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일밤’은 그동안 암흑의 역사를 겪었다. 뭘 해도 망해나가는 수모의 역사였다. 스타급 예능인들을 아무리 내세워도 시청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랬던 ‘일밤’의 흑역사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 아이들을 내세운 ‘아빠 어디가’ 코너가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 최고의 방송인들도 못했던 ‘일밤’의 부흥을 아이들이 해냈다.

 

최근 몇 년 동안 명절 특집 예능의 주인공은 아이돌이었다. 아무리 매체들이 지나친 아이돌 편향을 비판해도 이런 구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지난 설연휴 기간 동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은 모두 아이들을 내세운 것들이었다. 아이들이 아이돌마저 밀어낸 것이다.

 

뿐인가? 만약 아이가 아니었다면 ‘7번방의 선물’의 천만 돌파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예승이 역할을 맡은 갈소원 양의 귀여움이 흥행 폭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바야흐로 아이들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아이들은 바보 ‘끝판왕’

 

아이는 혼자 나오지 않는다. 부모와 함께 나온다. 따라서 아이를 통해 TV는 가족애를 전해줄 수 있다. 요즘은 ‘7번방의 선물’, ‘레미제라블’의 흥행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이 가족애, 휴머니즘 등에 열광하는 시대다. 아이들이 시대정신인 것이다.

 

아이와 부모가 TV에서 보여주는 것은 실제 삶의 이야기다. 그래서 마치 TV라는 창을 통해 그들 가정의 사생활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고로 남의 사생활 구경은 싸움 구경, 불 구경과 맞먹는 재미를 준다고 했다. 이런 것도 아이들 전성시대의 이유다.

 

요즘 시청자들이 열렬히 원하는 것은 리얼리티다. 사람들은 조작, 연출, 가식 등에 치를 떨며 리얼할 것, 꾸밈없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들이야말로 ‘리얼 오브 더 리얼’, 궁극의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꾸밀 능력 자체가 아예 없으니까. 그래서 꾸밀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는 10살 이상보다, 아무 생각 없는 10살 미만의 아이가 각광 받는다.

 

똑같이 아이가 나오는 데도 ‘붕어빵’이 아닌 ‘아빠 어디가’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람들은 ‘붕어빵’에 나오는 아이들의 말이 예능적 설정이라고 의심한다. 그 아이들은 이제 반예능인이 다 됐다고 느낀다. 반면에 ‘아빠 어디가’에 나오는 낯선 아이들은 정말 리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동안 대중이 리얼버라이어티에서 원했던 것은 ‘평균이하’ 캐릭터였다. ‘무한도전’, ‘1박2일’ 등 국민적 인기를 모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모두 평균이하 캐릭터들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원래 TV 속 바보 캐릭터를 좋아한다. 바보를 보면서 안도감과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과 배삼룡 이래로 바보는 보편적 사랑을 받아왔다.

 

아이들은 바보계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과 ‘1박2일’에선 멀쩡한 어른들이 바보를 가장했지만, 아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원래 아는 게 없으니까. 구구단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모른다. 상식도 없고, 돈 계산도 할 줄 모른다. 궁극의 바보는 시청자에게 궁극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바보는 또 순수하다. ‘7번방의 선물’에서 아버지가 지적장애인으로 나온 것은 순수한 사랑, 절대적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보는 세속적인 이해타산, 경쟁구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존재다. 사람들은 그런 바보를 보며 일종의 휴식을 얻는다. 한국인은 요즘 극단적인 공포, 불안, 긴장 속에 살고 있다. 순수하고 무해한 바보는 그런 한국인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래서 아이들은 시대의 총아가 되었다.

 

 

◆아이들 예능의 원초적 자극성

 

모든 매체가 아이들이 득세하는 것을 두고, 자극적이었던 예능이 휴머니즘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자극성과 아이들은 서로 반대인 걸까? 그렇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원초적 자극성이 있다.

 

3B는 인간의 원초적 흥미를 자극하는 대표적인 요소들이다. 뷰티(아름답고 섹시한 여성), 비스트(귀여운 짐승), 베이비(귀여운 아이)를 합쳐 3B라고 한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귀여운 동물의 사진이고 ‘브라우니’라는 동물 인형도 각광받았다. 꿀벅지, 청순글래머, 섹시 뒤태 화보도 각광받는다. 그리고 아이들. 원초적인 자극의 시대인 것이다.

 

성적인 자극에 흥미를 가지는 것만큼이나 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다. 이것은 모두 인간이라는 종의 보존과 관련이 있다. 아이를 만들고 잘 키워줘야 인간이 멸종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엔 성과 아이에 대한 흥미가 각인되어 있다. 그러므로 아이를 내세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방법 중 하나다. 아이들 전성시대 속에는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서 비롯된 휴머니즘의 갈구와 함께, 본능적 욕망이 뒤섞여 있다. 지금은 가족, 19금, 아이 등 모든 것이 가장 1차원적으로 내려가는 시대인 것이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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