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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이윤택 왕국의 관습은 연쇄 성폭력이었나

 

역사적인 국면이다. 우상들이 무너지고 있다. 문학 분야 노벨상 국가대표격이었던 고은이 성추행 논란 속에 무너지고, 연희단거리패를 이끌고 서울 연극판을 점령했던 이윤택에게 연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윤택은 공개 사과했지만 사태가 가라앉지 않는다. 

이윤택은 부산에서 연극을 시작해, 그곳의 극단을 이끌고 대학로를 점령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서울에서 거장이 됐으면 서울에 눌러앉을 법도 한데, 척박한 밀양 벌판으로 가 지역 연극운동을 시작해 더욱 존경 받았다 

그가 폐교를 빌려 세운 밀양연극촌은 일종의 사관학교 같은 기능을 하며 연극인을 배출해냈다. 그곳에서 개최되는 공연예술축제는 지방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성공 사례로 칭송 받았다. 오로지 연극을 향한 열정이 뜨겁게 분출하는 공간이 밀양연극촌이었다. 바로 그곳이 이윤택 성추문의 오명으로 추락하면서 초라하게 해체될 상황이 되고 말았다.

 

매체들이 이윤택을 연극계의 왕이었다고 표현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정확히 말하면 밀양연극촌과 연희단거리패의 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계는 하나의 통일된 중앙집권 왕국이 아니라 군웅이 할거하는 봉건시대 같은 느낌이다. 저마다 자신의 영토, 자신의 왕국을 거느린 작은 왕들이 할거하는 것이다. 일반인에겐 누군지 생소한 사람도 자신의 작은 세계 속에선 왕으로 군림하는 곳이 문화예술계다. 그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던 일들이 이제 세상에 터져 나오고 있다.

 

밀양연극촌은 논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공간에 세워졌다. 도시로부터 단절된 그들만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것이 순수한 연극적 열정의 천국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렇게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언제든지 종교적 집단도취의 공간으로 변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이윤택의 이른바 안마 행각이 오랜 기간에 걸쳐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다면 주변사람들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당시 단원들이 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았고, 이윤택이 종교집단의 교주 같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윤택의 오도된 윤리관, 예술관에 폐쇄성과 절대권력, 카리스마 등이 합쳐져 빚어진 참극이다.

 

밀양연극촌처럼 물리적으로 폐쇄된 영토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수 문화예술계 권력자들은 자기만의 폐쇄적인 왕국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폐쇄적이라 함은 사회 일반의 윤리나 감시의 시선이 닿지 않고, 관계자들만으로 구성돼 운영되는 그들만의 세상이란 뜻이다. 그 작은 세상에서의 생사여탈권을 명망가 권력자가 쥐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명망가의 손아귀 안에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그야말로 관습처럼 이루어져왔다는 의혹이 있다. 여기서 관습은 상습 연쇄 성범죄라는 뜻이다. 고은, 이윤택 사건은 이 구조가 붕괴되는 출발점으로 보인다. 또 다른 연극 왕국의 주인인, 서울예술대 교수 겸 극단 목화레퍼토리컴퍼니 대표이자 국립극장 예술감독인 오태석의 성추행 의혹도 제기됐다. 다른 유명인에 대한 폭로도 예상되는 분위기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방조자로 가담했다. 이젠 진실을 드러내 일그러진 우상들을 쓰러뜨려야 한다. 고발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윤택이 말한 그런 관습이라는 것이 정말 있었다면, 이번 사건은 그런 게 통용되던 구세계가 깡그리 무너지는 역사적 변곡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