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여성의 ‘키 작은 남자는 루저’ 발언에 인터넷 민란이 일어났다. 마침내 12일에 그 여성이 학교 게시판에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자신이 이기적이고 신중치 못했으며, 대학생답지 않았고,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은 홍익대 학우들에게 사죄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일반인이 자신의 편견을 드러낸 일로 사죄해야 한다면 이 세상은 사죄할 사람 천지일 것이다.
일단, 그녀가 홍익대인들에게 사죄해야 하는 상황부터가 기막힌다. 그녀를 그렇게 몰아붙인 건 바로 우리 사회의 편견과 폭력이었다. <미녀들의 수다>가 방영된 후 인터넷엔 홍익대를 비난하거나 능멸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그녀는 다 큰 성인으로 그녀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그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지, 홍익대생들이 연대책임을 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른 학생들이 그녀를 선출해 대표로 내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홍익대 전체를 싸잡아 욕했다. 그래서 홍익대인들이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네티즌은 홍익대에 직접적인 공격까지 가했다. 해당학과, 교수, 학교직원 등에 무차별적으로 항의했다고 한다. 한 개인으로 집단 전체를 낙인찍는 편견에 직접적인 공격이라는 폭력성까지 더해진 것이다. 그 결과 그 여성은 학우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사실은 그 여성의 일로 학교를 싸잡아 멸시하고, 더 나아가 학교를 공격한 네티즌이 홍익대 측에 사과해야 할 일이다. 학교에 사과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네티즌은 그 여성에게도 사과해야 한다.
이 사태가 터지고 나서 1차적으로 황당했던 것은 당연히 키와 관련된 편견이지만, 2차적으로 그보다 더욱 황당했던 것, 황당을 넘어 공포를 느끼게 했던 것은 그녀에 대한 마녀사냥이었다.
대중은 그녀의 사생활을 마음껏 까발렸다. 학교성적이나 이력 등은 물론 지극히 은밀한 글들까지 샅샅이 찾아내 공개한 것이다. 사적인 정보들이 너무나 자세히 공개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사생활을 사찰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한다. 그런 것을 가리켜 파시즘이라고 하며, 공포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인식한다. 권력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같은 사태다. 그런데 제도화된 폭력인 국가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일반 대중도 얼마든지 개인에 대해 파쇼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번 경우가 그렇다. 그 여성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녀가 말한 내용에 어처구니없는 편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이 잘못됐다는 반대 의견을 개진하면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한국의 네티즌들은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를 매달고 탈탈 털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수치심을 느낄 법한 사생활 정보들을 마구 캐내 인터넷 광장에 게시했다. 난 그 정보들을 보며 숨이 막혀왔다. 마치 내 사생활이 까발려지는 느낌이었다.
또 그녀의 사적인 공간인 학교에 그녀를 처벌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의견을 개진했다는 이유로 대중이 사생활 사찰과 물리적 폭력을 감행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인민재판’이었다. 무섭지 않을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도 당해선 안 될 일을 그 여성은 당했다. 시민으로서의 인권을 유린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사과해야 할 것은 네티즌이다. 이번에 나타난 대중적 처벌은 그 수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누구도 시민이 사생활을 누릴 권리를 짓밟을 수 없다. 그것이 권력이든, 대중이든.
그 여성은 지금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을 걸로 짐작된다. 요즘 사냥당하는 장나라 집안과 그 여성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한국사회가 너무 살벌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추가하자면, <미녀들의 수다>에 손해배상이 청구됐다고 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풀 문제를 소송이나 손해배상 요구로 풀게 되면, 한국은 소송공화국이 될 것이다. 그러면 표현의 자유가 극단적으로 억압된다. 그런 분위기에선 모든 종류의 시사비판 프로그램이 힘 있는 단체나 기업의 소송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러면 우리 사회는 암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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