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소녀시대가 투입된다고 해서, 당연히 프로그램이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 소녀시대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것일 줄 알았다. 예컨대 <1박2일>같은 경우는 프로그램이 1박2일 동안 여행을 하며, 지역의 푸근한 정취나 특산물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6명의 남자들이 등장하는 포맷이다.
결코 이 6명의 남자를 구경시켜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이들이 벌이는 대응이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 것이지, 상황이 없는 가운데 6명이 각자 원맨쇼를 펼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소녀시대의 출연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소녀시대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팬이 아닌 이상 쇼프로그램을 단지 소녀시대를 감상하기 위해 사수할 사람은 없다. 소녀시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 쇼는 팬클럽 자체 이벤트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불특정 다수를 위한 방송프로그램으로는 적절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뚜껑을 연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는 놀랍게도, 소녀시대 그 자체를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물론 테마가 있긴 하지만, 보이는 모습은 오직 소녀시대쇼일 뿐이다. 이건 ‘소시 덕후’만을 위한 팬클럽 서비스 수준이다. 그것에 국민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게다가 더 문제는 이것이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매주 방영됐다는 것이다. 매주 공중파를 통해 살포되는 소녀시대쇼. 이미지 과잉이다. 반복적인 과잉노출은 결국 식상함을 초래할 것이다. 소녀시대의 강점은 ‘상큼함’에 있었는데, 다른 매력을 추가하기는커녕 기존의 강점마저도 위협하는 악수다.
- 개그맨에게도 버거울 쇼 -
17일자 방송분을 보면 이것은 분명해진다. 프로그램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첫 부분은 소녀시대의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코믹한 얼굴 표정을 짓는 일종의 개인기 경연대회였다.
두 번째 부분은 다시 소녀시대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즉흥연기를 펼치는, 그러니까 또다시 반복되는 개인기 보여주기쇼였다. 이런 식의 ‘돌아가면서 연기개인기 보여주기’는 10일자 방송분에서도 반복됐다.
세 번째 부분은 다시 소녀시대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비명을 질러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포체험쇼였다. 시청자는 매주 소녀시대 멤버들의 개인기와 비명소리를 보고 들어줘야 했던 것이다.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이건 너무하다.
현재 시청률 1,2위를 다투는 <패밀리가 떴다>와 <1박2일> 멤버들을 모두 스튜디오에 앉혀놓고 그들의 개인기쇼를 매주 반복한다고 생각해보라. 과연 누가 그 쇼를 봐줄까? 최근 네티즌에게 주목 받은 MC몽이나 은지원도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간적으로 매력을 보였기 때문에 주목받은 것이지, 만약 그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계속 개인기를 보여줬다면 사람들은 지겹다고 했을 것이다.
이천희, 이승기 같은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다. 이승기는 <1박2일>의 상황 속에서 사랑을 받은 것을 과신하면서, 이선희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이선희의 예능감을 보충해주겠다고 나왔었다. 하지만 상황을 벗어난 이승기 개인이 스튜디오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만을 확인시켜주고 쓸쓸히 퇴장했다.
소녀시대가 일밤에서 감당하고 있는 책임은 이승기, MC몽이 아니라 전문 개그맨에게도 버거울 수준이다. 당대 최고의 개그맨들을 앉혀놓고 한 시간 동안 개인기와 즉흥연기하라고 하면, 지속적으로 웃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소녀시대가 매력이 철철 넘친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이미지 과소비는 독 -
예능에 잠깐잠깐 나왔을 때 아나운서들의 존재감은 대단했었다. 그들이 나올 때마다 프로그램에 활력이 생기고, 시청자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아나운서들이 본격적으로 예능에 나와 한 시간 내내 앉아있고, 그것을 매주 연이어 보여주기 시작하자 아나운서의 가치는 거짓말처럼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이미지 과소비는 그렇게 위험하다. 아나운서는 희소성이라는 조건이 지켜졌을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요즘 아이돌은 과거와 같은 신비주의 컨셉이 아니라 친숙한 방송인 컨셉이므로 희소성만 추구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 내돌리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건 인간사의 법칙이다.
아이돌은 쇼프로그램에서 상큼한 양념같은 역할을 하며, 프로그램도 살리고 본인의 이미지도 살려왔다. 아예 대놓고 프로그램 전체를 아이돌의 얼굴로 도배하면, 이런 구도가 깨진다. 이때 중요한 건 아이돌에게 프로그램 전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가 될 것이다.
베테랑 예능인도 버거울 일인데, 어린 가수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턱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그램을 아이돌로 도배하는 것은 프로그램과 아이돌이 공멸로 가는 길이다.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를 보다보니 반복되는 팬클럽 이벤트 수준의 쇼에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지겹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소녀시대를 너무 내돌린다. 과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라는 경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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