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판타지의 공세 너무 안일하다


 얼마 전 최진실의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보기 좋다는 글을 썼다. 돈벼락 맞는 것보다 더 화려한 판타지. 잃어버린 여성성, 관심, 떨림, 여성으로서 존중받는 것을 회복하는 꿈. 고목나무에 꽃이 피는 황홀한 기적.


‘아줌마 아직 죽지 않았어!’


 여기까진 좋다. 드라마도 재밌다. 오랜만에 방영일이 기다려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컨셉이 뭉쳐다니면 문제가 된다.


 주말 드라마 시장에 아줌마판타지 전성기가 펼쳐지고 있다. ‘떼법’이 아니라 ‘떼판타지’가 횡행한다. 판타지 중에서도 아줌마를 위한 아줌마에 의한 아줌마의 판타지 천국이다.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는데 이래도 되나?


 주중 미니시리즈의 경우 시청률 20%를 넘기기가 힘든데, 주말 드라마는 20%가 우습다. 대부분 아줌마를 대상으로 한 드라마들이다. 주말 TV 채널 결정권에서의 아줌마 파워가 아줌마 드라마를 만들고, 아줌마 드라마가 아줌마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인다.


 주부 드라마는 대체로 전통적인 가족드라마나 통속 멜러물, 그리고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처럼 아줌마 한풀이의 ‘아줌마판타지‘다.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는 <조강지처 클럽>에선 구박받던 아줌마 역할의 오현경이 화려한 캐리어우먼으로 변신했다. 사회적 성공뿐만 아니라 젊고 잘 생긴 본부장의 관심까지 받아 고목나무에 꽃이 피려 한다.


 오현경 친구 역할의 김혜선에게도 꽃이 피기는 마찬가지. 김혜선의 기본 의상은 몸빼바지다. 의상을 좀 바꿔줘도 좋으련만 촌스러운 옷차림을 고집한다. 아줌마들의 감정이입을 위한 노골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천하일색 박정금>에선 아줌마 박정금 역할의 배종옥이 아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주먹싸움의 주체가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젊은 법조인과 의사의 구애를 받았다. 정말 ‘판타스틱’한 판타지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이런 판타지의 끝장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남성스타가 아줌마에게로!


 아줌마성이 강할수록 시청률이 오른다. 아줌마판타지 중 최강자인 <조강지처 클럽>에선 주인공인 오현경이 말끝마다 아줌마를 강조한다. 다른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아줌마라는 단어가 강조된다.


 “내가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남아있는동안 행복할 수 있다면 바로 아줌마하고 함께하고 싶다구요.”

 “내가 얼마나 궁금했는지 알아요? 아줌마정신으로 참았죠.”

 “빠져도 정신없이 빠졌구만. 꼴랑 생선장사 아줌마한테.”


 노골적이다. 옛날엔 우아하고 세련된 유부녀의 불륜담이 나왔었다면 요즘엔 뽀글파마 몸빼바지 아줌마의 가슴 떨리는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조강지처 클럽>에서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도 이혼 얘기는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이 있을 뿐이다.


 “나 가정 못 깨.”

 “누가 가정 깨래? 그냥 감정 가는대로 놔두라구. 순이 아빤 지 하고 싶은 것 다 했는데 왜 너만 못해?”


 <조강지처 클럽>의 대사다. 남편들은 ‘지 하고 싶은’ 대로 사는데 나라고 왜 못해? 이런 주부의 한을 드라마들이 점점 더 대리만족시켜주고 있다. 리모콘을 틀어쥔 주부들의 힘 때문에 말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드라마 컨셉은 리모콘에서 나온다? 하지만 결국 리모콘에서 나온 가상의 권력일 뿐 현실과는 상관이 없다.


 이대로 가면 주중엔 젊은 여성이 재벌2세를 만나 성공하고, 주말엔 아줌마가 멋진 청년의 낙점을 받아 인생의 의미를 찾는 구도가 된다. 혹은 주중엔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드라마, 세련된 대작, 주말엔 아줌마 한풀이의 양극화 구도.


 지난 주 <조강지처 클럽>에선 오현경을 구박하던 남편이 오현경의 변신한 모습을 보고 깜작 놀라는 모습이 방영됐다. 누구나 꿈에 그리는 ‘깜직한’ 복수극이다. 오현경은 본부장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직장에서 남편에게 위세를 과시했다. 그리고 펑펑 울었다. 한풀이다.


 아무리 시청률도 좋지만 주말 드라마가 이렇게 아줌마판타지 일색으로만 가도 괜찮은 것일까? 한국 드라마는 구도가 단순하다는 얘기가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도 나오고 있다. 신데렐라, 신분상승, 불륜, 출생의 비밀, 4각5각 관계에 반복되는 주말 아줌마판타지까지. 

 한국은 미국처럼 제작비를 퍼부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참신한 기획과 내용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기획이 점점 도식적이 되면 미래가 사라진다. 비슷한 폭력 컨셉을 반복소비하다 자멸한 홍콩영화, 자국민에게 외면당하는 한국 조폭영화, 댄스기획만 반복하다 붕괴한 한국가요산업. 드라마 왕국도 언젠가 이런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옛말이 맞다. 언제나 과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방송사들의 안일한 아줌마 시청률 소비, 자제가 필요하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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