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업 종사자의 공중파 출연에 대해 방송을 보지도 않고 비난부터 했다는 지적을 받았던지라, <황금나침반>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켜 본 결과는 대실망이다.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기대이하였다.
어린 아가씨 데려다가 시청률 장사해먹으면서, 그 아가씨에게 상처나 주고 끝난 방송이었다. 보면서 때론 실소가 터지기도 하고, 때론 화가 나기도 했다. 패널들의 헛소리 때문이다.
출연한 여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돈을 많이 버는 특수 직종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 패널들은 계속해서 ‘넌 술집여자야! 그건 천한 직종이야!’를 반복했다. 출연자의 가치관과 허영기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렇더라도 돌아가면서 면박주는 것은 불편했다.
그렇게 그 여자를 모욕해서 눈물을 흘리게 할 순 있지만,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술 따르는 직업이 사회에서 최하층에 속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던가? 그걸 자꾸 반복하면 상대의 상처에 굳었던 딱지를 떼어내는 효과가 있다. 잠시 아프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학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나? 그 순간의 눈물뿐이다.
패널들은 처음엔 사랑이니, 보람이니 하는 가치들로 출연자를 훈계하려 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설득에 실패한 패널들은 모욕주기 모드로 갔다. 일종의 윤리적 단죄.
그것을 반복하면서 출연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당신은 술집에서나 통하는 화법으로 말하고 있다’면서 계속 상대의 상처를 건드렸다. 술집여자 불러내서 ‘넌 천대 받는 술집여자야’라고 재확인시켜주는 게 프로그램의 목표였나? 이걸 보고 ‘아 술집 나가면 천대 받는구나’라고 몰랐던 걸 깨달은 사람이 많을까, ‘술집 나가면 월 1,000만 이상 벌수도 있다는 게 정말이구나’라고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이 많을까?
- 정작 프로그램이 비윤리적 -
누적된 모욕으로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 출연자는 계속해서 자신이 하는 일의 정당함을 주장했다. 그것을 깨지 못한 김어준은 ‘그렇게 사세요 그렇게 사시면 되는데 여기 왜 나오셨어 근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음지에서 잘 사는 사람을 불러내 구경거리로 삼으면서 시청률 장사하는 곳에 들러리로 왜 나오셨어 근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윤리적 꾸짖음 이외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술집에 나가는 것도 정당한 직업 맞기 때문이다. 패널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연자에게 말릴 수밖에 없었다.
술집에 나가는 것은 분명히 직업의 하나이지만, 드러내놓고 소개하거나 권장할 만한 직업은 아니다. 그러므로 공중파 쇼프로그램에서는 되지도 않는 윤리적 훈계를 할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런 직종의 종사자에게 조명을 비추지 않는 게 최선이다. 많은 국민들이 여기에 대해 모를수록 좋은 것이다.
하지만 <황금나침반>은 시청률 장사하겠다고 권장할 수 없는 직업의 여성을 데려다 되지도 않는 훈계나 하며, 오히려 해당 업종을 국민에게 소개시켜줬다. 이거야말로 윤리적 일탈이다. 이미 판 자체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데 그 속에 앉아서 무슨 남을 훈계하겠다고 가학적인 면박이나 주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 공자님 뒷다리같은 소리들 -
출연자가 자신은 예쁘고 자부심도 있다고 하자, 패널은 ‘그렇다면 거기서 일 안 해도 되지 않나요?’라고 했다. 이 무슨 공자님 뒷다리같은 소리인가? 자꾸 일을 하지 말라고만 하는 패널에게 출연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을 안 하면 돈은 누가 주나요? 오빠가 주실 건가요?’
이것이 정답이다. 어떤 패널은 ‘돈은 주는 데 많아요’, ‘그걸 관두고 모델하면 되잖아’라는 식으로 황당한 소리들을 했다.
아니, 고소득 연예인은 저절로 되나? 몸매 좋고 얼굴 예쁘면 누구나 월수입 1,000만 원 이상의 연예인이 된단 말인가? 그러면 그 예쁜 연예인들이 왜 스폰서를 잡으며, 왜 술자리에 불려다니다 자살한단 말인가?
연예인의 평균소득이 비정규직 평균소득보다도 더 낮다. 그걸 뻔히 아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일 그만 두라고만 하니 실소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살 길도 열어주지 않은 채 무작정 윤리적 당위를 내세우며 성매매금지만 외치는 위정자들과 뭐가 다른가.
한국은 돈을 벌기 힘든 나라다. 그게 '불편한 진실'이다. 정말로 유흥업지망자를 줄이고 싶으면 사회 분배구조와 풍토를 바꿔야 하고, 그건 시사프로그램에서 진지하게 접근해야 해결될 일이지 쇼프로그램 구경거리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출연자의 과도한 허영기도 그렇게 쇼의 차원에서 다그치기만 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국민에게 텐프로를 홍보해서 유흥업을 진흥하는 효과만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유흥업을 막연히 두려워한다. 감금, 착취, 조폭, 사채빚 이런 이미지들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오히려 그런 두려운 이미지들이 사라졌다. 방송하지 않았어야 할 프로그램이었다.
유흥업 종사자를 윤리적으로 단죄하고, 천시하고, 멸시하고, 벼랑으로 몰아붙이면서 자기 할 일 다했다고 여기는 한국사회의 무책임에 신물이 난다. 거기다 그런 유흥업 종사자를 시청률 장사하겠다고 불러내 면박 주는 자리에 들러리 선 ‘외수 오빠’, ‘어준 오빠’의 궁색한 모습까지. 불쾌한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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