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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오빠밴드 김구라는 날로 먹지 않는다

 

내가 변태라서 그런가, 요즘 남들 다 보는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가 아니라 <오빠밴드>에 ‘버닝’하고 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예능 프로그램이 이 프로그램이다. 그 다음엔 <남자의 자격>.


아마도 내가 비록  신동엽처럼 ‘음악했던 놈’은 아니지만, 과거에 ‘밴드하는 친구들을 동경했던 놈’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쇼케이스에서 음악 전문가들은 <오빠밴드>의 음악적 미숙함을 날카롭게 지적했지만, 난 음악성과 상관없이 그저 좋기만 하다.


어차피 <오빠밴드>는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음악을 들려주기까지의 과정을 재밌게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건 음악성이 아니라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보이는 팀워크라고 하겠다.(물론 음악도 중요함)


<오빠밴드>가 재밌는 건 팀워크가 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긴장감과 공연이 잘 진행됐을 때의 카타르시스가 곁들여진다.


그런데 이 팀 중에서 유독 김구라가 욕을 먹고 있다. 하는 일 없이 날로 먹는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신동엽은 욕을 먹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웃음을 잃었다는 이유로 평가절하 되고 있다. 난 동의할 수 없다.



- 김구라는 날로 먹지 않는다 -


최근 김구라의 존재감이 부각되는 사건이 있었다. <오빠밴드>팀이 강릉에 갔을 때다. 거기서 김구라는 자기 스케줄이 있다며 초반에 빠졌다. <무한도전>에서도 어떤 멤버가 일찍 빠질 때가 있다. 그때 다른 구성원들은 그것을 우스개의 소재로 삼는다. 사실 그래도 될 만큼 여러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일시적으로 빠지는 것은 크게 티가 안 나는 일이다.


<오빠밴드>에선 김구라가 먼저 간다고 하자 다른 멤버들이 걱정스러워했는데, 그게 설정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김구라의 자리는 크게 느껴졌다. 아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하면, 먼저 갈 경우 다른 사람들을 맥 빠지게 하는 사람이 꼭 있다. 김구라가 바로 <오빠밴드>에서 그렇게 보였다.


사람들이 김구라에게 날로 먹는다고 하는 것은, 김구라가 악기도 다루지 않으며 고생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악기를 다루거나 일을 해야만 한다는 법이 있나?


아무리 <오빠밴드>라고는 하지만 <오빠밴드>은 엄연히 밴드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엔 진행자가 있어야 한다. <오빠밴드>엔 진행자가 없다. 김구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사실상 진행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오빠밴드>엔 양대 대상 MC가 있다. 그중에서 신동엽은 웃음을 잃었고, ‘아동탁’은 매주 재롱잔치를 하느라 바쁘다. 저마다 자기 것만 쥐고 있으면 팀의 유기성이 살아나지 않는다. 김구라는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할 역할을 안 맡았지만, 모두가 자기 역할을 하도록 하는 토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밴드의 입장에선 날로 먹는다고 할 수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가 할 일을 충분히 해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은 본 대로 느낀다. 화면을 통해 보이는 모습은 이렇다. 모두들 엄청 스트레스 받으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김구라는 입만 가지고 따라다니는 듯한 느낌. 남이 밥상 차릴 때 숟가락만 들고 따라다니는 구도인데, 아주 안 좋다.


어차피 인간이 이성적이지 않고, 감성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시청자가 김구라를 이해할 순 없고, 김구라가 시청자에게 맞춰야 한다. 화면에서 고생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사람들은 김구라도 함께 밥상을 차리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 웃음 잃은 신동엽의 역할은? -


탁재훈은 ‘아동탁’으로 <오빠밴드>에서 훨훨 날고 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나, 공연무대에서나 탁재훈의 역할이 단연 압도적이다. 공연 전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역할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탁재훈이 해주고 있다. 김건모 공연편에서 탁재훈이 늦은 것은, 밴드의 입장에선 욕먹을 일이나 프로그램의 효과면에선 대박인 이벤트였다.


탁재훈이 연일 ‘아동탁’ 재롱잔치로 그 천재적인 개그감을 뽐내고 있을 때 신동엽은 웃음과 말을 함께 잃었다. 얻은 건 굼벵이처럼 실력이 늘어가는 베이스 하나뿐이다. 이것을 두고 왜 신동엽은 탁재훈처럼 못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신동엽이 리얼버라이어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신동엽이 웃음을 잃음으로 해서 <오빠밴드>는 리얼이 되고 있다. 신동엽은 리얼, 탁재훈은 버라이어티인 것이다. 그 둘 사이를 매개하는 건 김구라다.


신동엽은 한국 최고의 MC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에서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몇 명 중의 한 명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말을 잃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베이스를 퉁긴다. 탁재훈이 신기의 애드립을 날리고 있는데, 그 옆에서 ‘으따으따’를 했다고 소박하게 좋아한다.


이건 이들이 지금 하는 ‘밴드에의 도전’이 장난이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진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진심으로 몸을 던지는 ‘무모한 도전’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처럼, <오빠밴드>가 진심으로 밴드의 꿈에 도전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보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신동엽이 정말로 진지하게 연습해서 베이스를 여유 있게 다루는 날, 시청자는 그 성취감을 함께 느낄 것이다. 마치 <무한도전> 멤버들이 어떤 도전에 성공했을 때, 멤버들의 카타르시스를 시청자가 공유하는 것처럼. 그런 감동을 주려면 그것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믿음을 먼저 줘야 한다. 구석에 앉은 신동엽의 긴장된 표정이 바로 그 믿음을 주고 있다.


<오빠밴드>가 빈사상태에 빠진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살리는 기적을 이루고, 와중에 밴드활동 붐까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옛날엔 우리에게도 청소년들이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스스로 악기를 배우고 밴드활동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밴드키드’들이 자라서 한국가요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오빠밴드>는 그런 기억들을 건드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