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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여왕의교실, 무엇이 문제였나

 

고현정 출연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여왕의 교실>은 시청률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시청자와 언론매체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일단 초등학생의 이야기에 몰입할 시청자층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초딩’은 한국에서 ‘밉상’의 대명사다. 초등학생을 사람들이 귀엽다고 느낀 건 옛말이고, 이젠 귀여움의 연령대가 8살 이하로 내려갔다. <아빠 어디 가>에선 초등학교 2학년 이상 아이들에 대한 반응이 그보다 어린 아이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준수의 형과 민국이의 동생이 동시에 나타났을 때, 모든 화제를 민국이 동생이 독차지했었다. 인터넷 시대가 시작된 후 초등학생들이 영리해지고, 어른들과 ‘맞짱’ 뜨면서 사이버 세계를 분탕질하는 악동군단으로 인식됐다. 이젠 초등학생들도 알 건 다 안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초등 남학생이 여탕에 가는 걸 어른들이 부담스러워할 지경이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의 느낌이 사라졌기 때문에 초등학생 이야기에 몰입할 시청자층이 많지 않았다.

 

학교 이야기를 아주 리얼하게 다뤘다면 초등학생과 그 학부모는 열혈 시청자층이 될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드라마는 초반에 리얼보다는 판타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음악이 그런 분위기를 강화했는데, 이것도 몰입을 방해한 요소였다.

 

초중반에 분위기가 어둡고 답답한 것도 재미를 저해했다. 답답한 분위기의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시청률면에서 크게 성공하기가 어렵다. <여왕의 교실>은 드라마의 분위기도 답답했고, 주인공의 성격도 답답했다. <여왕의 교실> 고현정에 비견할 만한 역할은 <공부의 신>에서 김수로를 꼽을 수 있는데, 고현정과는 달리 김수로는 드라마 속에서 대단히 시원시원했다. 주인공에게서 이렇게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져야 시청률이 올라간다.

 

초등학생이 귀여운 아이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아이는 아이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서 그려진 이야기는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했다. 교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린다던지, 그 외 전체적으로 너무 강한 에피소드들이 나와서 이것 역시 몰입을 방해했다. 이럴 거라면 배경을 초등학교가 아닌 중학교로 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귀여운 아이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강한 이야기를 소화할 만큼 충분히 큰 것도 아닌 초등학생이란 설정이 애매했다.

 

최근에 국민여론에 의해 초등학생 일제고사가 폐지됐을 정도로 아직은 초등학교에서만큼은 입시경쟁을 자제하자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초반에 너무 지나치게 성적 경쟁을 강조해서 그것도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이 부분도 배경을 중학교로 했다면 얘기가 또 달라졌을 것이다. 중학생은 본격적인 고교 입시경쟁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강하게 다뤄줘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후반부에 찬사가 쏟아졌다. 무섭기만 했던 고현정이 사실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헌신하는 교사라는 것이 밝혀지고, 처음엔 황당한 말을 많이 했던 그녀가 나중엔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개념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찬사가 쏟아졌는데, 그렇다면 <여왕의 교실> 교육관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작품에선 ‘어차피 괴물 같은 부조리한 세상에 살아갈 아이들이니 일찍부터 그런 현실을 체험하게 해서 강하게 키우자’는 교육관이 나타난다. 이건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악다구니 경쟁과 차별이 판을 치는 현실처럼 학교도 그렇게 바꾸자는 정책이 지금까지 이루어진 수준별학습이라든가 각종 학교 내 경쟁과 차별 강화 정책이었다. 그 결과 아이들에게서 이 드라마처럼 인성교육의 효과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없다. 아이들이 그런 괴물 같은 정책에 맞서 똘똘 뭉치며 드라마에서처럼 우정을 키워가지도 않았다. 학교가 그렇게 변해갈수록 아이들은 더 황폐해졌을 뿐이다.

 

사회가 괴물 같을 수록 학교는 그런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보호 받아야 한다. 학교 안에서만이라도 경쟁과 차등에서 벗어난 인간 그 자체의 존귀함, 그리고 공동체적-시민적 가치가 절대시되어야 한다. 어차피 경쟁과 차별은 나이 먹으면 당연히 겪는다. 어렸을 때만이라도 그런 살벌함으로부터 보호해야 아이들이 제대로 큰다. 프랑스 교육에서 학교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왕의 교실>처럼 사회의 원리를 학교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아주 위험해진다.

 

<여왕의 교실>의 전략은 이미 <공부의 신>에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고리타분한 참교육 주장도 짜증나고 관료적인 교사들에게도 짜증나는 상황에서, 교육적인 고담준론은 다 제쳐두고 속 시원히 불편한 현실을 까발리며 학생들에게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자신의 사생활까지 완전히 포기할 정도로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헌신하는 슈퍼멘토로서의 교사 이야기. 몇 가지 문제 때문에 이번엔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이런 설정에 감동했다는 반응은 <공부의 신>에서나 <여왕의 교실>에서 똑같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데에서 나타나는 교육관이 사실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란 것도 이제는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