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독한 어머니와 인자한 아버지가 넘쳐난다


 사회적으로도, 드라마 속에서도 여성의 권익 향상이 눈에 띈다. 물론 여기서 향상이란 여성이 2등 인간으로 대접받았던 조선시대의 전통에 비해 그나마 나아졌다는 의미다. 최근 여성지위의 상승으로 남성들이 역차별 받는다는 말들이 드높은데 이는 그야말로 뻔뻔한 소리다. 한국은 아직까지는 분명히 남성중심사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전례 없이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건 분명한 사실이다. 드라마 속에서도 그런 현실이 반영되고 있다. 가정대소사를 결정할 때 주부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는 설정이 등장한다. 결혼하고 살 집을 정할 때도 옛날처럼 시집살이가 기본이 아니다. 시집에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때 여자의 동의가 아주 중요한 절차로 제시된다.


 <미우나 고우나>에서도 주인공인 김지석이 극 중 결혼상대인 한지혜에게 결혼 후 시집에 들어와 살자는 말을 꺼내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행복합니다>에서도 여자주인공인 김효진으로부터 시집살이에 동의를 얻기 위해 이훈이 고생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여자가 결혼하자마자 시집살이하는 것이 당연해진 건 조선 중기 이후부터다. 마지막 자유를 누린 여성이 신사임당이었고, 허난설헌은 처음 시집살이를 하다 비운에 갔다. 허난설헌 이래 이 땅의 수많은 여성이 시집살이라는 고난의 행군을 강요당했다. 이제 비로소 시집살이가 기본코스에서 선택옵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미약하지만) 여성지위의 상승을 상징하는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좋다. 드라마 속에서도 그런 변화가 적극적으로, 혹은 선도적으로 그려져야 한다. 여기까진 괜찮은데 그 커진 목소리로 무엇을 말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보다 커진 권력으로 무엇을 하는가? 보다 향상된 경제적 능력, 사회적 능력, 지적 능력으로 무엇을 하는가? 뭐가 달라졌는가? 이점에서 보면 요즘 드라마에선 비관적인 흐름이 느껴진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여성의 지적 능력이 향상됐다는 말은 여성이 과거엔 지능이 떨어졌다가 최근에 진화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조선조 이래로 여성은 고등교육으로부터 배제 당했었다. 딸은 언제나 교육투자에 후순위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의 딸이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와 미싱을 돌리며 남동생 학비를 보탰다. 최근엔 남성과 똑같이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사방에 울리는 표독한 어머니의 목소리-


 한국의 아줌마는 여러모로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미덕도 없다는 것이 아줌마의 이미지다. 요즘 드라마에선 아줌마도 당당한 여자라는 설정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미덕은 여전히 요원한 과제다.


 사회적 미덕이라 함은 나와 타인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시야, 이익따지기에만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생활태도 등을 말한다. 한 마디로 공공적 사회성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의 아줌마는 오로지 자기만 알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가 확장된 자기 가족의 이익만 챙긴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승적 시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새치기를 한달지, 지하철에서 남을 밀치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같은 이기적 행태가 아줌마의 이미지다. 자기 아이만 금이야 옥이야 여기면서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폐를 끼치는 것엔 무신경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


 여성의 지위가 달라지고 아줌마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지만, 드라마 속에서 아줌마, 즉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드라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자기의 위신, 자기 자식의 이익만을 매몰차게 챙기는 어머니들의 표독한 목소리가 드높다. 요즘 드라마에서 젊은 아줌마는 스스로 연애를 하고, 자식이 결혼할 나이가 된 아줌마는 자기 자식과 연애하는 남의 자식 눈에 눈물을 빼는 존재다.


 <미우나 고우나>의 어머니는 ‘감히’ 자기 딸과 결혼하려는 ‘출신이 미천한’ 사내에게 막말과 구타를 서슴지 않는다.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딸의 말에 “사랑? 그 말을 어따 갖다 붙여!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다 사랑인 줄 알어!”라며 소름 끼치는 저주를 퍼 붇는다.


 여러 드라마에서 아줌마들이 ‘순수한 사랑’의 주체로 나서고 있지만, 그건 그 사랑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의 경제적 이익과 배치되는 ‘순수한 사랑’이 등장하자 곧바로 그 사랑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 자기 자식의 이익을 침해하는 타자는 적이다. 그 적에겐 체면도 염치도 없는 안하무인의 능멸을 가한다.


 아버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대범하고 사리를 분멸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아줌마들은 언제나 그런 남편에게 악을 쓰거나 떼를 쓰는 존재다. <미우나 고우나>의 아버지도 그렇고, <행복합니다>의 아버지도 그렇다.


 <행복합니다>에서 주인공 김효진의 어머니인 이휘향은 입으로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암송하는 속물이다. 자기 딸을 재벌집에 시집보내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다. 그녀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나오는 이훈에게 찬물을 끼얹으며 모욕을 가한다. 그러나 아버지인 길용우는 소탈하고 관대하다. 재벌임에도 시장에 나가 이훈의 아버지와 소주잔을 기울인다.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감히 가난한 주제에’ 자기 아들과 결혼하려는 이유리에 대한 장미희의 태도는 잔인하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적 파워나 그런 걸로 남다른 편견’은 없다면서 천박한 이중성을 과시한다. 반면에 아버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자기 부인과, 자식과, 자식과 만나는 상대편 집안을 모두 배려하는 ‘사회적 미덕’을 보여준다.


 <천하일색 박정금>에서도 김민종 어머니가 박정금을 대하는 태도는 그야말로 ‘정 떨어진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도 최진실 시어머니의 배타적인 자식 사랑은 타인에게 극히 냉혹하다. 자기 아들이 최진실을 파렴치하게 배반하는 순간에도 일방적으로 자기 아들의 편을 들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이런 어머니상은 일정 정도 현실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강남 주민 5명 중 한 명이 우울증 증세가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얼마 전에 발표됐었다. 그 원인으로 남성은 경제적 문제가 1위인데, 여성은 자녀문제가 1위였다. 그만큼 한국 아줌마들은 자식 안위에 ‘목숨’을 건다. 아줌마인 하희라가 자식에게 인생을 걸고 헌신한다는 드라마의 제목은 <강남엄마 따라잡기>였다. ‘아빠 따라잡기’가 아니었다. 한국 어머니들의 자식 챙기기는 극성스러운 데가 있다. 자식은 곧 확장된 ‘나’다. 자식의 이익은 나의 이익이 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최근 드라마 속에 나오는 어머니들의 표독함은 과장된 데가 있다. 남성과 여성의 태도가 너무나 확연히 대비되는 것도 마땅치 않다.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지만,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과장된 설정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무렴 현실 세계에 그렇게 관대한 아버지와 표독한 어머니만 있겠는가? 극적인 재미도 좋지만 상식적인 현실성에 바람직함이 가미된 아줌마상도 종종 그려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어머니의 커진 목소리에 인간성을 담아 달라.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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