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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이영표 B급해설의 심각한 문제

 

KBS 해설위원 이영표가 브라질 월드컵 일본 대 코트디부아르 전에서 한 이른바 ‘편파해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가 골을 넣는데 실패하자 ‘아, 아쉽다’고 탄식하는가 하면, 후반 코트디부아르가 득점하자 ‘피로가 싹 풀린다’며 좋아했다는 것이다. ‘머리는 일본의 승리를 예측하지만 가슴은 코트디부아르의 승리를 염원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많은 네티즌이 통쾌했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건 통쾌한 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세상일이 그렇게 감정적으로만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감정을 앞세우는 것이 때로는 자충수가 되는 법이다.

 

공식적인 영역은 지루하고 답답하다. 속을 확 풀어주는 감정적인 언사가 오가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콘텐츠들이 인기를 얻는데, 그런 것을 일컬어 ‘B급’ 문화라고 한다. 요즘 B급 문화가 사랑받는 추세이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공식적인 영역이 B급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 그러면 국격이 떨어진다.

 

이영표는 인터넷에서 개인방송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해설위원으로 지상파 중계프로그램의 방송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말은 공식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인터넷 방송에서나 나올 법한 편파해설을 했다. B급 해설을 한 것이다. 방송의 국격이 떨어졌다.

 

일본이 지금 아무리 한국과 불편한 관계라고 해도 어쨌든 객관적으로는 우리의 이웃나라이고 우방이다. 그 나라의 잘못에 대해 얼마든지 항의하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스포츠 국제경기 해설에선 그러면 안 된다. 한국전이 아닌 일반적 국제경기에서 공영방송이 공식적으로 한 쪽을 편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의라는 것이 있다. 국제경기 해설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야 하고, 같은 아시아권으로서 아시아와 다른 대륙이 맞붙었을 땐 아시아의 승리를 기뻐해주는 것이 바로 그런 도의다. 이런 도의가 아무리 답답하다고 해도 공식적인 영역에선 그래야 한다. 그런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의 국격을 올리는 길이다.

 

이영표의 B급 해설은 국익의 관점에서 봐도 문제가 있었다. <정도전>에서 하륜은 ‘속내를 드러내는 자만큼 상대하기 쉬운 적은 없사옵니다’라고 했다. 정도전이 아무리 미워도 공식적인 자리에선 이방원이 정도전에게 공신으로서의 예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지킬 건 정확히 지키는 쪽이, 사람이건 국가이건 존중받는 법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에서 이렇게 드러내놓고 편파해설을 하면 당연히 그 어록이 일본으로 넘어가 우익에게 이용될 것이다. 우익들이 ‘봐라 한국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우리를 증오한다’면서 혐한 감정을 부추길 거란 이야기다. 이것은 결국 일본내 우익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넷우익을 활성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이것이 자충수다.

 

최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우려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가 과거 발언을 한 맥락이나 진심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그의 발언이 편집되어 일본과 중국 인터넷에 퍼져 이용될 것이 걱정되는 것이다. 이영표의 발언도 그런 식으로 일본 인터넷에 퍼져 이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일 양국이 이렇게 감정배설만 하다가는 결국 양국의 강경파만 득세하게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갈 수 있다. 중국, 일본,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자살골이 아닐 수 없다. ‘가슴은 뜨겁게 그러나 머리는 차갑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KBS는 B급 해설을 멈추고 공영방송의 체통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