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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진짜사나이, 희생자 부모까지 봐야 하나

 

<진짜 사나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신선한 재미로 시청자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군사문화 미화 아니냐는 지적은 네티즌의 날선 반발에 묻혔다. 이 프로그램은 재미와 함께, 뜨거운 동료애를 통한 인간미, 일종의 성장드라마를 통한 감동을 선사해왔다.

 

비슷비슷한 내용이 전개되며 초기의 열기가 시들해지기도 하고, 특히 해군에 갔을 때는 과도하게 정부 홍보방송으로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반발이 나타나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혜성처럼 등장한 ‘관심병사’ 헨리가 <진짜 사나이>를 구해냈다. 얼마 전엔 필리핀 수해 지역에서 봉사활동하는 한국 장병들의 노고를 전하며 감동을 주기도 했다.

 

나름 재미도 있고, 뜨거운 인간미를 전해주는 미덕도 있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데 있다. 한국이 지금 일요가족예능으로 군대의 훈훈한 쇼를 보며 웃을 수 있는 상황인가?

 

얼마 전 우린 참으로 놀라운 사건을 접했다. 육군 병사가 날마다 이어지는 폭행으로 결국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얻어맞아 다리를 절자 ‘절룩거린다’며 또 때리고, 무릎이 심하게 부어오르자 '무릎이 사라졌네, 존나 신기하다'며 무릎을 찌르고, 맞다 쓰러지면 수액주사로 정신 차리게 한 다음 또 때리고, 계속해서 맞다 오줌을 지리며 쓰러지자 꾀병이라며 또 때린 가운데 결국 사람이 죽은 사건이다. 관련 기사를 읽으면 정말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 들며 숨이 막힐 정도로 잔혹하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 몇몇 사악한 사람들의 품성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해자가 전입오기 전엔 한 상병이 그렇게 얻어맞았고, 다른 일병도 ‘죽을 만큼’ 얻어맞는가 하면 치약 한 통을 억지로 먹는 일까지 당했다. 그들이 이번엔 가해자가 되어 폭행에 합세했다. 즉, 새로 들어온 신병을 폭행하는 것이 관습처럼 굳어져 폭력이 대물림되는 구조였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다. 이번에 사망한 피해자도 만약 죽지 않았다면, 나중엔 폭행에 가담하는 가해자가 됐을지 모른다.

 

 

 

 

인간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과거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실험이 미국 사람들을 경악시켰던 적이 있다. 평범한 미국 사람들에게 폐쇄된 감옥의 간수 역할을 맡기는 실험이었는데, 그들은 점점 악마처럼 변해가 가혹행위를 일삼기 시작했다. 이 실험은 누구라도 특정한 상황이 주어지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미국인들은 그 전까지 나찌 학살범은 그들의 나쁜 성격 때문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악마를 만드는 건 성격이 아닌 상황이었다.

 

바로 한국 군대가 악마를 만드는 조건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번에 발생한 사건의 경우, 개처럼 기며 가래침을 핥아 먹게 한다든가, 눕혀 놓고 얼굴에 물을 뿌리는 등 인간성이 완전히 말살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과연 군대에 가기 전에도 그런 인품이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가해자까지도 모두 피해자로 보인다. 대한민국 군대에 가서 인간성이 해체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이 이번만도 아니다. 불과 얼마 전에 군대 내 왕따로 인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고, 관심병사들의 자살 사건이 있었다. 올 초엔 폭행으로 인한 자살 사건 조의금을 간부들이 빼돌렸으며, 은폐 기도 의혹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부실 조치로 병자를 돌보지 못한다는 지적도 계속 나오는데, 8월 3일엔 뇌종양 병사에게 1년간 엉뚱한 치료만 하다가 결국 쓰러지도록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0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구타와 가혹행위로 영창에 수감된 병사는 육군에서만 2만 7694명이라고 한다. 올 4월엔 가혹행위 가담자 3900여 명을 적발했다고 알려졌다. 군 자살자 수가 연간 70~80여 명에 달한다. 이렇게 될 때까지 군 지휘부는 무얼 했단 말인가?

 

<진짜 사나이>는 홍보 차원에서 군의 지원으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다. 군대가 지금 해야 할 일이 홍보일까? 실제 군대라면 헨리 같은 관심병사가 웃을 수 있을까? 군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진짜 사나이> 홍보쇼가 아니라, 실제 군대를 <진짜 사나이>처럼 만드는 일이다. 지금 병영에서 가혹행위를 당하고 있는 병사의 부모들은 <진짜 사나이>를 보며, ‘내 자식도 저렇게 웃으며 잘 지내고 있겠지, 군대가 잘 돌봐주겠지’라고 마음을 놓을지 모른다.

 

자식을 앞세운 피해자의 부모들도 훈훈하고 전우애가 넘쳐나는 병영 풍경을 일요예능으로 볼 것이다. 그들은 어떤 심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