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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오빠밴드 잔인한 몰카 김정모를 살리다

 

요즘 어디에서나 툭하면 몰카다. <패밀리가 떴다>, <1박2일> 등 최근 예능에서 몰카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이다.


몰카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비판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몰카를 그렇게 불쾌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상당한 비난을 받았던 <패밀리가 떴다> 몰카도 그럭저럭 웃으면서 봤다.


그래도 지겹기는 하다. 너무 쉽게 우려먹는 것 아닌가? 최근 몇 주째 점점 호감도가 커지고 있었던 <오빠밴드>마저 오늘 몰카로 시작하는 것을 보고 ‘아 질린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해프닝 수준의 몰카였다면 몰카에 상당히 관대한 나로서는 웃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빠밴드>의 몰카는 단순히 골탕 먹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너무 깊은 곳을 찔렀다.


요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처참한 실태가 널리 알려졌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잘린다는 것은 기댈 것 없는 개인에게 상상 이상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휴대폰 메시지로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세요’라는 문자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쉽게 취급당했다는 인간적 모욕감과 당장 다른 일자리가 없는 막막함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당한다. 그 메시지를 받자마자 펑펑 울었다는 노동자의 인터뷰도 있었다.


유머 감각이 기괴한 어느 관리자가 있다고 치자. 그가 장난을 시작했다. 어떤 비정규직 직원에게 화를 내며 ‘당신 이제부터 나오지 마’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사색이 된 직원의 얼굴을 보더니 깔깔대며 ‘농담이야 농담, 재밌지?’라고 했다면?


이건 장난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폭력이다. 남의 절박한 삶의 조건을 가지고 안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장난을 치면 안 된다.



- 오빠밴드의 막장몰카 -


<오빠밴드>의 몰카가 딱 그랬다. 당대 최고의 예능MC로서 사실상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명의 설움을 겪고 아직 기반도 다지지 못한 김정모에게 <오빠밴드>를 그만 두라고 한 것이다.


김정모는 <오빠밴드> 말고는 기댈 곳이 없는 절대약자다. 그에게 <오빠밴드>라는 프로그램은 그저 여러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아니다. 인생이 걸린 기회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에게 그렇게 쉽게 ‘성민 친구니까 너도 그만 둬’라고 하는 것은, 마치 휴대폰 메시지로 사람을 툭 자르는 것처럼 인격적 모멸감과 막막한 절망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한국처럼 인간의 삶의 조건이 극악한 나라에선 자른다는 말은 농담으로라도 절대로 해선 안 된다. 이미 안정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에 실린 무게와 절박함에 둔감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말은 심장 속까지 아리는 서러움일 수 있다.


이제 막 인생의 기회를 잡기 시작한 김정모에겐 너무나 가혹한 장난이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를 당할 때 사람은 ‘진심 후달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가볍게 웃자고 즐기는 몰카 치고는 지나치게 잔인했다.



- 하지만 김정모에겐 화려한 선물 -


몰카임을 밝히고 난 후 김정모는 서럽게 울었다. <패밀리가 떴다> 몰카 이후에도 박시연이 울었었지만 그 눈물은 뭐랄까, 좀 뜬금없었다고 할까?


하지만 김정모의 눈물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에겐 삶이 걸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몰카가 엉뚱하게 인간의 진심을 건드렸다. 이것은 시청자에게 인간 김정모를 느끼게 하는 기회를 선사했다. 그리고 까닭 없이 억울하게 당하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했다. 김정모라는 캐릭터에게 감정이 이입된 것이다.


이제 시청자는 김정모의 응원군이 될 것이다. 김정모가 성장하는 모습을 시청자는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봐주게 될 것이다. 그가 요즘 논란이 되는 ‘거만병’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그의 뒤엔 언제나 시청자가 있을 것이다. 선배들에게 장난으로 몹쓸 짓을 한번 당한 대신에, 엄청난 자산을 얻은 셈이다.


이글을 쓰면서 성민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오빠밴드>를 검색했더니 바로 아래 연관검색어로 ‘오빠밴드 정모’가 떴다. 김정모의 순수한 모습이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오빠밴드>의 막장 몰카는 김정모를 벼랑까지 몰아붙여서 김정모에게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런 장난을 또 보고 싶지는 않다. <오빠밴드>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번 일은 부주의로 인한 실수 정도로 보인다. MC들은 그전까지 잘해왔다. 그들이 김정모를 구박하고 허드렛일 시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럴수록 김정모에 대한 시청자의 감정이입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음식 먹은 뒷정리를 김정모에게 다 떠넘기는 것을 보면서 유명MC들이 김정모를 살려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런 데서 <오빠밴드>의 ‘정’을 느낀다. 심장을 찌르는 몰카 말고 딱 이런 정도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