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에 대한 여배우들의 폭로에 외신들도 깜짝 놀라고 있다. 할리우드리포터는 "한국에 불고 있는 미투 열풍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내용의 폭로"라며 관련 소식을 전했다. 여배우 A 씨와 B 씨는 노골적인 성희롱을 당했다고 했고, C 씨는 김기덕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제작현장 자체가 여배우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분위기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폭력이 일상이었다고까지 했다. 

김기덕 감독이 언론의 연락을 받지 않는 점을 보면 아주 거짓 폭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거짓이라면 기자회견을 자청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해명할 사안이다. 여배우들이 주장한 내용이 김기덕 감독과 단 둘이 있을 때에만 벌어진 일이라면 사실관계가 의심스러울 수도 있지만, 다른 관계자들도 연관된 내용을 말했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른 관계자들에게 문의하면 금방 드러날 일을 거짓으로 꾸며낼 리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배우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는 영화계 스태프들의 인터뷰도 함께 나왔기 때문에 더욱 개연성이 높아진다. 인터뷰를 거절한 사람들도 여배우들의 말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영화계 인간관계상 말하기가 곤란하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여배우들의 말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물론 정확하게 성폭행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추후에 더 사실관계를 알아봐야겠지만, 적어도 공공연한 성희롱적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복수의 인터뷰를 통해 거의 확인이 돼가는 분위기다. 

그동안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데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심지어 해당 감독이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까지 추앙받아온 것이 놀랍다. 알 만한 사람들이 모두가 침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침묵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권력관계에 의한 눈치 보기 등도 있지만 예술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한몫을 했다. ‘예술은 특별하다, 예술인은 특별하다, 예술은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잘못된 예술관을 예술판 사람들이 공유했기 때문에 성추문이 덮여왔다.

 

고은 시인이 성추행을 하고 하체를 노출해 동석했던 여성이 뛰쳐나갔다는 자리에 함께 있었던 교수는, 그 자리에서 추행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은 시인의 행위를 일반인들의 성폭력이 아닌 예술적 대가의 기행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고은 시인은 그 자리에서 추행하고 자신의 주요 부위를 보여준 후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여성이 뛰쳐나가자 그녀를 탓하며 이런 것도 못 보면서 무슨 시를 쓴다고라고 했다고 한다.

 

예술을 하기 위해선 성적인 경계, 일반인들의 금기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고은 시인의 연이은 추행을 증언해도 난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았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일 게다.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법적인 금기가 예술인에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태도다. 이러니 추행을 해도 자기 행위가 추행이라는 인식이 없고 죄의식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술인은 그렇게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넓게 퍼져 있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목격자들이 모두 그런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침묵이 지켜질 수 있었다. 

특별한 예술관에 더해 이 바닥이 원래 그렇지 뭐라는 사고방식까지 합쳐지면 성범죄로 처벌받아야 할 일이 손쉽게 가벼운 뒷담화 가십 수준으로 바뀐다. ‘어느어느 감독이 돌아이라더라라면서 웃고 마는 에피소드가 되는 것이다. 김기덕 감독이 공공연히 성폭력적 발언을 해도 영화계 인사들은 이런 식으로 웃고 말았다.

 

이번에 피해를 주장한 여배우도, 피해를 당한 후 선배 여배우에게 상담했더니 원래 영화판이 그래라는 말을 듣고 아 내가 그냥 당하고 사는 게 맞구나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침묵했다고 한다. 이런 구조에서 가해자는 예술판 안에서라면 나는 이런 행위를 해도 되라는 자기 최면에 빠져 더욱 뻔뻔해진다.

 

미투 운동은 바로 그런 예술의 특별함이라는 신화를 깨고 있다. 그들이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했던 행위는 성범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예술가든 뭐든 성폭력은 무조건 처벌받는다는 원칙이 확립돼야 예술판 문화가 바뀐다. 성범죄는 결코 예술가의 기행으로 미화될 수 없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