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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에덴의 동쪽의 치명적인 매력



 연말 모임이 있어 한 음식점에 갔었다.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종업원 아주머니들이 모두 TV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말 드라마 방영시간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때는 주중 미니시리즈를 할 때였다. 통상적으로 아주머니들의 미니시리즈에 대한 몰입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TV를 보는 아주머니들은 깊이 빠져있었다. 손님이 나가는 데도 못 알아챌 정도로.


 그 프로그램은 바로 <에덴의 동쪽>이었다. 그 순간에 난 <에덴의 동쪽>의 흔들리지 않는 시청률의 비밀을 알았다. 바로 통속극의 힘이었다. <에덴의 동쪽>은 처음 시작할 당시까지만 해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성인연기자로 넘어간 후부터 비판에 휩싸였다. 연기, 대사, 구성, 모든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시청률은 요지부동이었다. <타짜>, <그들이 사는 세상>, <떼루아>에 이르기까지 경쟁작들은 <에덴의 동쪽>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 괴력의 근원이 아주머니들을 몰입시키는 통속적 전개에 있었던 것이다.


 <에덴의 동쪽>엔 우리 드라마의 영원한 테마인 ‘출생의 비밀’이 나온다. 식당에서 아주머니들이 몰입하고 있었던 장면은 바로 주인공에게 출생의 비밀이 알려지는 장면이었다. 이것의 극적인 효과를 키우기 위해 <에덴의 동쪽>은 끊임없이 ‘핏줄’을 강조했다. 이런 설정은 ‘세련된 시청자’들로부터 난타 당했으나, 이것이 드라마를 구원한 셈이다. <에덴의 동쪽>은 결국 이런 얘기다.


 ‘아버지의 원수가 알고 보니 내 동생의 아버지였더라~’



 드라마의 구성도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좋아해왔던 이야기다. 전설적인 <사랑과 야망>처럼 <에덴의 동쪽>도 고난의 세월을 살아온 형제들의 성공담이다. 우연히도 2006년판 <사랑과 야망>에 나왔던 조민기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형제의 어머니가 자영업자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도 비슷하다. 이런 가정은 한국인의 ‘로망’이다.


 한국사회에서 일찍 죽은 탄광노동자의 집안, 노동운동가의 집안이 잘 되는 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하지만 <에덴의 동쪽>에서 이동철(송승헌)은 국제적인 사업가로 성장한다.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재벌 전자회사를 인수하기도 한다. 이동욱(연정훈)은 서울대에 유명 운동권을 거쳐 검사(!)로 입신양명한다. 둘 다 가정적이고 효성이 지극하다. 가정은 화목하고 따스하다. 비록 세상이 좀 험난하긴 하지만 열심히 살면 결국 ‘쨍하고 해 뜰 날’이 온다는 구도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환상을 보여주는 이런 드라마를 국민은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주부들의 환호를 받는 주말드라마는 대가족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에덴의 동쪽>도 대가족까지는 아니지만 가족 중심 구도다. <에덴의 동쪽>에 무너진 <타짜>나 <그들이 사는 세상>, <떼루아>는 모두 개인 중심이었다. 이 드라마들엔 출생의 비밀도 없고, 주인공들은 모두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혼자 살았다. 이런 식이면 아주머니들의 지지를 받기가 힘들다.


 <에덴의 동쪽>에선 주인공의 삼각관계라는 통속적 설정이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물론 특별히 부각되지 않을 뿐 드라마 자체가 거대한 삼각관계 위에 떠 있기는 하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그 원수인 신태환이 모두 강렬한 삼각관계의 주인공이다. 그 자식들대로 넘어오면 일일이 적기가 힘들만큼 복잡한 관계가 형성된다. 한때 도대체 누구와 누가 연결되는 거냐는 질문이 회자됐었다. 거기에 주변 인물들이 모두 내부에서 눈이 맞는다는 설정도 반복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인 송승헌이 두 여자 주인공과 연결되는 삼각관계는 나오지 않는다. 처음 기획 단계엔 예정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송승헌 측이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캐릭터를 원하는 바람에, 이다해가 유탄을 맞고 삼각관계에서 탈락했다. 이것은 배용준에 이은 또 하나의 한류스타식 통속적 설정인 것으로 보인다. 배용준은 일편단심 지고지순한 캐릭터로 일본 아주머니들의 가슴을 울렸다. 송승헌도 한 여자에 모든 것을 거는 캐릭터로 진화하고 있다. 한류스타 송승헌을 위한 국제적 통속극이다.


- 마약같은 막장 통속극 -


 한 TV 프로그램에서 일반 프로그램을 볼 때와 통속극을 볼 때, 아주머니들의 뇌파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 실험한 적이 있다. 통속극을 보는 순간 아주머니들의 몰입도가 강화되는 것이 뇌파상으로도 확연히 보였다. 통속적인 설정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회로라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아주머니들의 ‘리모콘 신공’으로 드라마왕국 한국은 통속극 천하가 됐다. <에덴의 동쪽>은 양반이다. 일반 통속극을 넘어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통속극’의 전성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현재 주간 시청률 2위 수준인 <에덴의 동쪽>과, 1위인 막장 통속극의 대표주자 <너는 내 운명>의 격차는 엄청나다. <너는 내 운명>은 40%를 돌파했다.


 공교롭게도 올해 최악의 연기로 꼽히는 남녀 연기가 각각 <에덴의 동쪽>과 <너는 내 운명>에 등장한다. 바로 ‘발호세’, ‘발연희’다. <너는 내 운명>의 ‘발호세’인 박재정은 네티즌의 쏟아지는 조소 덕분에 스타가 됐다. 배우만 욕을 먹는 게 아니라 드라마도 욕을 먹는다. 하지만 시청률은 승승장구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의 신화다. 이제 막장 드라마는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질 정도로 보편적인 단어가 됐다.


 못된 시어머니, 구박, 오해, 불륜,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재벌, 증오, 배신, 복수 등이 통속극의 단골 소재다. 이 소재들이 누가 봐도 너무 하다싶을 정도로 폭주하면 막장 드라마가 된다. 최근엔 장서희의 <아내의 유혹>이 막장 드라마로 새롭게 등장했다. 시청률은 물론 20%대로 순항중이다.


 요즘 통속극의 갈등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주인공은 확실히 고생하고, 악역은 화끈하게 못 됐다. 웬만한 갈등구조로는 시청자들의 단련된 감성을 자극하지 못한다. 그 결과 통속극에서 시어머니들은 점점 더 정신병자가 되어가고 있다. <너는 내 운명>에서도 그렇고,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그랬다.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캐릭터들이 벌이는 극단적인 갈등구조 속에 몰입하다가, 그것이 해결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만끽하는 시청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건 마약과 비슷하다. <조강지처클럽>에서 남편들은 정말 밉게 굴다가 결국 응징을 받았다. 급기야 <너는 내 운명>에선 악질 시어머니가 저 유명한 ‘백혈병’에 걸리기까지 했다.


 <에덴의 동쪽>은 막장 드라마까진 아니지만 통속극의 특성이 다분하다. 여러 ‘웰메이드’ 미니시리즈를 누르고 <에덴의 동쪽>이 질주하는 것은, 미니시리즈까지 점령한 통속극의 위세를 보는 것 같다.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들은 욕먹고 시청률 잘 나오는 드라마가 칭찬 받고 시청률 안 나오는 드라마보다 100배는 더 좋다고 말한다. 통속극이 지금처럼 시청률을 보장받는 한 통속극의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이러면 새로운 실험이 전개되기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위기를 맞아 제작사나 방송사는 모험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지금처럼 가면 우리 드라마산업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통속극의 득세를 막을 방법이 없다. 통속극으로 점철된 월화수목금토일로 끝장을 봐야 다시 개성이 살아날까? 주중 미니시리즈만이라도 통속적 설정을 배제하자는 방송사간 신사협정이라도 필요할 판이다. 통속극은 너무 매혹적이어서 그 질주를 막기가 힘들다. 죽음에 이르는 매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