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조성모와 국민이 열받은 이유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조성모가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기획사를 떠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돈 때문이 아니었다. 기획사는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했었다. 그런데도 조성모는 그곳을 나와 더 작은 곳으로 옮겼다.


조성모가 밝힌 이유는 묵살된 자신의 참여권이다. 그는 그 전까지 앨범이 나오는 동안 자신의 CD 표지조차 미리 보지 못했다고 한다. 조성모는 대표적인 뮤직비디오 중심 가수였는데 정작 그는 뮤직비디오 회의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기획사가 조성모에게 물질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었다. 조성모를 당대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줬으니까. 하지만 조성모에겐 불만이 생겼다. 의견을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때문에 기획사를 떠나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인간사의 법칙이다. 무시당한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인다. 설사 호의호식을 한다 해도 불만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조성모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고 했다. 기획사와의 결별은 양쪽에 모두 손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상황에 봉착한 인간은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그런 존재니까.


만약 기획사가 조성모의 의견을 성의 있게 들어주는 모양새라도 취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서로에게 파국이 되는 극단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인간은 통제하고 싶어 하는 동물 -


심리학자들은 ‘통제감’이 행복감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을 지적한다. 통제력을 행사해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 이전에,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자신이 유능하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통제감은 인간의 뇌가 자연스럽게 원하는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 하나라고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말한 바 있다.


살아가는 동안 어느 한 시점에서라도 통제력을 상실하면 인간은 불행하고 무력해지며 희망도 잃고 우울한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심지어는 그것 때문에 죽기까지 한다.


이런 실험이 있었다. 요양원에 있는 어떤 노인들에게 화초를 돌보는 일을 알아서 직접 하도록 하고, 다른 노인들에게는 화초를 돌보는 직원을 투입했다. 6개월 후 사망률이 두 배 차이가 났다. 화초를 통제한 노인보다, 무력하게 바라만 본 노인들이 두 배 더 많이 세상을 뜬 것이다. 또, 처음부터 통제권이 없었던 사람보다 있었다가 몰수당한 사람이 훨씬 더 불행해진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통제권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통제권이 있다고 믿는 느낌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영향력이 있다고 믿을 때, 인간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 이명박 정부에게 국민이 열 받은 이유 -


조성모가 기획사로부터 떠나간 것이나, 현재 민심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떠나가고 있는 것이나 같은 측면이 있다. 한국인은 지금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발언이 묵살, 혹은 봉쇄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6월 10일에 서울 시청 앞에 모인 군중 속에서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외쳤다. 현 정부가 국민을 무시하고 독선적인 일방통행적 통치를 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느끼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통제권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보다, 있다가 사라진 것에 인간은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즉, 열 받는다. 한국인은 지금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느끼고 있다. 참여의 권리가 있다가 없어져간다고 느낀다는 소리다. 열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느낌을 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서울광장을 봉쇄해 국민이 목소리를 낼 여지조차 없앤다든지, 공화국 시민의 헌법적 권리인 시위가 원천봉쇄된다든지, 국민의 눈과 귀인 언론장악 논란이 벌어진다든지, 국민의 입인 인터넷 여론 억압 논란이 벌어진다든지, 반대여론이 아주 높은 ‘강에 삽질하기’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인다든지, 국민을 억압하는 상징인 경찰력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인다든지, 시민의 발언권을 집약하는 시민단체들이 억압당하는 것처럼 보인다든지, 국민의 의사가 간접적으로 집약된 정당정치를 무시하고 청와대가 독주한다는 논란이 터진다든지 등등 수많은 일들이 국민의 무력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것은 조성모의 선택이 기획사와 조성모 모두에게 손해였던 것처럼 국민 모두에게 손해가 될 수밖에 없는 극단적 대결구도를 초래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한창일 때 이명박 대통령이 은행 자본비율 조정 발언을 하자 비판세력이 모두 반대했다. 사실 경기하강 국면에서 이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불신과 무력감과 불행감, 상실감, 스트레스에 쌓인 국민들은 대통령의 모든 행동에 총체적 불만을 토로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과 국민, 우리 모두가 속해있는 한국에 좋을 것이 없다.


기획사는 조성모에게 엄청난 물질적 성공을 가져다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를 묵살당한 조성모는 인간으로서 불행을 느꼈다. 하물며 이명박 정부는 물질적 성공조차 국민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참여권까지 빼앗긴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구조다.


지금까지의 태도를 180도 바꿔서 국민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 발언권을 인정받는다는 느낌, 국가의 통제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면 파국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쿠데타로 집권한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독재 얘기가 나오느냐고 항변한다. 국민의 스트레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면 희망이 없다.


* 제 책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