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그저 소방관들만 불쌍하다

그저 소방관들만 불쌍하다


또다시 소방관이 순직하는 참변이 벌어졌다. 숨진 소방관은 소방인력 부족으로 혼자서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지역대’에서 밤샘 근무를 했다. 26일 새벽 3시 경 화재 현장에 홀로 출동했다. 그리고 화재진압을 시도하다 10여 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사고 후 혼자 방치돼 있다가 인근 지역에서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발견돼 옮겨지다 숨졌다고 한다. 인근 지역 소방관들에게 현장을 맡기고 그는 혼자 불길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걸 막으려 이동하다가 변을 당했다. 같은 사무실 동료가 있었다면 그가 단독으로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다.


동료 소방관은 “지역대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한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갔다”며 “1인 출동만 아니었다면 50여분 동안 응급조처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한겨레 2008-02-26]


숨진 소방관이 일했던 지역대처럼 소방관 1명이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지역대는 경기도내에만 79곳에 이른다고 한다. 고인에겐 70대 부모와 부인, 그리고 11살, 13살 짜리 아이가 있다고 한다.


비탄한 소식이다.


-동네북 소방관-


숭례문 화재 사건 이후 소방당국을 향한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국보가 불에 타는데 속수무책이었던 소방관들을 징계하기 위해 혹시나 무슨 꼬투리가 없는지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결과는 이것이었다.


‘숭례문 방화' 무선교신서 중과실 못 찾아

[연합뉴스 2008-02-17]


초기진화 애초에 불가능했다…문화재 소방법령·지침 하나도 없어 애먹어

[국민일보 2008-02-17]


설사 무슨 실수가 있었어도 그렇다. 잘못을 꼬투리 삼아 몇 명 날려봤자 화풀이밖에 안 된다. 이지메다. 격무에 시달리는 소방관이 날벼락처럼 터진 국보 화재에 어떻게 제대로 대처한단 말인가? 우리 국민들은 일선 공공서비스의 불편함, 부족함만을 탓하지 한국 공공서비스가 처해있는 현실은 외면한다.


우리 재정규모 비율이 OECD 뒤에서 2등이라는 사실도.


숭례문 화재 당시 소방관들은 숭례문 현판을 땅바닥에 떨어뜨려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문화재 보호 의식이 없다고 말이다. 그때 현판을 떨어뜨린 사람은 중부소방서 박성규 소방관이다. 아래는 박 소방관 인터뷰 기사다.


땅에 떨어지는 순간 가슴도 무너졌다” 숭례문 현판 구한 박성규 소방관

[경향신문 2008-02-14]

”무전을 들으니까 숭례문에서 연기가 난다고 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큰일났다 싶었다 ... 현판은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것 아니냐 ... 동료와 상의해 현판을 구해야겠다고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 현판이 그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 굴절차 바스켓(사람이 타는 바구니)에서 현판 안전고리를 풀려고 하는 순간 건물 안쪽 벽재의 불길 때문인지 뒤에서 물을 쐈다. 현판 오른쪽 부분이 틀어지면서 균형을 잃고 현판 자체가 빠져나갔다. 힘으로 버텨보려고 했는데 굉장히 무거웠다. 떨어지는 순간 ‘아이쿠’ 소리가 절로 나왔다 ... 괜한 작업을 했나 싶기도 했다. 더 잘 했어야 되는데 ... 창피한 이야기지만 숭례문 구조나 건축물 재질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 밖에서 물을 쏴대도 물 한 방울 안 들어가는 그런 구조였다. 우리도 놀랐다.”


떨어뜨린 현판은 아랫부분이 부서졌다. 복구하는데 3개월 가량 걸릴 거라고 한다. 그러나 부서진 소방관들의 마음은 복구하기 힘들 것 같다.


-차라리 현판을 부숴 전시하든지-


2008년 1월 12일에는 안성소방서 진압대장이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당시 그는 비상출동 때문에 3일째 꼬박 근무중이었다. 2007년 말에도 진화작업을 하던 소방관이 숨졌다. 결혼을 한 달 앞둔 사람이었다.


당시 동료 소방관들은 "만성적 인력 부족으로 2명이 한 조가 돼 현장 진입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 보니 혼자 들어갔다 변을 당한 것"이라며 소방공무원들의 근무 현실에 울분을 토했다.

[연합뉴스 2008-01-12]


현판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중하지 현판이 중한가? 만약 소방관이 숭례문 현판을 급히 떼어내다 부상이라도 입었으면, 그런데도 사람들이 현판 상했다고 소방관을 탓한다면 그 현판을 부숴버려 후세를 경계하기 위해 전시할 일이다. 그 현판을 안평대군이 썼든 양녕대군이 썼든 뭐가 중요한가? 공공복리보다 수백 년 전 글씨조각이 더 중한가?


소방관들의 격무를 평소엔 방치하다가, 작은 정부하고 공무원 더 줄이겠다는 정치인에 환호를 보내다가, 막상 일 터지니까 소방관 탓하는 매정한 국민들을 경계하는 것이 우선이다. 작은 정부 기조로 계속 가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방관들이 또 죽음을 무릅써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숭례문 화재 이후 인명 구조나 화재 진압에 투입될 때면 긴장감이 더 높아진다 ... 불이 나면 상황 파악이 먼저인데 피해자 분이나 시민들은 ‘빨리 안하고 뭐하냐. 놀고 있냐’고 재촉한다” (서울의 한 소방관)

"숭례문 화재로 비난도 받고 하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커지고 화재 진압이 부담되는 게 사실" (서울의 다른 소방관)

[연합뉴스 2008-01-12]


숭례문이 사람 잡겠다. 왜 소방관 탓을 하나. 왜 대책 없이 개방쇼를 벌인 정치인과, 작은 정부하겠다는 정치권에 분노하지 않는가? 만만한 사람들 대상으로 화풀이나 하는 국민은 문화재를 가질 자격도 없다.


-불쌍하거나 분노하거나-


소방방재청 자료에 의하면 2007년에 화재 3만1778건, 구조·구급이 176만8000건, 그리고 122만5000여 명이 긴급구조 및 응급조치를 받았다. 멀뚱히 서있는 숭례문보다 소방관들이 진짜 국보다.


전국 소방공무원 교대인력 2만2611명 중 92.6%(2만937명)가 24시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즉, 근로기준법상 주40시간의 두 배가 넘는 주 84시간 근무체제다.

[국정브리핑 2008-01-18]


국민들한테 인정도 못 받고 외롭게 고생하는 걸 보니 정말 소방관들이 문화재가 맞나보다. 우리나라는 소중한 것이 무시당하는 나라니까.


소방방재청은 인력 증원을 계획했으나 예산부족 때문에 실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원래도 너무나 ‘작은 정부’였기 때문에 예산이 있을 턱이 없다. 아이들이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밥을 못 먹는 나라다. 아니, 돈이 없으면 아예 학교를 못 가는 나라다.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 작은 국가, 작은 정부.


24시간 맞교대 체제인데 쉬는 날 긴급상황이라도 발생하면 72시간 내리 근무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게다가 소방관에게 발생하는 ‘긴급상황’이란 바로 유독가스를 마시는 일을 뜻한다. 근무 중 쓰러진 안성소방서 진압대장도 이런 경우였다. 현판 떨어뜨린 거? 이런 거 걱정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인력이 부족해 펌프차 운전자가 화재 진압에 나서고 진압 인력이 구급작업에 투입되기도 한다고 한다. 언젠가 전문성 부족 때문에 사고가 터지면 또 소방관들이 욕을 먹겠지?


소방공무원 3명중 1명 ‘건강 이상’… 하루 2교대 주 84시간 살인적 격무 탓

[국민일보 2007-11-14]


2006년 기준으로 검진 받은 소방공무원의 34.1%인 8872 명이 건강 이상이라는 기사다. 2005년에 비해 44%가 늘었다고 한다. 폭등하는 건 부동산가격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쪽에서 폭등한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희희낙락하면서 10년을 잃어버렸다고 ‘정신착란’ 카니발을 벌이고 있을 때, 한 쪽에선 중노동으로 생명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새 정부는 불로소득 라인에서 나왔다. 나라의 병이 폭증하고 있다.


예산 부족으로 검진조차 못 받은 소방관들이 더 있으므로 건강에 이상이 있는 소방관 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이 기사는 전하고 있다. 최근의 시장화, 자유화 개혁은 평가지상주의를 그 기조에 깔고 있다. 평가에 따른 보상 차등이 자유화 개혁의 핵심 원리다. 그들이 평준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건 아이들에게 차등체제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평가-차등 체제에 따라 소방관들은 평가를 잘 받기 위해 몸의 이상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하니 실제 병세는 더욱 깊을 것이다.

“死地서 중노동하는데 나가라니…”

“2교대 격무에 되레 사람 부족한데…”허탈ㆍ분노

[헤럴드경제 2007-03-20]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시 공무원 3% 퇴출정책에 반발하는 소방관들의 목소리다. 이 기사에 의하면 당시 소방본부는 총 157명을 퇴출 대상으로 선정해야 했다고 한다. 이런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준 것은 우리 국민이다. 새 정부는 아니나 다를까 정권 잡자마자 공무원 감축부터 들고 나왔다. 숭례문 불 못 끈 소방관 욕할 기운이 있거든 국민들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데 써야 한다.


2006년에 소방관 초과근무수당 미지급액이 약 59억6,000만원에 달했다. 소방공무원 1인당 평균 매월 47시간씩 초과근무를 하고도 보상을 못 받았다는 뜻이다. 서울 지역 미지급액은 10억8,000만 원에 달했다. 그리고 비번일 때 동원되고도 비번동원수당이 거의 지급되지 않았다. 출동수당도 출동 횟수에 상관없이 일 3,000원씩만 간식비 명목으로 지급됐다. 게다가 순직보상 범위가 제한돼 출동과정, 구급활동 등을 하다 숨진 경우엔 위험순직보상을 받지 못했다.(서울경제 2006-12-25)


임산부 소방관‘분노의 역류’

“태아 걱정되는데 화재현장 출동에 야간당직 하라니…”

일부는 하혈에 유산아픔까지… 홈피 비난글 빗발

[헤럴드경제 2007-01-25]


2007년 1월 기준으로 소방방재청과 전국 소방서에 근무하는 1300여 명의 여성 대원은 임신 중에도 화재 진압과 구급 처치, 야간 당직을 하고 있었다. 첫째, 인력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 소방청에서 임산부 야간 근무 금지령을 내려도 이행감독권이 지자체에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소방청만을 탓할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건 우리나라가 작은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겨 국민을 방치하는 건 분권화 정책이다. 각종 수당도 지자체 예산에서 지급되다 보니 지방간 불균형이 발생했다. 숭례문에서도 지자체의 관리소홀이 문제가 됐었다. 이명박정부는 초중등 교육정책도 각 지자체 단위의 교육청에 위임하려 한다.


작은 정부, 분권화, 자유화 개혁에 치이고 사는 우리 국민들이 불쌍하다. 하지만 어쩌랴 그런 정책기조를 지지한 건 국민 자신인 걸. 결정권 없이 몸으로 고생해, 초과근무수당 못 받아, 서서히 병들어, 때 되면 욕먹어, 그저 동네북 노릇하는 소방관들만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