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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인형뽑기방 열풍, 짜릿한 손맛에 빠져들다

바야흐로 인형뽑기방 열풍이다. 과거 인형뽑기 기계가 잠시 유행했을 때는 동네 어귀에 인형뽑기 기계가 한두 대 놓여있는 수준이었는데, 최근엔 아예 인형뽑기 기계만 들여놓은 전문 매장이 대도시 중심 유흥가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성장속도가 그야말로 폭발적이어서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다 

20161월까지만 해도 21곳이었다가 8월에 147곳으로 늘더니, 20171월에 무려 1164곳이 됐다. 1년 새 55배 성장, 특히 최근 반년간 무섭게 폭발했다. 불황 국면에 이렇게 성장하는 업종이 또 있을까? 

지난 주말엔 무한도전에까지 등장했다. 휴식기를 끝내고 오랜만에 돌아온 무한도전이 다양한 게임대결을 선보이는 가운데 인형뽑기대결도 전파를 탄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 땐 잇따라 몇 개의 인형이 나와 인형뽑기가 매우 쉬운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재미를 느낀 멤버들이 본격적으로 대결을 시작하자 상황이 어려워졌다. 중간에 양세형이 4만 원을 썼다고 했는데, 그후로도 대결이 이어졌고 멤버들 뷔페 식비 정도가 소요됐다는 자막도 나온 것을 보면 상당한 돈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런 끝에 인형 한 개를 뽑는 데에 성공했다. 

이런 식이니 나올 듯 나올 듯 나오지 않는 인형에 분통이 터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에 따라서 범죄도 나타난다. 작년 10월에 20대 여성이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가 망을 봐준 친구와 함께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된 사건이 충격을 줬다. 2월엔 청소년 일당 5명이, 4명은 기계를 둘러싸고 한 명은 몸통을 집어넣는 수법으로 인형을 턴 사건이 두 개의 지방도시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같은 수법의 범죄가 동시에 나타난 것을 보면 인터넷을 통한 정보교환이 의심된다. 도둑질까진 가지 않아도 인형을 손쉽게 빼내는 조작법은 인터넷에서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1월에 터진 대전 서구 인형뽑기방 습격사건이 그런 세태를 말해준다. 두 남성이 조이스틱을 탁탁탁움직이는 기술로 2시간 동안 인형을 210개 쓸어갔다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해당 업소 업주의 자살골로 더 유명해졌다. 업주가 인형을 쓸어간 남성들이 도둑질을 했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우리 뽑기방 기계는 뽑기 확률이 1/30 정도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론 많이 뽑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러자 업주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만약 업주가 확률을 조작했다면 불법이다. 

지금 인형뽑기방 창업이 마구잡이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업계의 질서가 잡히지 않았다. 업주가 뻔히 확률조작 의혹을 살 말을 잘못인지도 모르고 스스로 할 정도라면 상황이 매우 혼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판국에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인형뽑기의 대열에 나서는 것이다. 빈곤한 청년세대는 물론이고 10대까지 여기에 가세한다 

혼자 노는 것이 유행하면서 인형뽑기가 간편한 나홀로 오락으로 떠오른 측면이 있다. 비교적 저렴하게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는 불황형 놀이이기도 하다. 무력감에 빠진 이들이 작은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일본에서도 1990년대 버블붕괴로 불황이 닥쳤을 때 인형 뽑기 가게가 성행했다. 최근에 키덜트 문화가 득세하면서 캐릭터 인형의 가치가 급등한 것도 배경이다. 특히 과거에 유행했던 캐릭터 인형이 많은데 이것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무한도전에서도 인형뽑기를 하면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멤버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폭발적인 공급이 수요를 견인하기도 한다. 공급이 갑자기 이렇게 많아진 것은 창업에 마땅한 자영업 업종이 없기 때문이다. 편의점, 통닭집, 커피전문점 등은 이미 포화상태고 다른 업종도 섣불리 권리금에 인테리어비까지 투자해가며 창업하기가 두려운 상황이다. 이때 인형뽑기방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설비나 인테리어에 투자할 필요가 없이 그냥 기계를 임대해서 빈 공간에 두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인건비도 거의 들지 않고, 음식점 등이 망한 자리에 들어가면 권리금 부담도 없다. 이러니 창업열기가 폭발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도박의 성격이 있다는 점이다. 적은 돈으로 좋은 인형을 따내려 한다는 점에서 도박과 다르지 않다.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초기에 운이 좋아 인형을 몇 개 뽑아내고 자신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달려들어 손해를 보는 것도, 사람이 도박장에 빠져드는 구조와 비슷했다.

나라를 구한 기쁨, 능력자 덕후 반열, 승부욕-인내심 함양.’ 한 인형뽑기방의 홍보문구다. 짜릿한 손맛을 느낄 때의 크나큰 기쁨. 도박의 쾌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쾌감에 중독됐다가 많이 연예인들이 망신을 당했다. 인형뽑기의 중독성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과거 현진영이 말한 바 있다. 그는 수천여만 원을 인형뽑기로 날렸다고 한다. 이런 손맛에 청소년과 청년들이 그저 가벼운 놀이 정도로 빠져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불황일수록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커진다. 작년에 사행산업이 전년대비 7.7% 증가했다고 한다. 로또 복권 판매량도 작년에 사상최대였다. 대학가에 변종 유사 도박 업소가 퍼져간다는 보도도 있었다. 여기에 인형뽑기 손맛에까지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이다. 불황의 씁쓸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