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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식객의 독주, 국민드라마 될까?



 ‘삼국지’ 이래로 삼파전은 언제나 흥미 있다. 드라마 왕국인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방송3사의 드라마 삼파전도 그렇다. 월화 미니시리즈, 수목 미니시리즈, 주말 드라마 삼파전은 관심의 초점이 된다. 그중에서 요즘엔 월화 미니시리즈 대전이 특히 뜨겁다.


  ‘식객’과 ‘최강칠우’, ‘밤이면 밤마다’의 대결이다. 김래원과 에릭, 김선아-이동건 커플의 대결이기도 하다. 주연들의 면면만 보면 모두 트렌디 드라마인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전통을 다룬 작품들이다.


 공교롭게도 월화 미니시리즈 대전에서 맞붙는 세 주자가 모두 우리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최강칠우’는 아예 사극이고, ‘밤이면 밤마다’는 우리 문화재를 다룬다. 그러나 가장 우리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최강칠우’는 퓨전사극에 쾌걸조로같은 설정으로 우리 삶과도 문화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작품이 됐다.


 ‘식객’에는 우리 식문화가 나온다. 단지 식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라면 다큐멘터리도 있다. ‘식객’에는 그것이 이야기와 함께 나온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은 우리 삶이다. 그것이 겉돌지 않고 제대로 버무려져 ‘맛있다’.


 반면에 ‘최강칠우’는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 트렌디한 주인공들의 연기와 이야기가 겉돌고 있다. ‘최강칠우’는 ‘쾌도 홍길동’, ‘일지매’와 더불어 서민영웅 퓨전사극이다. 이중에서 순수한 창작 영웅은 ‘최강칠우’뿐이다. 그 시도는 좋았으나 결과물은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 미친다. 셋 다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가는 구성인데 ‘최강칠우’의 전개가 가장 느슨해보인다.


 ‘밤이면 밤마다’에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김선아와 이동건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삼순이 때에 비해 살을 뺀 김선아는 보기 좋고 이동건은 멋있다. 김정화는 여태까지 드라마에서 본이래 가장 생동감이 넘친다. ‘밤이면 밤마다’의 재미는 트렌디 드라마의 그것과 닮았다. 전문직 청춘남녀의 사랑 만들기에 문화재가 소품으로 등장하는 격이다.


 ‘식객’은 우리 맛을 찾는다. ‘밤이면 밤마다’는 우리 문화재를 찾는다. 하지만 그것을 감싸고 있는 것이 ‘식객’은 우리 삶이고, ‘밤이면 밤마다’는 청춘남녀인 셈이다. 청춘남녀 이야기는 기본적인 재미를 주지만 어느 정도 이상을 넘기 힘들다. ‘삶’의 이야기는 잘못하면 진부하지만 잘 다루면 시청률 대박이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게 되면 그렇다. 공감을 넘어 감동까지 가게 되면 동시간대 제왕이 된다. ‘식객’에서 그런 기미가 보인다.


 ‘식객’의 정형사 에피소드는 완벽했다. 정형사란 도축한 동물을 부위별로 나누는 직업이다. 옛날 말로 하면 백정이다. 즉, 칼을 들고 고기를 자르는 사람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우리식 관념으로 치면 최하층에 해당하는 직종이다. 요즘 우린 상사공농(商士工農) 시대를 살고 있다. 옛날이든 요즘이든 손쓰고 오물 묻히는 직업은 한국사회에서 최하층, 즉 서민중의 서민이다.


 ‘식객’은 쇠고기를 소중히 다뤘던 우리 식문화를 좇으면서 결국 정형사까지 찾아간다. 이 드라마에서 정형사는 최고의 전문직이다. 어떻게 보면 ‘식객’이야말로 진정한 전문직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선 대기업 회장이 요리사를 찾아가고, 그 요리사는 정형사를 찾아가 머리를 숙인다. 유통업체 사장도 정형사를 찾아가 삼고초려한다.


 그 정형사에겐 아픔이 있다. 한국 최고의 정형사임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이 땅의 차별의식 때문에 일개 법조인에게 딸자식이 파혼을 당한 것이다. ‘식객’의 주인공은 정형사를 찾아가 직업의 자부심과 가족을 다시 찾아준다.


 사윗감이 정형사에게 무릎 꿇고 ‘장인어른’이라고 부를 때는 극중에서 정형사도 울었지만 나도 감동받았다. 아마 다른 시청자들도 인간적인 감동을 받았을 거라 생각된다. 이런 건 어떤 전문적인 식견이나 젊은이들만의 독특한 감성이 아닌, 한국인으로서의 보편적인 감성과 연결된 그 무엇이다. 드라마가 이런 것을 주기 시작하면 경쟁작들은 힘들어진다. 이 장면에서 ‘식객’이 중원을 평정하고 패자로 등극하는 느낌을 받았다.


 ‘식객’에선 정형사가 딸에게 줄 쇠고기를 정형하는 모습이 세밀히 방영됐다. 이것도 나에겐 감동이었다. 이건 보편적일 수도 있고 개인적일 수도 있겠다. 서민 중의 서민이 신명을 다해 당당히 기예를 펼친다는 점에선 보편적이겠고, 특별히 손을 쓰는 노동이란 점에선 나에게 인상 깊었다.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백정’에게 시민권이 발부되는 듯한 환상까지 봤다. ‘대왕세종’에 관한 글에서도 썼었지만 ‘손’은 중요하다. 손쓰는 사람 천대하는 풍조로는 절대로 우리 사회가 도약할 수 없다. 우리가 ‘손’을 천대한 결과 서민들이 한 많은 삶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산업경쟁력도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같은 장인, 독일같은 마이스터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정형사는 우리나라에서 천대받는 한국판 마이스터였다.


  ‘식객’에서 가장 중요한 물품은 ‘칼’이다. ‘식객’은 칼을 만드는 사람, 칼을 쥐고 쓰는 사람들의 신화적인 연대기다. ‘칼’을 만드는 사람도 당연히 ‘손’을 쓴다. 주인공은 이렇게 손을 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가족을 복원시켜 준다.


 그 손을 쓰는 사람들의 연대기란 바로 우리 민중의 고단한 역사다. 우리 삶이고 우리 마이스터들이다. 이 드라마에선 대장장이, 백정, 요리사가 전면에 서며 펀딩으로 기업화하려는 사람들은 주변부로 배치된다. 대장장이와 백정과 요리사가 최고의 전문직, 최고의 예술가로 묘사되는 드라마다.


 만약 ‘식객’이 극중 주요무대인 운암정에서 궁중요리 가지고 경연대회나 열었다면 보편적인 감동을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식객’이 처음 시작됐을 땐 그런 기미가 보였었다. 우리 삶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기기묘묘한 고급음식들을 전시하며 게임 진행하듯이 드라마를 시작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식객’엔 아기자기한 재미는 있었을지 몰라도 진정한 드라마의 힘은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가 바로 이렇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수십억 원대의 문화재들은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문화재 하나하나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마다 아기자기하게 보는 맛은 있다. 그뿐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드라마 하나 보는 재미로는 충분하지만 그 이상이 아쉽긴 하다.


 ‘식객’은 주인공이 운암정을 박차고 ‘필드’로 나오면서 극에 생명력이 생겼다. 이제 주인공이 다루는 식재료는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아닌 우리 삶속의 것들이다. 주인공이 활동하는 무대는 궁중요리를 다루는 요정이 아닌 시장바닥이다. 그곳에서 서민들, 즉 우리들을 만난다. 우리 식재료와 우리 음식, 그리고 서민. ‘식객’이 국민드라마로 발돋움할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그 가능성을 ‘정형사’ 에피소드에서 보여줬다. 식당에서 아주머니들이 ‘식객’의 쇠고기 이야기에 몰입해 보는 광경을 목격했다. ‘정형사’의 쇠고기집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었다. 트렌디 드라마가 주지 못하는 보편적인 감동을 ‘식객’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의미와 아기자기한 웰빙드라마의 재미까지 있다. 월화 미니시리즈 대전은 ‘식객’의 독주가 이어질 듯하다. 이제 흥미로운 건 2위 게임이다. 에릭의 사극 적응과 김선아의 부활 여부. 그리고 ‘식객’의 질주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도 흥미롭다. 주중 미니시리즈의 한계를 딛고 국민드라마로의 도약이 가능할 것인가. 그것은 뒷심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