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SNL코리아로 촉발된 급식체 논란

‘SNL 코리아 시즌 9’에서 급식체를 소개하는 꼭지가 생겨 논란이다. ‘설혁수의 급식체 특강으로, 권혁수가 한국사 강사 설민석을 흉내 내며 급식체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급식체라는 말 자체가 혐오 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급식충과 관련이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급식충은 급식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10대들을 비하하는 혐오 표현이다. 그런 10대들이 쓰는 말을 휴먼급식체, 또는 급식체라고 일컫는 것이다

과거에도 10대들의 은어는 언제나 있었지만 몇몇 단어에 한정됐다면 급식체는 언어생활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도로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정확히 언제 생긴 것인지는 불명확하지만 대체로 2015년 경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됐다고 알려졌다. 급식체 사직서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장님 인성이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소쩍새가 지저귀는 부분이고요~?

일이 너무 빡세서 좌로 에바쎄바쌈바디바 참치넙치꽁치삼치갈치인 부분입니다~ 이거 레알 반박불가 빼박캔트인 부분 지리구요~. 대표님도 인정?이사님 사내정치는 진짜 지리구요 오지구요 고요고요 고요한 밤이구요 실화냐? 다큐냐? 맨큐냐? 이 회사를 다닌 게 후회한다면 후회할 시간을 후회하는 각이구요~ 동의? 어 보감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야구동호회 등 동호회 사이트 또는 게임 사용자 사이에서 쓰이던 은어가 SNS를 통해 10대들에게 퍼져갔다. 또 한편으론 아프리키TV, 트위치 등 개인방송 진행자들의 말투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철구라는 개인방송 진행자의 말투가 많이 퍼져서 철구체라는 말도 생겼다. 메신저 소통을 하다가 축약형이나 오타, 또는 외국어 등이 급식체로 차용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급식체의 유형으론 초성쓰기가 있다. ‘ㅇㄱㄹㅇ ㄹㅇㅍㅌ ㅂㅂㅂㄱ ㅃㅂㅋㅌ이거레알 레알팩트 반박불가 빼박캔트이고 ㄱㅇㄷ개이득’, ‘ㅇㅈ인정이다. 2014년에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야민정음이라는 글자 바꾸기 유희가 퍼져나갔는데 이것도 급식체가 됐다. ‘세종대왕 - 세종머앟, 피꺼솟 - 끠꺼솟, 유재석 - 윾재석, 귀여워 - 커여워, 명작 - 띵작이런 식이다.

 

‘~하는 부분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BJ '백반형님의 말버릇인 이거 합격하는 부분이냐? 이거 끝나는 부분이냐?‘에서 유래했다. ’~할 상황이라는 ’~할 각이라는 표현도 흔하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이용자들의 말투였다. 놀랄 때의 감탄사는 오지다 지리다. 오지다는 오달지다의 준말인데 원뜻은 마음에 흡족하게 흐뭇하다는 의미이고 지리다는 오줌 지릴 정도로 놀랍다는 뜻이다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나열하며 말장난을 일삼는다. ‘산기슭이 인정하는 바이고요 슭곰발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인정따리 인정따 쿵취따취 샘오리취 갈취따취 에바쎄바쌈바디바 참치넙치꽁치삼치갈치이런 식이다

자문자답을 많이 한다. 특히 자신의 말이 맞는다며 인정을 강요할 대 자문자답을 한다. ‘인정? 어 인정’, 이것이 린정? 어 린정이 되고, ‘동의? 어 보감으로 갔다가, ‘이동휘? 박보검’, ‘인지용? 권지용’, ‘용비? 어 천가등으로 변화됐다. 이게 정말이냐는 실화냐?“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 'SNL'은 이순신의 상소문을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는 부분 이거 레알 반박불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삼각사각 죽는 각이옵니다라고 급식체로 패러디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표현이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또다른 것이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10대들은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자기들만의 동질성을 느끼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언론에서 크게 소개하면 금방 새로운 것을 만들게 된다

급식체 논란의 핵심은 범람으로 인한 국어파괴 우려다. 포르노 영상에서 유래한 앙 기모띠, 고인을 희화화하는 노무띠(노무현+기모띠)’, 어머니를 비하하는 느금(너희 어머니)’ 같은 표현도 문제다. 감각적인 말장난에만 매몰돼 차분하게 생각을 숙성시키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능력을 기르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10대들을 비판하는 기성세대야말로 국어파괴의 몸통이라는 게 함정이다. 기성세대가 모든 분야에서 우리말을 영어로 대체하고 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스마트팜, 페이스요가, 유저, 웨어러블 디바이스, 팩트등 끝이 없다. 지자체도 영어로 새 구호를 짓는다. 지난 대선 땐 3을 쓰리가 아닌 삼이라고 읽은 죄로 후보가 공격당하기도 했다. 기성세대부터 우리말을 제대로 써야 아이들이 배울 것이다. 자신들이 앞장서 우리말을 망가뜨리면서 10대들 탓을 하는 후안무치, ‘오지고 지리고 고요고요 렛인고인 부분입니다ㅋ ㅇㄱㄹㅇ ㄹㅇㅍㅌ ㅂㅂㅂㄱ ㅃㅂㅋㅌ 인정? ㅇㅈ 인지용 권지용 인정따리 인정따이러다 우리말 삼각사각 죽는 각. 동의? 어 보감샘오취리 놀라서 에취하고요~ 에바쎄바쌈바디바 이거 실화냐? 다큐냐? 맨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