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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조영남 얼굴에 금칠해주는 미술협회

 

조영남 대위기다. 검찰이 기소했고 심지어 한국미술협회를 비롯한 11개 미술인 단체가 조영남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조영남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황당한 일이다. 예술 작업에 대해 어떻게 법이 심판한단 말인가? 해도 되는 예술 작업 형태를 법관이 정해주겠다는 발상이니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다음 중 예술 작업이 아닌 것은?’이라고 전 국민을 상대로 주입식 교육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조영남을 싫어할 순 있다. 욕하는 것도 자유다. 그의 작품을 쓰레기라며 난도질해도 상관없다. , 이것은 공론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법관이 끼어들어 쇠고랑을 채우고 처벌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예술인이라면 설사 조영남이 밉고 아무리 같잖아도, 공권력의 개입엔 연대해서 저항하는 것이 순리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미술계를 대표한다는 단체들은 조영남을 고소했다. 이미 검찰에게 난타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돌을 또 던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미술단체는 고소장에서 조영남이 관행 운운한 것이 미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했다. 조수 부분은 관행이라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팝아트 등 현대미술에선 그런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에 관행이라고 해도 되고, 전통미술에선 그런 일을 싫어하고 현실의 많은 작가가 직접 작업하기 때문에 관행이 아니라고 해도 된다.

 

현대미술에 이르러 손작업보다 사유를 더 중시하는 특성이 생겼다. 그러나 새로운 특성이 생겼다고 해서 전통적 흐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기시대가 도래해도 여전히 청동을 쓰듯이, 현대미술이 도래해도 전통적 미술 흐름은 살아있다. 그래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두 가지가 다 말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로 치고 받고 싸우고 저주하고 능멸하고, ‘사기 치는 현대미술 따위 개나 줘버려라라며 소리치든,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지만 경찰에 신고하는 건 이상하다. 예술계, 지성계가 공론장에서 논의할 사안이다. 미술단체들은 말하자면 반대의견자를 처벌해달라고 요구한 셈인데, 이야말로 미술계를 망신시킨 일이 아닐까?

 

미술단체들은 또, 고소장에서 대작자 송기창 씨를 화백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작한 사람에게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반면에 아이디어 주체인 조영남은 사기꾼 취급이다. 이것도 이상하다. 송기창 씨가 예술가가 되려면 남의 아이디어가 아닌, 자신의 아이디어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업활동을 해야 한다. 또 송기창 씨에게 정말 예술적 자의식이 있었다면 남의 아이디어를 손작업한 아르바이트 경력을 말하길 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송기창 씨는 자신이 조영남 그림을 그려준다는 걸 주위에 말하고 다녔고, 사건 발생 이후 인터뷰 보도에서도 자신의 손재주에 예술적 자부심을 가진 것처럼 알려졌다. 남의 아이디어를 형상화해주는 작업 정도에 예술적 자부심을 가지는 상황에 화백이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미술단체가 송기창 씨를 화백이라며 높인 것은 우리나라 미술단체가 송기창 씨 정도의 수준, 즉 손작업을 절대화하고 손작업에 모든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갖게 만든다. 그 결과 조영남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 조영남이 갑자기 한국사회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미술 실험을 한 사람처럼 비쳐지는 것이다. 미술단체가 조영남에게 금칠을 해주는 셈이다.

 

물론 이런 논리가 성립하려면 조영남이 분명한 예술적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작업을 했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을 따라 한 정도나, 아니면 정말 사기쳐서 돈 벌 목적으로 대작 행각을 벌였다면 정당화가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분명한 예술 의식을 가지고 자기식대로 작업했고 그것이 한국사회 상식과 충돌해 고소까지 당했다면 조영남의 예술적 지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검찰은 조영남이 대작한 그림에 가볍게 덧칠 정도 하고 싸인한 뒤, 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팔았다며 기소했다. 검찰도 손작업을 절대시하는 것이다. 전통적 관념이다. 고지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조영남 입장에선 조수를 쓴 것이 특별히 고지하고 자시고 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리고, 조영남이 조수를 숨겼다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사람들이 믿는데 최근 나온 이야기들을 보면, 송기창 씨가 한때 조영남의 집에 기거하다시피 했고 당시 조영남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송기창의 작업 모습을 자연스럽게 목격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림 구매 상담차 조영남 집을 방문했던 사람이 조수의 존재를 인지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말이 맞는다면, 조영남은 사람들이 조수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별 상관 안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일반적인 일이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작품 구매자들의 믿음과 기대를 중시한다. 구매자가 조영남이 실작업한 작품이라고 믿고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사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구매자들이 무슨 생각을 했건 간에 그들이 산 것이 현대미술품이고 제공된 물체에 현대미술의 특성이 있다면 사기가 아니다. 물론 정말 작정하고 속여 팔았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지금처럼 단순하게 심판할 일은 아니다.

 

검찰이 송기창 씨는 따로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조수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것도 이상하다. ‘다음 중 조수가 아닌 것은?’이라고 객관식 문제풀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미술가의 작업방식은 그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와 신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고, 조수활용 형태도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여지가 있다.

 

, 조영남이 자신을 전통미술이 아닌 팝아트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앤디 워홀을 거론한 것에 대해 검찰은, 조영남이 과거에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면피한다고 판단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2005년에 조영남이 스스로를 팝아트 작가라고 자부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2007년 인터뷰 기사에서도 조영남은 스스로를 팝아티스트라고 하며 앤디 워홀을 거론했다. 당시 그는 현대미술의 가치는 이름값이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손작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원래 조영남의 예술관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조영남이 자기는 작업하지 않으면서 여태까지 시늉만 했다는 믿음이 있는데,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는 정황이 있다. 조영남은 가수로 유명해진 후 그 유명세를 이용해 아트테이너 활동한 사람이 아니라, 커리어의 출발점에서부터 미술을 했던 사람이었다. 1973년에 첫 개인전을 했고, 그후 미국에서도 전시를 했다. 수십여 년에 걸쳐, 스케줄이 없을 땐 항상 집에서 미술 작업을 했다고 조영남은 주장한다. 2007년엔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도 냈다. 미술에 상당히 진지하게 천착한 흔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사기꾼이라는 단 한 마디로 그렇게 쉽게 일축할 수 있을까? 그 책에서 조영남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몸 전체로 팝아트와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이 나를 풍요롭게 하고 지금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양말짝이 그것 자체로 위대한 예술이라는 팝아트의 정신은 나를 철학적으로 안락하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조영남을 싫어하건 욕하건 자유다. 하지만 지금은 검찰이 그의 작업방식이 틀렸다며 기소하고, 미술단체 고소까지 들어간 상황이다. 조영남에게 정말로 예술적 알맹이와 자의식, 신념 등이 있고 확실하게 자신의 예술작업을 한 게 맞는다면, 그것을 가지고 공권력이 처벌하는 것은 이상하다.

 

연예인 조영남은 역사에 남을 일이 없겠지만, 사회상식과 동떨어져 사법적 고초를 겪은 미술가 조영남과 그를 둘러싼 소동은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할 수 있겠다. 정말 그에게 예술적 알맹이가 있다면 말이다. 미술단체와 함께 검찰도 조영남에게 금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