계에선 요즘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는 힙합의 랩에 여성혐오나 성적 대상화가 자주 등장한다. <쇼미더머니>의 블랙넛이 쌀 때까지 참아/거세게 저항하는 그녀의 몸을 붙잡아/난 더 쾌감을 느껴 기왕 이렇게 된거 난 끝까지 즐겨/그리고 xxxx 후에 그녀를 죽여라고 성범죄를 암시하는 가사를 써서 논란이 됐고, 위너 송민호의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이현준의 넌 속사정하지만 또 콘돔 없이 때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 난자같이같은 가사는 여성을 남성의 성적 행동을 기다리는 존재로 묘사했다.

 

인터넷에 나도는 여성혐오 정서를 그대로 가사로 쓴 브로의 <그런 남자>가 음원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여기에 대항한다면서 여성 입장으로 썼다는 <그런 여자>라는 노래까지 등장했으나 이 노래 역시 여성혐오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 여성은 민폐 김치녀 -

 

멜로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언제나 남주인공에게 기대는 존재로 등장한다. 보통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에게 기댄다. 삼각관계 설정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남성 두 명에게 기대는 모습에서 여성이 민폐적 존재라는 의식이 강화된다. 주말드라마에선 중년여성이 아들 애인의 뺨을 때리거나 물을 뿌리며 표독한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 여성이 배우자의 조건을 따지거나, 자식 배우자의 조건을 따지며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이런 것도 김치녀 정서를 강화한다.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의 팔을 잡아끌면서 행동을 주도한다든지, 갑자기 뒤에서 껴안거나 벽에 밀어붙여 키스하는 등 일방적인 행위를 하고 여주인공은 그럴 때 사랑을 느낀다는 설정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내용이다.

 

광고계도 문제다. 읍료 하늘보리 옥외광고에선 날은 더운데 남친은 차가 없네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KFC 옥외광고엔 자기야 나 기분전환 겸 빽 하나만 사줘라는 문구가 있었다. 모두 김치녀 코드다. 이런 것들은 인터넷 여성혐오 유머 코드가 광고에 침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시작된 이래 여성혐오는 가장 중요한 유희장르였는데 주로 김치녀나 김여사 캐릭터에 맞는 이미지를 올려놓고 돌아가면서 조롱하는 양상이다. 청소년기부터 인터넷을 통해 그런 것을 접하다 아예 그런 사고방식이 내면화된다. 연예인이나 방송제작진도 이런 과정을 거쳐 여성혐오를 내면화하고, 그들이 그런 관념을 담아 콘텐츠를 만들면 그것이 다시 대중의 의식에 침투해 여성혐오를 더욱 강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무분별하게 표현되는 대중문화 속 여성혐오는 대중의 머릿속에 여성에 대한 악감정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