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능 음악 칼럼

소유진, 서태지팬에게 지지 마라




누군가가 서태지, 배용준을 욕하면 자기 사진에 눈알 뽑힐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둘뿐만 아니라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들도 그렇다. 심지어 공중파 3사의 대표적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도 섣불리 비난했다가는 팬으로부터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번엔 소유진이 걸렸다. 22일 오후 소유진은 KBS 'FM인기가요'의 '뮤직펀드' 코너에서 서태지 이야기를 했다.


출연자가 "서태지 음반이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희소성 때문에 앨범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면서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15주년 기념음반이 9만 7900원이라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1만5000장이 하루 만에 매진됐다. 현재 그 음반은 100만원이 넘는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고, 소유진이 “15주년 앨범이 왜 이렇게 비싸요, 패키지로 묶었나?”라고 한 뒤 "참 장사 잘 해"라고 했다는 사건(?)이다.


'FM인기가요' 게시판엔 소유진을 비난하거나, 사과를 요구하거나, 사퇴를 요구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포털에 걸린 관련 기사에도 수백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소유진을 비난하는 내용들이다.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 제목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소유진’, ‘행사용으로 장사하려다 쫄닥 망한 팔아팔아 냈던 소유진‘, ’이런 애가 무뇌아죠‘, ’서태지가 니 친구냐? 라디오 디제이라는 게 반말이가?‘ 이런 식이다.


대체로 소유진이 인간적으로 모자라다는 논리가 많다. 성형중독이라느니, 소유진의 음반이 나쁘다느니, 인간성이 의심스럽다느니, 심지어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비난도 있다. 이중에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설사 이 모든 게 사실이라 해도 그렇다. 서태지는 희화화하면 안 되는 존재인가?


서태지한테 불경한 말을 하기 위해선 고결한 인격자에, 위대한 예술가에, 무성형에, 아름다운 정치적 성향이라는 자격조건을 갖춰야 하나?


서태지는 천재적 예술가, 혹은 창조적 예술가이기 때문에 ‘장사 잘 한다’ 따위의 말을 들어선 안 되고, 또 서태지는 손해를 봐가며 락 페스티벌을 주최하기 때문에도 그런 말을 들어선 안 되고, 또 서태지 기념음반은 10장 세트이기 때문에 그 정도 가격 받을 만하다 등등의 논리가 반대주장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서태지가 반만 년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이고, 페스티벌 주최자이고, 속이 꽉 찬 앨범을 냈다 해도 일개 시민일 뿐이다. 누구라도 서태지한테 비아냥거릴 수 있다.


후배인 소유진이 선배한테 막말했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이 후배-선배 논리는 소녀시대 침묵 사태 때도 제기됐던 것이다. 소녀시대가 후배인 ‘주제’에 선배 아이돌한테 불경을 범했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이 나왔다. 음악적 창조성하고는 매우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논리다. 어떻게 악명 높은 아이돌 팬클럽하고 똑같은 논리가 나올 수 있나?


소유진 측 관계자는 ‘서태지를 비하하려는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다’라고 밝힌 상태다. 그 기사에도 비난 일색의 댓글이 달렸다. 소유진 본인과, 그리고 함께 얘기 나눈 게스트까지도(!) 방송에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고라에는 소유진의 사과가 성의 없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이 내걸렸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58546)


너무들 한다. 서태지의 팬들은 한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팬덤문화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아왔다. 이번 소유진 타격으로 서태지 팬들의 명예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서태지교 신도, 서태지국 홍위병같은 모습이다.


공인 논리도 있다. 라디오DJ는 공인인데 어떻게 서태지한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왜 안 되나? 한국 라디오에서 서태지는 희화화하면 안 되는 존재인가? 서태지가 무슨 신성불가침의 존재인가?


예술의 가치는 예술로서 증명되는 것이지 대중의 머릿수에 의한 압력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서태지팬들이 서태지의 ‘천재적 예술 창조력‘을 존중해 줄 것을 남들에게 우악스럽게 강요할수록 서태지에 대한 반감이 생겨날 것이다. 자해적 팬덤이다.


요즘 누구, 혹은 어느 프로그램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면 ‘넌 그를 싫어하는구나’라고 낙인찍고, 좋게 얘기하면 ‘넌 그를 좋아하는구나’라고 편을 가르는 세태다. 소녀시대 침묵 사태 때 나는 졸지에 ‘소덕후’로 찍혔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난 사실 ‘서덕후’에 가깝다.


서태지가 데뷔한 이래 언제나 서태지의 팬이었다. 일부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서태지 음악을 폄하하는 것이 유행인데, 난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태지가 엄청난 창조를 하지 않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퇴계나 율곡은 성리학 창조자가 아니다. 그들은 주자의 아류다.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이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다. 서태지팬들은 서태지를 지나치게 유일무이하고 신성한 예술적 창조자로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서태지는 구름 위의 신선이 아니다. 서태지도 상품세계 안에서 사는 사람이고, 그의 예술도 신성한 어떤 것이 아니다.


서태지팬들마저 아이돌팬들처럼 독선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서태지 장사 잘 한다는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다. 예술은 개방성과 관용성에서 나온다. 서태지팬들은 지금 불관용적이다. 그것은 비예술적이다. 소유진과 심지어는 게스트까지 사과했다는 것이 놀랍다. 난 여전히 소유진팬이 아니라 서태지팬이지만, 소유진이 서태지팬들에게 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