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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서태지에서 티아라로, 아이돌잔혹사

 

서태지와 아이들에게서 모든 것은 시작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거둔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 1980년대의 신화였던 이문세, 들국화, 해바라기, 이용 등을 가볍게 뛰어넘는 것은 물론, 조용필의 성공마저 작아 보일 정도의 엄청난 성공. 그건 거대한 로또였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인해 분명해진 것은, 누구라도 10대의 취향에 맞는 강렬한 사운드와 춤을 장착한 그룹을 내놓는다면 대박을 칠 수 있을 거란 점이었다. 그 엄청난 대박의 가능성을 놓고 자본이 움직이지 않을 리가 만무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에 해체한다. 그리고 바로 이해에 HOT가 데뷔한다. HOT는 철저히 기획사의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보이밴드였다. 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 중에서 음악적 진정성을 뺀 모든 것을 계승했다.


바로 다음 해에 젝스키스가 데뷔하며 본격적으로 아이돌의 시대를 열어간다. 광적인 팬클럽의 괴성이 모든 것을 포식하는 시대로. 이 두 그룹 팬클럽이 벌였다는 패싸움 사건은 이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삽화다.


- 한류 폭탄 -


HOT는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 정도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 접어들어 중국에 진출하며 한류의 기폭제가 된다. 이젠 판돈이 더 커졌다. 동아시아 시장이 한국 아이돌의 안마당이 된다.


판돈이 더 커진 것, 즉 시장이 더 커진 것은 산업의 성장을 초래한다. 연예산업의 팽창이다. 그렇게 팽창하는 동안 이렇다 할 규제는 없었던 걸로 보인다. 글자 그대로 자유시장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자유시장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이어진다. 불공정계약, 감금, 폭행, 아동노동, 착취 등. 연예산업의 특성상 성착취까지 나타났다.


어두운 그림자를 뒤로 하고 한국 연예산업은 나날이 화려해져갔다. 보다 큰 시장을 노리고 투자된 아이돌은 시장을 더욱 넓혔고, 더욱 넓어진 시장은 다시 보다 많이 투자된 아이돌을 가능케 했다. 급기야 한국은 동아시아의 주요 아이돌 공급국이 된다.


- 남자 다음엔 여자 -


HOT와 젝스키스 등 보이밴드가 인기를 얻고 나자, 당연히 걸그룹이 뒤를 이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양대 걸그룹이 각축을 벌인다. 바로 SES와 핑클이다. 뒤를 이어 베이비복스가 인기를 얻는다.


최근 동방신기, SS501 등 남자 아이돌 전성기 이후에 걸그룹이 부상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또다시 경제위기다. 지금의 걸그룹 시대는 막장 드라마 천하와 함께 찾아왔다. 한국인은 현재 시름을 잊게 해줄 자극을 원하는 것 같다.


걸그룹 1차 전성기 때도 소녀 코드 다음에 섹시 코드가 부상했었다. 지금도 그렇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면 SES는 유로댄스, 핑클은 소녀율동, 베이비복스는 소녀섹시였는데 이 구도도 현재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 미쳐버린 아이들 -


한국의 아이들은 지금 미친 상태다. 청소년의 상당수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거나, 자살을 실행한 적이 있으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학교를 거부하며, 폭력에 물들어있고, 심지어는 왕따를 자행할 정도로 인성이 파괴됐다. 아동기 때부터 강요된 입시경쟁이 인간성과 문화성을 망가뜨린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울분과 스트레스가 아이돌과 만난다. 아이들은 아이돌을 추종하거나, 스스로 아이돌이 되려 한다. 연예산업계는 그런 아이들을 팬클럽이나, 인재풀로 활용한다. 혹은 아이돌로 만들어주겠다며 금품을 끝없이 갈취하는 봉으로 이용하거나.


팬클럽의 괴성은 나날이 극렬해져가고, 그들에게 둘러쌓인 ‘오빠’들은 점차 국민과 멀어져갔다. 국민은 괴성 바깥으로 피신했으며, 한국 가요계는 결국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연말 가요대상 수상자의 노래를 일반인이 전혀 모르는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 국민동요의 등장 -


그러다 새 바람이 불었다. 빅뱅이 빅뱅을 터뜨렸다. 빅뱅의 노래는 일반인도 흥겹게 박자를 맞출 수 있었다. 누구라도 쉽게 듣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나이트클럽에서 누구라도 몸을 흔들어댈 수 있는 편안한 리듬. 이에 따라 30대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편 ‘빠순이’들에게 밀려나 버린 남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소녀팬클럽의 위세에 눌려 가요계에서 축출 당했던 남성팬들의 불온한 기운이 남한사회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의 기운이었다.

 

결국 걸그룹 혁명이 발발한다. 혁명을 지지하는 남성팬들과 기존 보이밴드 소녀팬들은 인터넷에서 전쟁을 치렀다. 소녀팬들은 드림콘서트에서 ‘소녀시대 침묵굴욕사태’를 연출하며 회심의 대공세를 취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공세는 ‘헛발질’로 끝났다. 역풍만 거세게 맞았고, 그 이후엔 걸그룹의 질주에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당시 걸그룹에 저항했던 소녀들의 일부가 현재 2NE1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중요한 건 걸그룹의 노래가 쉬웠다는 데 있다. 걸그룹은 그전 보이밴드들처럼 ‘그들만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남녀노소 온 국민이 따라 부르며 함께 놀 수 있는 노래를 부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노래들에 ‘후크송’이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후크송이든 뭐든, 결국 국민동요였다. 5살 짜리부터 어른까지 함께 즐기는 국민동요. 국민동요로 중무장한 걸그룹은 국민의 압도적 지지 속에 최전성기를 맞기에 이른다.


- 음악시장 붕괴 예능 패권 -


아이돌 시대가 전개되는 동안 한국 음악시장은 붕괴했다. 그에 따라 가수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 예능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져갔다. 아이돌은 예능 인재풀이 됐고, 특히 걸그룹은 예능의 꽃으로 그 위상을 확고히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그들을 본받은 아이돌들은 일정 기간 활동하고 앨범을 준비하러 사라지는 활동패턴을 보였다. 신곡이 나올 때마다 자신들이 이번엔 어떤 음악을 했는지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지금은 음악과 상관없이 언제라도 그들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다. 이젠 아무도 자신들의 음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저 쇼를 보여줄 뿐이다.


2009년 7월 말에 티아라라는 걸그룹이 데뷔했다. 그들은 음악프로그램이 아닌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다. 그들이 데뷔하는 자리에선 전화로 연결된 기획사 대표가 부각됐다. 마치 사장이 신상을 소개하는 자리 같았다. 아티스트가 아니라 회사의 상품. 그 자리에서 티아라에게 주어진 질문이 이것이었다.


‘개인기가 뭐예요?’


이것이 가장 최근에 데뷔한 아이돌의 모습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시작해, 티아라까지 진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