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도청, 이마리가 생각난다
충격적이다. 전지현 등의 휴대전화를 복제한 혐의로 흥신소 직원들이 체포됐다. 이들은 연예기획사와 일반인들로부터 휴대전화 복제를 의뢰받아 이같은 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경찰은 소속사가 연예인을 관리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도청했을 것으로 보고 전지현의 소속사인 싸이더스HQ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한국 연예산업은 그동안 기업화, 대형화, 국제화해왔다. 그에 따라 당연히 ‘선진화’도 이뤄졌을 것이라고 기대되어 왔다. 그런데 도청이라는 전근대적인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도청은 대표적인 인권유린의 사례다. 이것은 한 인간의 사생활이 부정되는 사태다. 흔히 독재권력이 저지르는 짓이라고 알려져 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대형 기획사가 연예인에게 자행했다는 것이다.
연예인을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보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연예인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상품취급하는 기획사의 행태도 한 몫 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인간은 인간 대우를 못 받을 때 우울해지는 법이니까.
과도한 상업논리는 인간이 있을 자리를 ‘돈’으로 바꿔 놓는다. 인간을 상품으로 보기 시작하면 점점 자기도 모르게 ‘인권’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 연예인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주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자기최면에 빠지기도 한다.
도청의혹 사태는 한국 대중문화산업이 지나친 상업성지상주의로 흐르는 것 아닌가 하는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 포획된 이마리 -
<스타의 연인>에서 주인공 이마리(최지우)는 기획사의 최대 상품이다. 이마리가 연예활동에 충실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획사는 이마리의 따뜻한 후원자였다.
이마리가 자기 삶의 가치를 찾기 시작하고, 또 전속 계약 연장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기획사의 태도가 달라진다. 기획사의 관리 동선으로부터 이마리가 빠져나와 자기 사생활을 갖는 것을 회사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마리에게 회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생활이 생기는 것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이마리가 점점 더 회사 관리 바깥의 사생활을 갖기 시작하자 회사는 최후통첩을 한다. 이마리가 끝내 회사의 요구를 듣지 않자, 회사는 자신의 ‘상품‘인 이마리를 부숴버린다. 처음엔 정보를 흘리며 이마리를 압박하다가 나중엔 이마리 연인의 정체를 폭로한다. 협박이나 다름없는 수법으로 계약을 연장한 다음, 그 계약서를 빌미로 이마리를 끊임없이 옭아맨다.
이마리는 자신이 상품이 아닌 인간이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기획사의 상업논리는 이마리에게 상품일 것만을 요구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전개된 <스타의 연인>의 내용이다. 전지현 도청사건에서 요즘 궁지에 몰려 있는 이마리가 떠오른다.
그런 드라마에서조차도 자사 연예인을 도청한다는 설정은 등장하지 않았었다. 도청은 충격이다.
- 인간 상품화 잔혹사 -
물론 많은 투자가 이루어진 연예인은 인간성과 상품성이 애매하게 뒤섞인 존재이긴 하다.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계약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생활에 문제가 생길 경우 상품성에 치명적인 타격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연예인 자신의 몫이다. 인간에겐 자신의 책임 하에 사생활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 이것이 부정되면 남는 것은 비정한 상업주의뿐이다.
전속 계약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전지현의 동향을 감시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다. <스타의 연인>에선 계약 연장 문제로 기획사가 이마리의 약점을 일부러 유포한다. <온에어>에선 전속 계약 문제로 주먹이 오고 갔다. 아무리 그래도 도청은 섬뜩하다.
<스타의 연인>에서도 <온에어>에서도 기획사의 비정한 연예인 관리가 부정적으로 그려졌었다. 업계의 사람들도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비인간적인 관리가 좋다고 생각했다면 작품에서도 기획사가 좋게 그려졌을 것이다.
작품에선 ‘휴머니즘’이 승리하지만 현실에선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기획사가 요구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다 사망한 개그맨 그룹에서부터 전지현 도청에 이르기까지 ‘인간상품화’ 잔혹사가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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