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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김수현의 선택 <베토벤 바이러스>, <신의 저울>



 ‘국민 작가’ 김수현이 데뷔 40년 만에 처음으로 팬미팅을 가졌다. '서울드라마페스티벌 2008' Enjoy Star & Story 특설무대에서였다. 워낙 특별한 행사였던 만큼 이날의 발언내용들은 주제별로 나누어 기사화됐다. 그중 개인적으로 특히 눈길이 갔던 건 김수현이 꼽은 드라마였다.


 ‘과연 드라마의 제왕은 어떤 드라마를 볼까?’라는 호기심의 발로였다. 김수현은 아마도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 계통, 혹은 전통적인 통속극 계통을 주로 보지 않겠느냐가 일반적인 예측이었다. 하지만 의외였다. 김수현은 최근 통속극에 대해 악평을 서슴지 않았다. 불륜, 엽기, 출생의 비밀 등이 비빔밥처럼 얽히고설키면서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어지럽게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김수현이 요즘 챙겨본다고 밝힌 두 작품은 바로 <베토벤 바이러스>와 <신의 저울>이었다. 김수현마저도 <베토벤 바이러스> 열풍에 동참한 것이다. <신의 저울>은 사회비판적인 법률드라마로 매니아층이 형성되고는 있지만 대중흥행물은 아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전통적인 통속극과는 거리가 아주 먼 작품이다. 특히 ‘아줌마물’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 두 드라마를 김수현이 선택한 것은 의외다. 그녀는 이 두 개가 요즘 가장 잘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한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좋은 음악들이 많이 나와 보기 시작했다. 근데 요즘은 재밌어 지더라 ... 그 드라마를 보면, 제작진이 고생 많이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음악가가 아닌 일반 연기자들이 악기 연주를 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대사 하나하나도 와 닿는다 ... 잘 만든 작품이다.”


 <신의 저울>도 볼만한 드라마라며 “작가로서 드라마를 보면 작가의 함량이 느껴지는데, 좋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도 최근에 이 두 작품을 가장 주목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의 생각은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 <베토벤 바이러스> 열풍의 이유 -


 <베토벤 바이러스> 열풍이 거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동시간대 경쟁작들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두 개의 ‘바람’과 경쟁한다. <바람의 나라>와 <바람의 화원>이다. 둘 다 사극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사극불패’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사극은 흥행의 보증수표였다.


 게다가 <바람의 나라>는 국민드라마였던 <주몽>의 컨셉을 잇는다.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송일국이 나오는 고구려 시대극이다. 그동안 영웅의 전쟁 서사극은 지지 않는 흥행력을 과시했었다. <바람의 화원>은 문근영의 복귀작이다. 대인기작이었던 <이산>과 겹치는 시대배경에 문근영이 남장을 하고 나타난다는 설정이다. 화제성에 있어서 압도적인 구도다. 시청률과 작품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박신양도 뒤를 받친다. 신윤복과 김홍도라는 인물도 매혹적이다. 요즘 트렌드라는 동성애 코드도 들어있다.


 이에 비해 <베토벤 바이러스>는 흥행요소가 약하다. 클래식으로 전쟁서사극과 붙을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김명민이 절대적인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긴 하지만, 흥행스타라기보다는 매니아들과 더 가까운 편이었다. 김명민의 지지자들은 작년에 김명민이 <이산>과 <태왕사신기>에 밀려 연기대상을 놓치자 분노했었다. 이번에 또다시 정조시대를 다룬 <이산>의 그림자인 <바람의 화원>과, 고구려 시대를 다룬 <태왕사신기>의 그림자인 <바람의 나라>와 맞붙으면서 과거의 악몽을 떠올렸던 건 당연지사. <베토벤 바이러스>는 두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작 ‘바람‘은 <베토벤 바이러스>가 일으키고 있다. ’바람‘ 정도가 아니라 태풍이다. 촛불이 아니라 바람을 잠재울 초거대 해일이었다. 김명민은 ’강마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일개 드라마 등장인물에 불과한 ’강마에‘라는 이름이 이젠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강마에 패러디도 등장하고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엔 세 가지의 흥행코드가 있다. 바로 ‘강마에‘와 ’음악‘과 ’사람‘이다. 먼저, 강마에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보기 드문 괴력의 캐릭터다. 매력적이고, 이기적이고, 나쁜데 착하며, 웃긴데 카리스마가 있는, 그리고 냉정하며 따스한, 그리고 오만하며 콤플렉스에 가득 찬 인물이다. 말투도 괴이하다. 눈빛은 건방지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코믹하다. 동시에 결정적인 순간에 극 중 단원들과 시청자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한다.


 이런 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든 건 바로 김명민이라는 배우다. 김명민은 <불멸의 이순신>, <하얀거탑> 등에서 항상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비록 큰 반향은 없었지만 <불량가족>에서도 눈길을 끌었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선 지금까지의 지지 그 이상의 대중적인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시청률 수치로만 보면 <에덴의 동쪽> 아래지만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김명민은 여기서 <불멸의 이순신>의 리더십과 <하얀거탑>의 자수성가한 악인, <불량가족>의 인간미 넘치는 코믹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신기를 과시하고 있다. 그것에 시청자들이 열광한다.


 그 다음으론 ‘음악’이다. 김수현 작가도 처음에 ‘음악’에 끌려 이 드라마를 보게 됐다고 했다. <베토벤 바이러스> 시작은 불안했다. 그랬던 것이 극중 강마에가 처음으로 제대로 지휘하면서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이끌어내던 장면에서부터 드라마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후 고비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마법같은 연주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다. 이 작품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조금씩 모자란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이 꿈을 키우며 일상의 비루함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따스함이 전편에 걸쳐있다. 이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열풍의 에너지가 형성됐다.


- <신의 저울> 작가의 내공 -


 김수현은 <신의 저울> 작가의 내 공이 느껴진다고 했다. <신의 저울>은 사회비판 드라마로서 새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회비판 드라마들은 관습적으로 부패·독재정권이나 재벌을 악의 무리들로 설정한다. 이런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그 외에 언론, 카지노, 슬롯머신 등도 등장한다.

 <신의 저울> 작가는 이 드라마에서 대형로펌과 금융개방 이슈를 배경에 놓고 있다. 이것은 여태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설정이다. 대형로펌과 고위 관료의 밀착, 외국 자본의 침투와 은행매각의 문제는 단순한 독재나 부패의 차원이 아닌 훨씬 복잡한 이슈면서 동시에 현재 한국사회 모순구조의 핵심에 있는 사안이다. 이것을 다룬 드라마가 그동안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신의 저울>이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한 의미 중심의 드라마는 아니다. 드라마 작가의 힘은 배경에 살아있는 이야기를 넣는 데 있다. <신의 저울>은 주인공과 가족의 절절한 사연을 설득력 있게 그리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악인도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으로 드라마에 참여한다. 그것이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와 <신의 저울>, 요즘 가장 눈에 띄는 두 드라마다. 김수현 작가가 이것을 선택한 것은 의외였다. 김 작가의 차기작도 이런 것이라면 주말 드라마가 조금은 더 볼 만한 것이 될 텐데... 욕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