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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이다해는 바보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다해 빠진 에덴의 동쪽, 산으로 가나?’라는 기사가 나왔다. 이다해가 빠진 걸 엄청난 재난으로 인식하는 눈치다. 그렇지 않다. 에덴의 동쪽은 원래 산으로 가는 드라마였다. 이다해가 빠졌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달라지는 건 없다.


동철과 국자가 죽자고 사랑한다. 동욱은 복수한다. 신태환은 발광한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대파국 끝에 두 집안은 아마도 화해하게 될 듯하다.


이 이야기에 이다해의 하차가 무슨 영향이 있나? 이다해의 하차는 이다해가 ‘바보’ 되는 걸 막았을 뿐이다. 동욱을 죽자고 좋아하다가 갑자기 동철을 보며 실실대는 최근의 이다해는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안전지대로 빠져나간 것 같다. 구제불능의 바보 캐릭터가 되지 않기 위해.


기자들이 일제히 송승헌을 비난하고 있다. 이다해와 러브라인을 형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다. 그렇다면 국자와 동욱을 진심으로 좋아하던 동철과 혜린이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맞아 실실 댔어야 한다는 얘긴가? 만약 그랬다면 에덴의 동쪽이 순항한다고 칭찬 받았을까?


그거야말로 에덴의 동쪽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길이다. 이랬다저랬다 이 사람 좋아했다 저 사람 좋아했다 하는 캐릭터는 시트콤에나 어울린다. 동철이나 혜린처럼 진지한 캐릭터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극중에서 동철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거기에 자기 인생을 거는 성격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게다가 원래 사랑하던 여자가 인생의 위기에 빠진 국면이다. 이럴 때 말을 갈아타는 건 있을 수 없는 배신이다.


혜린과 동철의 심경이 움직이는 무슨 대단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컨대 무협 드라마라면 단둘이 대위기를 겪다가 어딘가에 갇혀 한참을 지낸다든지 하지만, 여기선 그럴 수도 없고, 단지 둘이서 출장을 한두 번 다니다 눈이 맞아 헤헤거린다는 게 지금까지 제시됐던 캐릭터와 어울리나? 그렇게 깐깐하던 혜린의 부모는 왜 동철을 보자마자 갑자기 푸근해지나? 혜린과 동철이 연결되는 것이 이다해 하차보다 훨씬 이상하다.


주요 배역이 예기치 않게 비중이 줄어들고 결국 하차까지 간 일에 대해 큰 잘못인 것처럼 비난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 살면서 처음 기획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끝까지 가야 한다는 말인가? 아이들한테 그렇게 가르치나? 아니다. 잘못 된 일은 중간에 수정하는 것이 정답이다. 주식도 잘못되면 손절매한다. 끝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이다해는 손절매했다. 더 망가지지 않으려고. 이것 때문에 극이 망가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



굳이 말하자면 이다해가 하차해서 극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다해가 동철을 좋아해서 극이 망가지는 것이었다. 이다해의 하차는 극의 구조를 좀 더 단순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면서 동철의 애절한 러브라인이 강화된다.


이건 극을 강화하는 일이다. 문제를 제기하려면 송승헌과 이다해 라인의 불발에 대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왜 그런 우스꽝스런 러브라인을 억지로 만들려 했냐고 따져야 옳다. 혜린은 동욱을 계속 좋아하는 것이 어울렸다. 혜린이 오락가락하며 동욱의 캐릭터도 이상해졌다.


그랬거나 말거나.


에덴의 동쪽은 복수, 성공, 사랑의 통속적 서사극이다. 오락가락 민혜린이 빠지건 말건 극은 그대로 간다. 난 이 드라마가 훌륭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다해 하차로 드라마에 엄청난 충격이 발생하는 것처럼 호들갑 떠는 사람들에게도 동의하기 힘들다.


송승헌이 자기 캐릭터를 살리려고 남의 역할을 죽인다는 비난이 나오는데,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다해 역할이 산으로 간 건 애초에 동욱을 사랑하다, 갑자기 동철에게 헤헤거리기 시작했을 때부터다.(헤헤거린다는 말은 수사가 아니라 정말로 극 중에서 그랬다) 그렇다면 송승헌이 이다해가 자신을 좋아하도록 압력이라도 행사했다는 말인가? 그 반대다. 송승헌은 동철-혜린 라인을 거부했다.


이것을 예정대로 살려야 한다는 사람들은 송승헌, 이다해 캐릭터를 바보로 만들기로 해놓고서 왜 바보로 안 만드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 이다해 하차로 에덴의 동쪽에 새삼스럽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다. 에덴의 동쪽은 원래부터 문제가 있는 드라마였다. 동철-혜린 라인 불발은 그나마 이 드라마에겐 희소식이다.


주말드라마에 적합할 것 같은 통속극이 주중 미니시리즈로 나온 것이 이 드라마의 불행이다. 미니시리즈는 보다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이면 좋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지점에 있다. 극 자체가 문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다해와 송승헌만 문제 삼고 있다. 정말로 그 둘이 연결됐으면 틀림없이 막장 삼각관계라고 비난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단지 비난하는 것이 취미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