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천선>의 조기종영에 이어 시작돼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의외의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드라마는 많지만 유쾌하면서도 달달한 느낌을 실제로 살려내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은데,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모처럼 성공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장혁이 허세를 부리며 샴푸광고를 찍을 때만 해도 또 하나의 ‘망작’ 등장 정도로만 여겨졌다. 장나라가 회사에서 구박받다가 해외여행을 가 장혁의 도움으로 공주 변신을 한다는 내용도 식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장나라가 아이를 갖게 되고 장혁과 곧바로 결혼하는 급진전이 일어나며 극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장혁이 장나라의 고향까지 찾아가 함께 밤을 지새면서 장나라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시청자에게 ‘로맨스’라는 감흥을 느끼게 한 것이다. 그후 본격적으로 신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장혁이 ‘달팽이’ 장나라에게 차츰차츰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근래 보기 드문 수준으로 ‘달달하게’ 진행됐다.

 

무의미하게 호탕한 웃음을 남발하는 장혁의 과도한 오버 캐릭터는 처음엔 거슬렸지만 6회 때 아기옷 만드는 장면에서 박희진이 대놓고 장혁 디스를 한 다음부터 확실한 코믹 코드로 자리잡았다. 자신이 ‘오버로크의 왕’이라며 자신만만하게 ‘으하하하하’하고 웃어대는 장혁을 박희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장면이었는데, 코믹캐릭터는 이렇게 주변에서 디스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살아난다.

 

 

 

6회 때 장나라 어머니의 갑작스런 방문에 장혁이 마이크를 잡고 ‘사위노릇’을 하던 장면에서 장혁, 장나라 커플의 달달함과 유쾌함이 결정적으로 살아났다. 여기서 장혁은 랩을 하며 한때 가수생활을 했던 자기자신을 패러디했고, 장나라는 천진난만한 춤으로 이 커플의 이야기를 더 사랑스럽게 여겨지도록 했다.

 

6회는 여러모로 이 작품의 중대한 전기가 됐는데, 장혁이 장나라 고향의 공장을 넘긴 업체가 사실은 폐기물 처리 회사라는 통화를 할 때 갑자기 장나라가 나타나 땅에 떨어진 장혁의 휴대폰을 주으려 하자 장혁이 장나라를 뒤에서 ‘급’ 끌어안고, 카메라는 장나라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으며, 타이타닉 음악이 깔리고, 장나라가 ‘왜... 왜 때문에 저를’이라는 대사를 할 때, 이 작품이 심상치 않은 코미디 감각을 장착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그후 장혁이 집 나간 장나라의 전화를 기다리며 운동을 할 때 패닉의 <달팽이>가 깔리는 등 범상치 않은 코미디가 계속 이어진다. 8회 방영분에선 아침 조깅하다 쥐가 난다는 설정이 장혁의 몸개그로 인해 역대급 코미디로 펼쳐졌다. 장나라의 어머니가 입원하자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소리치며 들어간다든가, 행사장에서 변호사가 장나라를 궁지에 몰자 ‘나 건이야, 으하하하하’하며 과장된 허세를 떠는 장면들도 일단 장혁의 코믹 캐릭터에 빠져들었기 때문에 납득하며 보게 된다.

 

로맨틱 코미디는 초반에 웃기다가 중후반에 아픔이 닥치고 마지막에 행복하게 끝나는 패턴을 따른다, 그런데 웃기는 걸 곧잘 하다가도 아픔 대목에서 지루해지는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은 허세스럽게 웃기면서도 장나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잡아내 아픈 정서에까지 흡인력을 이어간다는 점이 미덕이다. 8회에서 장나라가 장혁의 전 애인을 만났을 때 ‘죄송해요, 죄송해요’라고 하는 장면에선 정말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통쾌한 점은 시어머니의 구박이 없다는 점이다. 시어머니가 뺨을 때리거나 물을 끼얹지 않으니까 속이 다 후련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가운데 의외로 터진 수작이다. 다음 방영일까지 일주일이나 남은 걸 생각하면 그저 시간이 아득할 뿐이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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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2. 운명처럼 널 사랑해 8회에서 미영의 전 직장상사가 미영에게 물을 뒤집어씌우니까 바로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의 주인공 라스무스가 고아원에서 효크 선생이라는 고아원 원장에게 물을 퍼부은 장면까지 떠오르거나 생각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