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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1박2일 할아버지가 최고MC군단을 무찌르다

 

<일밤 - 퀴즈프린스>는 김용만, 탁재훈, 신정환, 이혁재, 김구라 등을 모으고 여기에 다시 신동엽을 추가해 쇼를 내보냈다. 이중에 연예대상 대상 수상자만 무려 네 명이다.


<1박2일>은 변치 않는 그 멤버 그대로 시골을 찾았다. <퀴즈프린스> 1회는 신동엽이 사실상의 MC같은 초대손님으로 나왔고, 다음에 진짜로 초대할 외부인사는 대한민국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다. <1박2일>엔 시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왔다.


지명도로 보면 하늘과 땅 차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1박2일> 고정 멤버들과 비교해서도 <퀴즈프린스>의 멤버들이 훨씬 화려하다. 하지만 웃음, 재미, 의미, 어느 것 하나 최강 MC군단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누르지 못했다.


보고 난 다음에 남는 ‘느낌’도 그렇다. <1박2일>은 보는 동안 편안하고, 보고 난 다음엔 따뜻한 느낌과 여운을 남겨 줬다. 세상을 더 살 만하게 만들어줬다고나 할까?


<퀴즈프린스>는 보는 동안 몇 번의 웃음이 다였다. 그 웃음은 너무나 휘발성이 높아서 즐거운 느낌은 곧 사라져버렸다. 게다가 다음 주에 본격적인 첫 초대 손님으로 집권 여당 원내대표가 왕림한다는 거북함을 남겼다. 이건 이 세상이 살 만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에이, 세상이 다 그렇지 뭐’하는 냉소를 안겨줬다.


결국 이름 모를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국인들에게 일요일을 즐겁게 마감하며 한 주를 새롭게 시작할 힘을 불어넣어줬다면, 최강 MC군단은 웬지 허탈하게 하고, 프로그램 자체는 초대 손님 구설수로 국민의 힘을 빼버린 셈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완승이다.


프로그램 구성의 완성도도 그렇다. <1박2일>의 경우 초반부에는 맥이 없었지만 서서히 몰입도를 높여가서 후반부 클라이막스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반면에 <퀴즈프린스>는 초반에 활기찼다가 중반부터 맥을 놓았다.


몰입도가 점차 고조되며 막판에 최고조에 달해야 시청자가 시청한 보람을 느낀다. 한 시간 이상을 투자해 즐거움을 얻었다는 만족감이랄까? 반면에 초반에 터졌다가 막판에 흐지부지하면 불만족스럽고, 웬지 속은 느낌이 들게 된다. 이런 점에서도 막판에 터뜨려주신 할아버지가 승리했다.



- ‘고품격 토크쇼’가 되려면 보다 막 나가야 -


나는 오랫동안 ‘고품격 토크쇼’를 기다려왔다. 여기서 ‘고품격’이라 함은 토크의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몸개그가 연발되는 ‘폭주쇼’를 가리킨다. 이런 류의 ‘고품격 토크쇼’로서 최고로 꼽는 것이 <위험한 초대>였다.


강호동이 <1박2일>에서 ‘예능은 입수다’라고 했는데, 진정한 레전드급 입수 예능을 보여준 것이 바로 <위험한 초대>였다. <퀴즈프린스>는 <위험한 초대>의 설정을 베꼈다. 물 대신에 거품을 썼을 뿐, MC들이 ‘입수’한다는 설정은 같았다.


<퀴즈프린스> 초반부는 완전히 <위험한 초대> 속편같은 느낌이었다. 바로 이때 ‘빵 빵’ 터졌다. 하지만 곧바로 너무나도 전형적인 퀴즈 풀기와 벌칙 입수 방식으로 바뀌면서 분위기가 ‘급식상’으로 흘렀다.


MC들은 뭔가 계속 웃기려고 하고, 또 자기들끼리는 엄청나게 웃어댔지만 시청자 입장에선 그럴수록 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반면에 <1박2일>에서 할아버지는 웃기려고도 하지 않고 시종일관 진지했지만 그게 폭소를 유발했다.


이왕 ‘고품격’으로 할 거면 <위험한 초대>처럼 정신 사납게 막 나가야 한다. <퀴즈프린스>가 모은 MC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예측 가능한 벌칙을 받는 정도로는 전혀 흥미를 이끌어낼 수 없다. ‘입수’할 때 처절하고 요란하게 해야 하며, 특히 중요한 것은 ‘입수’가 ‘돌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있다. 퀴즈에 답을 제시하고 오답자가 빠지는 형식은 너무나 뻔하다.


<퀴즈프린스>의 MC들은 식상하다. 또 <1박2일>처럼 사람을 흐뭇하게 하는 ‘정’ 을 느끼게 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고품격’으로 대폭주하며 몸이라도 고생해야 한다. 거품 입수 정도는 너무나 안일했다. 속도감도 없었다.



- 막장으로는 가지 마라 -


<퀴즈프린스>가 오랜만에 <위험한 초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줘서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하지만 나의 ‘고품격’ 선호 취향과(‘우왕좌왕’, ‘왁자지껄’, ‘두들겨부수기’를 좋아하는 초딩적 취향임), 스타MC군단도 할아버지에겐 역부족이었다.


이것이 무얼 말하는가? 보다 공감할 수 있는, 보다 서민적인, 보다 따뜻한 그 무엇에 사람은 반응한다는 얘기다. 화려한 스타MC가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다음 주엔 스타 정치인, 그중에서도 현재 국가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 즉 대한민국의 최고위층이 출연한다. 스타MC와 권력의 조합은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고품격’ 토크쇼가 아닌, 불쾌감으로 머리를 무겁게 하는 ‘막장’ 토크쇼로 가는 지름길이다.


<1박2일>이 시골로 어르신을 찾아가고 <퀴즈프린스>가 권력자를 모실 때, 시청자는 과연 어느 쪽에서 즐거움을 얻게 될까? 이런 식으로 가면 <퀴즈프린스>는 서민에게 판판이 깨지는 화려한 스타군단의 무덤이 될 것이다. 권력자 모시기는 취소하고, ‘고품격’(정신없게 휘몰아치며 망가지기)에라도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