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피노키오>가 종영했다. 동화 <피노키오>에선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 드라마 <피노키오>에선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을 한다는 피노키오 증후군이 등장했다. 이 작품은 ‘피노키오 증후군인 사람이 과연 기자를 할 수 있는가’라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통해 언론과 거짓말의 관계를 추적했다.

 

언론의 거짓 보도로 가족을 잃은 남자 주인공 이종석이 기억을 잃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여자 주인공 박신혜 집안의 양자로 들어간다. 이종석은 언론의 거짓 보도를 파헤치는 한편, 자기자신에 대한 진실도 차츰 밝혀나간다. 진실을 모두 밝혔을 때 언론은 제자리를 찾고 주인공은 행복을 찾는다는 우화같은 이야기였다.

 

 

이것이 단순히 환상적인 우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에 그치지 않은 것은 지금이 언론 불신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기자를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 낮춰 부르는 신조어가 보편화됐을 정도로 언론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피노키오>는 낭만적인 우화와 화사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외피 안에 언론에 대한 준엄한 질문을 담은 문제작이었다.

 

 

작품은 기자와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계속 강조했다.

 

“기자는 지켜보는 게 공익이야! 그걸로 뉴스를 만드는 게 공익이고, 그 뉴스를 구청직원이 보게 만들고 대통령이 보게 만들고 온 세상이 보게 만드는 게 그게 기자의 공익이다.”

 

기자가 뉴스를 만들면 경찰, 검찰 등도 못했던 일들이 가능해진다. <피노키오>에선 단 1분 짜리 리포트로 인해 재벌 회장이 경찰에 출두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신입 기자들의 저돌적인 취재로 결국 정경유착의 고리까지 백일하에 드러난다. 언론은 바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기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부조리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작품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극중에서 남자주인공은 유명한 앵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사람들은 당신이 맞는 말을 해도 믿지 않는 겁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는 건 거듭된 거짓 보도 때문이었다. 남자주인공은 다시 준엄하게 묻는다. “당신은 기자가 맞습니까?” 여자주인공은 거짓 보도와 선정적인 기사, ‘임팩트’를 중시하는 앵커에게 ‘당신은 기레기’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신문, 방송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종종 있어왔지만 이렇게까지 묵직하게 언론윤리에 육박한 작품은 없었다.

 

 

<피노키오>엔 현실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들이 많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큰 사건 후에 한 개인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에 열을 올리며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언론의 태도가 그려졌는데 이는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세월호 사건 당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 구조적인 원인이 다 밝혀지고 문제점이 개선되기도 전에 유병언이라는 한 개인의 엽기적인 스토리로 관심사가 옮겨갔다. 방송사들은 유병언에 대해서만 보도했고, 나중엔 ‘유병언은 과연 죽었는가?’에 대한 논란으로 사태가 마무리됐다. <피노키오>의 설정은 이런 현실에 대한 은유로 읽혔다.

 

대주주를 위한 방송에 열을 올리는 방송사를 향해 ‘차라리 회장님 힘 내세요라고 하지 그래?’라는 독설을 날려, 과거 한 언론사 기자들의 사주 감싸기 행태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재벌이 연루된 사건과 관련해, 거짓 출장 등으로 출두 늦추기, 출두할 땐 기자 없는 시간 노려 출두, 연예인 사고 뉴스로 시선 돌리기, 고소인 회유 및 협박 등 기본 코스(?)가 소개되기도 했다.

 

 

<피노키오>의 주인공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뉴스가 아닌, 봐야 할 뉴스를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릭수 높은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는 언론사를 향한 질타였다. 그런데 언론사가 그렇게 정론보도만을 했을 때 과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 뉴스 소비자의 자세도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보고 싶게 하는 자극적인 기사가 아닌 중요한 의미를 담은 기사들을 클릭하고 성원해줄 때 ‘기레기’가 사라져 갈 것이다. <피노키오>는 이런 성찰과 사회적 의미를 진지하게 담아내면서도, 멜로의 달달함이나 작품의 재미까지 놓치지 않은 수작이었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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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신혜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