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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이영학 사이코패스 광풍이 위험한 이유

어금니아빠이영학의 사이코패스 점수가 25점에 달한다고 해서 화제다. 25점이면 사이코패스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해당한다. 강력범들 중에서도 상위 10~15% 수준이라고 한다.  

이것은 PCL-R(Psychopathy Checklist-Revised) 테스트를 통해 나오는 점수다. 거짓말의 능숙함, 타인을 수단으로 간주함, 죄책감 결여, 공감능력 결여, 무책임성 등의 항목들로 조사해 점수를 내는 방식이다. 미국은 30점 이상부터 사이코패스로 보는데, 우리나라는 24~25점 정도를 경계선으로 본다. 미국과 한국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기준점을 보정한 결과다

인터넷을 통해 구체적인 항목들을 찾아볼 수 있어, 한때 자가 사이코패스 진단이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사와 함께 심층분석이 병행돼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분석 없이 혼자서 항목 체크만 하는 방식은 무의미하다. 주위 지인들에게 항목체크를 시키고 단순히 그 결과만 가지고 사이코패스 낙인을 찍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사이코패스는 우리에게 아주 낯선 단어였다. 2003~2004년에 20여 명을 살해한 유영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영철의 사이코패스 점수는 38(40점 만점)에 달했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강호순 사건이었다. 유영철보다 강호순에게 더 사이코패스적 특성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는데, 강호순의 점수는 27점으로 유영철보다 훨씬 낮았다. 이런 점수를 맹신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조두순은 29, 팔달산 토막살인범 박춘풍은 16점이었고, 과거 남편들을 연달아 살해하고 친족들까지 실명시킨 엄인숙(일명 엄여인)40점 만점이었다. 엄인숙과 강호순 모두 매력적이고 친근한 성격이었다. 강호순은 모르는 여인을 손쉽게 차에 태울 정도로 신뢰감을 주는 능력과 언변이 뛰어났다.

 

강호순은 성적 욕구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을 네 번이나 했고, 네 번째 부인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과 상실감 때문에 여성에게 집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신뢰성이 너무나 떨어져서, 이 말은 사이코패스가 꾸며대는 환상적 거짓말로 여겨진다

이영학도 자기 부인 사망의 충격 때문에 딸 친구에 대한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강호순이 범행 이유로 부인의 사망을 내세웠던 것과 비슷하다. , 부인의 자살이 이영학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폭행의 흔적, 자의로는 보기 어려운 문신 등을 봤을 때 부인이 정말 이영학을 그렇게 절절히 사랑했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호순이 하는 말을 하나도 믿을 수 없다고들 했었는데, 이영학의 말도 거의 그 수준인 것 같다. 부인의 시신을 인형처럼 다루고, 부인이 사망한 순간에 딴청을 피웠던 사람이 부인에게 눈물의 동영상을 남긴 것을 보면 거짓을 표현하는 능력이 그야말로 탁월해보인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괴물처럼 여겨진다.

 

2009년 강호순 재판 이후 사이코패스 광풍’, ‘사이코패스 신드롬이라는 기사가 나왔을 정도로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대중화됐다. 이때부턴 사이코패스 단어가 너무 남용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당시 보수진영에서 노조 등을 사이코패스라며 공격하기도 했다. 웬만한 강력사건이 벌어지면 범인을 사이코패스로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다. 나중엔 로맨틱 드라마에서까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의 캐릭터들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악인이면 곧 사이코패스다라는 등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악인을 사이코패스로 단정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사이코패스는 일반인과 뇌구조, 사고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른 괴물로 여겨진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별종, 일종의 세균으로 박멸해야 할 특이 존재인 것이다. 이 세상은 그런 위험균 때문에 위험한 것이니, 그런 균들을 모두 색출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세상이 정말 그래서 위험한 걸까? 사이코패스적 경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인구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예나지금이나 그런 사람들은 있어왔다. 하지만 요즘 들어 흉악성이 더 강해진 것 같다. 태어나는 건 비슷하지만 후천적인 요인이 달라진 것이다. 즉 사회다

어떤 성격의 사회냐에 따라서 선천적인 반사회적 인격장애 경향성이 발현 강화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사회를 보다 공동체적인, 따뜻한 사회로 바꿔야 흉악성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사이코패스 광풍은 단순히 위험균만 제거하면 된다고 여기게 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차단한다.

 

이것은 자살을 개인의 심리적 특성으로만 보는 것과 같다. 현대 사회학은 개인의 자살도 사회가 원인이라고 한다. 범죄도 이렇게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원천적인 예방이 가능해질 것이다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승자독식에 약자 능멸이 당연한 구조에선 어렸을 때부터 사이코패스적 경향성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흉악범들만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냉혹한 경영자처럼 타인을 가볍게 짓밟으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도 사이코패스다. 우리 사회는 상층부의 냉혹함이 대단히 강하다. 독식과 갑질이 빈번하고 기부는 안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그런 상류층이 되라고 채찍질한다. 이런 구조에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하류층 사이코패스 성토에 집중해봐야, 또다른 사람들이 사이코패스로 커가는 걸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어릴 때부터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 학교는 멀쩡한 사람도 비정하게 만드는 구조다. 위험인물로 넘어가는 경계선까지 간 아이들을 교화하는 장치도 없다. 요즘엔 위험한 듯 보이는 아이들을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하라는 목소리가 드높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코패스 광풍이 번지면 모든 문제가 개인의 뇌구조 탓으로 돌아가 사회를 고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