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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태연만 욕할 일이 아니다

 

태연만 욕할 일이 아니다


소녀시대 태연이 욕을 먹었다. 간호사가 밥을 먹느라고 주사를 안 놔줘서 화가 났다는 발언 때문이다. 강인도 맞장구를 쳤다. 비난이 이어지자 결국 태연과 강인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발언 이후 청취자들은 의사의 처방 없이는 간호사가 진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태연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것이 또 화근이 됐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의사의 처방 여부가 아니다. 태연은 분명히 밥을 먹느라 주사를 안 놔줬다고 했다.


태연 : 그분이 밥을 먹다가 나오셔가지구 안 된다는 거예요.

강인 : 밥 아 그러니깐 다른 이유가 아니라 식사하고 계셔서 주사를 못놔준다구요?

태연 : 네 식사 시간이어서

...

태연 : 제가 그때 너무 황당해가지고 아픈 와중에도 ... 한바탕하고 싶었는데

...

강인 : 불의를 보고 참은 거야? ... 나 같았으면 가만 안 있었다 진짜.


분명히 문제의 중심엔 ‘밥’이 있었다. 간호사가 의사 없이 진료행위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다른 얘기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다.


소비자인 태연양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에 갔다. 갔더니 식사시간이었다. 그곳에서는 서비스를 거부하고 태연양에게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래서 소비자인 태연양과 강인군은 분개했다.


태연에게 방송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것이 태연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재빨리 이루어지는 황제서비스를 좋아하는 것은 한국인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우리나라 서비스업종에서 대형 자영업이나 ‘사’자 돌림 전문직을 뺀 일반 서비스 종사자의 평균소득은 대단히 낮다.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낮다.


그런 조건에서 한국인은 최고의 서비스를 원한다. 그 바람에 쇼핑몰에서는 손님에게 공손하게 응대하느라 종업원에게 하지정맥류가 생기고, 스트레스로 우울증까지 생긴다.


복지 선진국의 서비스업은 우리나라완 달리 느긋하다. 유럽의 천천히 천천히 서비스는 잘 알려져 있다. 가격도 다르다. 스웨덴 사람들은 집안에서 웬만한 문제들은 직접 고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을 부를 경우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어제 일본에서 살다 온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일본에서 살 때 아르바이트만 해도 생활비나 등록금 마련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을 댈 정도로 수입이 안 생긴다. 그래서 전체 대학생의 40% 이상이 학자금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고, 여대생들의 성적서비스 아르바이트가 물의를 빚고 있다.


한국인은 소비자로서 서비스에 원하는 것은 많으면서 대가를 주는 것엔 박하다. 그저 최고의 서비스를 최단 시간 안에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식만 있을 뿐이다. 사회가, 어른들이 다 그러니까 태연같은 어린 친구들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뭐를 보고 배웠겠는가.


내가 아무리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상대가 밥 먹는 시간이라고 하면 기다리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다려줄 줄을 모른다. 청취자가 곧바로 지적한 태연 발언의 문제는 ‘의사가 없으므로 간호사가 진료 행위를 안 하는 것이 당연하다’였다.


밥 먹는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를 끌어왔다. 단지 밥 먹는 시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손님을 응대하지 않은 것을 옹호하기가 애매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무의식중에 태연이 당한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선 ‘식사시간’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의료법을 통해 간호사를 옹호했다.


의료법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태연이 언급한 핵심적인 문제는 식사시간이다. 이 차원에서 얘기해도 된다. 이건 한국사회에서 서비스업을 대하는 상식의 문제다. 그들도 사람이고 노동자이므로 정당한 대가와 처우,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필요한 것이다.


태연뿐만 아니라 태연을 비난하는 한국인 모두에게 이런 생각이 필요하다. 서비스 직종 종사자들은 매우 박한 임금을 받으면서 점점 더 까탈스러워지는 소비자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인은 이를 ‘소비자 주권’의 확립이라 생각하며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소비자 주권이 노동권을 침탈할 때 결국 그 사회는 붕괴하게 된다. 노동권 침해는 결국 ‘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서비스업의 상황이다. 간호사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주사를 놓을 때, 맥도날드에선 밥도 못 먹고 햄버거를 서빙해야 하며, 쇼핑몰에선 쉬는 시간도 없이 손님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어딜 가나 황제서비스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태연만 욕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