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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조덕제는 정말 성추행 파렴치범일까

 

2015년에 김보성이 영화 촬영 중에 성추행을 했다는 루머가 퍼졌다. 옷을 찢고 손을 집어넣는 등 사전에 합의 되지 않은 수위까지 연기를 펼쳤다는 것이다. 김보성은 강력히 부인했다. 사실 해당 장면을 촬영한 남자 배우는 따로 있었다

매체, 시민단체, 네티즌의 성토가 쏟아졌다. 해당 사건으로 기소된 남자 배우는 파렴치범으로 몰렸다. 201612월에 무죄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가 파렴치범에게 면죄부를 발급했다며 여론이 들끓었다

1013일에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유죄가 나왔다.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었고, 해당 남자 배우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한 매체는 남자 배우의 태도가 적반하장이라는 표현을 제목에까지 명시했을 정도다. 네티즌은 실명을 공개해 매장시켜야 한다고 했다.

 

여배우와 시민단체 등은 유죄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장소는 서울지방변호사회 광화문 조영래홀이라고 알려졌다.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평전의 저자이자 헌신적인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인물이다. 조영래홀에서 여성의 인권을 외치고, 성범죄에 미온적인 재판부를 비판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남자 배우가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바로 20년 경력 배우 조덕제였다. 상의를 찢은 것은 사전에 합의된 연기였고, 하의 속옷엔 손을 넣지 않았다고 했다. 가학적인 남편이 부인의 외도사실을 알고 격분한 나머지 부인을 폭행하다가 강간하는 장면이었다고 설명했다. 감독이 미친 듯이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도 했다. , 상대 여배우가 팬티 위에 팬티스타킹까지 입은 후 등산복 바지를 착용했기 때문에 창졸간에 손을 집어넣는 것이 물리적으로도 어려웠고, 똑딱이 단추만 떨어졌을 뿐 지퍼는 흘러내리지 않은 것 같다는 식의 주변 주장도 나왔다. 그동안 여배우 측의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통용됐었는데 그게 흔들렸다.

 

정황으로 보면 조덕제가 성추행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 여러 제작진 앞에서 조명이 집중된 가운데 행해진 연기였다. 거기에서 무리한 행위를 하기가 원천적으로 쉽지 않다. . 조덕제는 단역에 가까운 조연급인 데 반해 상대 여배우는 주연이었다. 조단역이 주연 여배우에게 무리한 행동을 한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조덕제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그는 20년 정도 배우 생활하면서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랬던 사람이 유독 그날만 갑자기 폭주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는 철저히 감독의 통제 아래 있다. 특히 조단역이 주연 여배우에게 하는 연기는 사전에 지시된 수위를 넘기기 어렵다. 권력구조상 조단역은 감독 눈치와 주연 눈치를 모두 봐야 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조덕제가 어떤 행위를 했든 감독의 책임과 연결된다. 감독에겐 자신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 !’으로 중지시킬 권한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선 감독이 진작부터 자신의 연기 지시 내용과, 그날 촬영 현장의 상황을 설명했어야 했다

그런데 감독은 조덕제의 인터뷰 후 기자에게, 자신이 중립을 지키느라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중립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필요한 건 중립이 아니라 진실이다. , 가만히 있었던 건 조덕제가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걸 방조한 것과 같다. 빠른 시일 내에 입장발표를 한다고도 했다. 진실을 말하는데 시일이 왜 필요한 걸까? 여배우 측의 기자회견을 보고 입장을 정리한다고도 했다. 여배우의 기자회견을 보지 않으면 본인이 어떻게 연기지도를 했고, 시나리오 설정이 무엇이고, 그날 상황이 어땠는지 말할 수 없는 건지 석연치 않다. 박근혜 사태 당시 진실을 숨기는 사람들이 말을 아꼈던 기억이 있다.

 

이렇다 보니 조덕제가 성범죄 가해자가 아니라 갑질 피해자일 가능성까지 나타났다. 조단역은 말하자면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에, 주연 여배우 쪽에 더 신경을 써주는 과정에서 조덕제가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조덕제는 해당 업계에서 기피 인물이 되며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만약 억울한 피해였다면 이것을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여성이 성범죄 피해를 주장하면 일단 여성의 편을 들어주는 프레임이 작동한다. 작년 연예인 성범죄 연쇄 무고 사태 때도 매체와 여론은 여성들을 일방적으로 두둔했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무고가 더 기승을 부리고, 그로 인해 성범죄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더 꽃뱀으로 몰리며, 피해 여성들을 도와주려는 시민단체들의 공신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성범죄 피해를 주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두둔하고 상대를 매도할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사실관계를 따질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여배우, 조덕제, 감독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갈려 앞으로 어떻게 또 뒤집힐지 모른다. 결론을 미리부터 정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누구에게 분노하든 객관적 진실이 드러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