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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누구세요의 차승효가 인간말종인 이유와 인간적인 경제

 

누구세요의 차승효가 인간말종인 이유와 인간적인 경제


 요즘 <온에어>에 치어 기를 못 폈던 <누구세요>가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어린 여주인공(고아라)과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사냥꾼인 남주인공(윤계상)이 엮어내는 이야기가 점점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다. <누구세요>는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지만 윤계상을 바라보는 극의 시선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극중에서 윤계상은 미국에서 온 사람으로 미국계 투자자문사 대표다. 그는 기업을 사고 팔면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M&A 전문가다. 그의 배후엔 미국자본뿐만이 아니라 일본자본도 있다. 한국기업은 그의 눈엔 이익을 뽑아낼 대상일 뿐이다. 그는 부자다. 미국과 첨단 투자금융업, 그리고 젊은 부자. 요즘 한국 1등 신랑감의 키워드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여주인공인 고아라의 아버지(강남길)은 윤계상을 싫어한다.


강남길 : “난 또 니가 주제도 모르고 우리 딸내미한테 들이대나 싶어서 가슴이 철렁했었는데”

윤계상 : “내 주제가 어때서요? 내 주제가 (가난한) 댁의 딸 주제보다 훨씬 낫습니다.”


 현실이라면 대부분의 부모가 윤계상같은 사위감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강남길은 윤계상더러 ‘인간말종’이라며 자기 딸 곁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한다. 드라마 <누구세요>는 윤계상 같은 부류를 사람취급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극이 전개되면서 윤계상은 개과천선할 걸로 예측된다.


 윤계상의 첫 등장장면부터 의미심장하다. “인간들 참 이상하죠?”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대사다. 눈 내린다고 좋아했다가 눈 때문에 길 막힌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의 감상을 그는 비웃는다. 하룻밤 새 간사하게 바뀌는 인간의 마음. 그는 이것을 믿을 게 못 된다고 규정한다.


 그가 이 말을 하는 대상은 M&A하려는 한국 기업의 회장이다. 회장은 애걸한다. “경영권은 포기할 테니 제발 공중분해만은 막아주게.” 그러나 윤계상은 신도시 개발계획을 들이대며 공장을 매각하겠다고 한다. 회장은 “돈이라면 죽은 놈 골수까지도 빼쳐먹을 놈”이라며 그를 저주한다.


 같은 시간 여주인공 앞에는 신체포기각서를 들고 사채업자들이 나타난다. 작가가 의도하고 배치한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기막힌 설정이었다. 딱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대한민국이 당했던 상황이다. IMF라는 사채업자가 신체포기각서를 들고 나타나 한국에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뒤이어 나타난 건 미국 자본이었다. 미국의 투자금융사와 펀드들. 그들은 한국의 기업들을 사서 쪼개고, 사람을 자르고, 팔아서 이익을 극대화했다. 그 와중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직장을 잃고, 더러는 목숨까지 잃었다.


 금융자본은 숫자로 이루어진, 숫자만 보는 자본이다. 그들에게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수익성’만 보일 뿐이다. 노동자 만 명을 잘라 수익률이 10% 오를 수 있다면, 멀쩡한 기업을 허공에 공중분해시키는 대신 매각수익을 더 얻을 수 있다면 주저 없이 그 길을 택한다.


 M&A는 기업을 팔고 사는 상품, 즉 물건으로 볼 때 가능해지는 일이다. 기업은 사회적 관계의 구성이고, 인간들의 집합체다. M&A는 근본적으로 그것을 부정한다. M&A의 논리 속에서 기업은 지분(주식)으로 이루어진 소유권의 대상일 뿐이다. 인간성이 발붙일 공간은 없다. 그래서 윤계상은 인간의 감성을 비웃는다. 극 초기의 윤계상은 말하자면 금융자본의 인간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개봉됐던 헐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에도 이런 부류의 인간형이 등장했었다. 인간적 감성이 거세된 극히 냉정한 이익추구기계를 그 영화는 ‘아메리칸 갱스터’라고 했다. 윤계상은 ‘아메리칸 갱스터’와 유사했다.


 IMF 사태 이후 한국사회는 총을 차지 않은, 고급 양복과 수치계산으로 무장한 신종 갱스터들에게 점령당했다. 기업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한다. 한국 기업에게 지금처럼 주가가 중요하고, 수익성이 중요해진 때가 없었다. 금융자본의 압력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국기업은 수익을 극대화해 배당과 자사주매입으로 그들에게 ‘공납’을 바친다. 대신에 노동자와 하청 중소기업 등 한국 내부경제로 돌아오는 몫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이것이 최근 10년 민생파탄의 구조다.


 <누구세요>에서 윤계상의 부하직원이 향후 성장가능성을 기준으로 대상기업을 물색하려 하자 윤계상은 “당신 그만 두지 그래”라며 매섭게 쏘아붙인다. 금융자본에게 중요한 건 ‘미래성장’이 아니라 당장의 ‘수익’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금융자본이 득세한 후 성장잠재력이 훼손되고 있다.


 매입 기업이 지역 경제를 위해 고용을 유지하자 그는 전면적 기계화, 인력감축 후 매각을 지시한다. 부하직원이 “이번 건은 회사 하나를 사고파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역경제와 지역주민 전체를 수장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라고 해도 그는 냉소할 뿐이다.


 이것이 지금 현재 한국경제의 모습이다. 한국 기업의 젖줄 역할을 했던 은행을 외국자본이 장악해 수익성 극대화를 추구하자 은행은 경제성장을 위한 기업대출을 줄이고 단기이익극대화를 위한 소매금융에 치중했다. 그에 따라 중소기업은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는 대신, 주택담보개인부채만 하늘 높이 치솟아 부동산 버블이 탄생했다.


 대기업이 아무리 큰 이윤을 내도 모두 금융자본에게로 돌아갈 뿐 지역사회와 국민경제는 고사하고 있다. 기업 가치 극대화를 위한 인력구조조정은 이젠 한국사회의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과거에 한국 기업의 목표는 고용유지와 국가경쟁력 증진이었다. 이젠 주주를 위한 수익극대화가 목표다. 그에 따라 기업수익성이 좋아지고 종합주가가 사상최고치까지 올랐는데 동시에 민생파탄이 찾아왔다. 이젠 고용되기도 힘들고, 고용돼도 비정규직이거나, 설사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가 됐다. 윤계상 같은 사람이 시장에 개입해 이익을 챙길 때마다 국민경제와 노동자는 가난해진다.


 <누구세요>의 가치관에서 이런 건 ‘악’이다. 여주인공 고아라의 아버지 시각에서 볼 때 이런 일은 ‘인간말종’이나 하는 짓이다. 극 중에서 그는 유령이다. 그는 가끔 윤계상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그때 그는 윤계상의 입으로 이런 말을 하게 한다.


 “여러분 나는 쓰레깁니다! 지역경제도 살리고 지역주민들도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다시 똑바로 만들어 와. 알았어!“


 기업 수익성만 따지는 경제는 ‘쓰레기 경제’라는 것이 <누구세요>의 경제관념이다. 이 드라마는 기업 수익성과 지역경제와 지역주민과 노동자들이 공존공영하는 것이 ‘좋은 경제’라고 인식한다. 현재 한국경제구조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어느 기업이 이런 식으로 경영했다가는 당장 주가폭락으로 주주들이 보복할 것이다.


 주주와 금융자본은 근본적으로 신체포기각서 들고 다니는 사채업자와 그 속성이 같다. 기업을 쪼개든 분할매각하든 이익률만 올라가면 그뿐이다. 이런 것은 인간적이지 않다. <누구세요>에서 윤계상은 여주인공을 만나 개과천선할 듯하다. 그러나 한국사회 현실은 암울하다. 금융자본을 대리하는 부유한 윤계상은 한국인의 이상형이다. 드라마가 가리키는 인간적인 경제, 우리에게 이런 건 단지 꿈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