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곡이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말까지 한글날 특집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노랫말 대상에서 수상한 가요들 중 일부를 공연하는 내용이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송창식의 푸르른 날’,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등 많은 노래들이 소개됐다. 

이것이 의미 있는 것은 노랫말의 중요성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우리 가요에서 노랫말은 원래 중요한 위상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댄스음악이 주류가 되면서 노랫말의 중요성이 점차 약화됐다. 의미보단 리듬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 결과 요즘엔 과거처럼 아름답거나 깊은 감성을 담은 노랫말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새 노래가 나와도 그 노랫말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음미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노랫말의 위상 자체가 하락한 것이다.

 

그런데 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아졌다. 랩이 득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랩의 언어가 특별한 사유나 시적 감성을 표현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노골적인 자기자랑이나 욕망의 표현, 상대방 폄하, 말장난 등으로 점철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후의 명곡이 노랫말의 의미를 환기시켰기 때문에 의미가 깊은 것이다. 

이번 특집의 우리말 자막도 화제다. MC이끄는 이, 스타일러를 맵시가꿈이로 표시했다. 싱어송라이터 아이돌은 자체제작돌이라고 하고, 라이언이 콤비네이션 피자라고 하자 모둠 피자라고 자막을 썼다. 그동안 방송이 우리말 파괴에 앞장섰기 때문에 이번 우리말 사용이 인상 깊다.

 

그동안 예능에선 가게 문을 여는 것을 오픈한다고 하고, 가게를 이라고 했었다. 요리사, 주방장은 셰프, 치유는 힐링, 과제는 미션, 해법은 솔루션이라고 했다. 미용사는 헤어디자이너, 미용 행사는 뷰티 콘서트란다. 음식 예능이나 건강 예능에선 요즘 기름을 오일이라고 하는 추세다. 운동경기 중계에선 전 대회 우승팀을 디펜딩 챔피언이라고 한다 

기자들은 사실을 팩트라고 표현한다. 사실확인은 팩트체크란다. 누군가가 한 말의 내용은 워딩이라고 한다. 우리말글을 지켜야 할 기자들마저 우리말 파괴에 나서는 것이다. 기업쪽은 대부분의 단어를 영어로 바꾸는 중이다. 워라밸, 디벨롭, 아이데이션 등 영어가 난무해 이를 가리키는 급여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얼마 전 국군의 날 행사에선 워리어 플랫폼이라는 해괴한 말도 등장했다. 정부도 우리말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실생활 속에서 무수히 많은 우리말들이 영어로 바뀌고 있다. 특히 신기술 관련 용어를 영어로 쓰는 현상은 너무나 심각하다.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새 개념도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대로 수십 년이 지나면 우리말은 누더기가 될 것이다. 

우리말 파괴에 앞장서온 우리 방송이 불후의 명곡특집 한번으로 그 행태를 바꾸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한글날을 맞이해 이런 생각을 떠올린 제작진이 있었다는 것이 반갑다. 이것이 일개 프로그램 제작진을 넘어 방송언론 경영진에게까지 넓혀져야 한다. 그러려면 한글날 특집에 담긴 뜻을 우리 사회가 보다 크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