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이 ‘걱정말아요 그대’ 표절 논란과 관련해 독일로 출국한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걱정말아요 그대’의 원작 아니냐고 의심하는 ‘드링크 도흐 아이네 멧(Drink doch eine met)’의 주인공 그룹 블랙 푀스(Black Fooss)를 만나겠다는 것이다.
이 논란의 충격이 큰 것은 바로 전인권이기 때문이다. 상업적 성공을 위해 유행음악으로 활동하는 가수가 많은 우리 현실에서 전인권은 자기만의 음악적 진정성을 지켜온 보기 드문 뮤지션으로 평가 받았었다. 특히 전인권이 몸담은 들국화는 한국 대중음악의 큰 봉우리를 이룬 팀이었다. 그래서 음악적 신뢰가 컸는데 그에 따라 충격도 큰 것이다.
전인권은 촛불집회 등에 참여하면서 의식 있는 뮤지션으로 요즘 들어 더욱 조명 받았었다. 당시 친박 집회 쪽에서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자 신대철이 ‘내 아버지의 혼이 담긴 진짜 ’아름다운 강산‘을 들려주겠다’면서 촛불집회 공연을 준비했는데 거기에 가창자로 선택된 이가 바로 전인권이었다. 전인권에 대한 음악적, 인간적 신뢰가 없었다면 그런 상징적인 무대의 중심에 그가 설 수 없었을 것이다. 한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전인권은 촛불집회 정국을 거치면서 국민가수 반열에 올랐는데 바로 이럴 때 표절 논란이 터졌다.
하필 노래가 ‘걱정말아요 그대’인 것도 충격을 키웠다. 이 노래는 발표 이후 아는 사람만 아는, 크게 주목받지 않는 노래였지만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후 인지도가 수직상승했다. 국민들이 크게 상처 받은 촛불집회 정국에서도 이 노래가 사랑받았다. 전인권이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참가자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부른 것이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이 노래의 가사는 힐링을 원하는 시대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걱정말아요 그대’는 당대를 대표하는 시대의 송가가 되었다.
거의 국민가요 반열에 오른 셈인데, 그런 곡이 표절 논란에 빠지자 충격이 깊을 수밖에 없다. 전인권에게만이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상처인 것이다. 한때 가장 큰 위로를 줬던 노래라서 놀라움이 크다.
전인권은 표절에 대해선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블랙 푀스를 만나러 독일로 가고, 로열티를 줄 뜻까지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유사성 자체는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유사성에 대해서도 흔한 코드 진행에 멜로디이기 때문에 별 의미 없다는 주장이 전인권과 일부 후배 가수에게서 나오지만, 어쨌든 비슷하면 문제인 건 맞다.
김장훈은 전인권이 절대로 표절할 인격이 아니라고 했다. ‘징그러울 정도로 자존심 하나로 사는 성격’이고, 해외 곡을 뒤지며 아이디어를 얻는 작업형태도 아니고, 히트곡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처지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헤어진 부인을 생각하면서 쓴 소품이기 때문에, 그런 노래를 표절까지 해가며 만들었을 리가 없다고 했다. 정황상 그렇다는 얘기다.
표절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비슷하다면 ‘무의식적 표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비틀스 멤버인 조지 해리슨의 '마이 스위트 로드'(1970년)가 의도적 표절이 아닌 무의식적 표절이라고 알려졌다. 무의식적 표절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억이 숨어버리는 잠복기억 때문이다. 전인권도 이런저런 노래를 접하는 중에 70년대에 나온 독일 노래를 접했는데, 그 기억이 잠복해있다가 자기 머릿속에서 나온 음율인 것으로 착각하며 노래를 만들었을 수 있다. 전인권은 영미팝에 집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70년대 독일 노래는 만약 들었어도 기억이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
서양에서 시대의 송가 수준으로 히트했던 라디오헤드의 ‘크립’도 표절 논란 때문에 결국 저작권을 원작자와 나누어가졌었다. ‘걱정말아요 그대’ 문제도 그렇게 진행될 수 있다. 이 노래는 독일 노래보다 훨씬 호소력이 있고, 특히 이 노래를 시대의 송가로 만든 건 멜로디가 아닌 전인권의 가사였다. 정식으로 수입해서 개작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일각에서 이 논란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문재인 반대 진영에서, 표절 논란이 전인권 흠집내기라며 문재인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전인권이 안철수를 지지하자 문재인 측에서 전인권을 매장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표절을 지적하는 것이 블랙리스트나 마찬가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무리 선거중이라지만 국민 애창곡의 표절 논란 사태까지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건 너무하다. 표절은 여야를 막론하고 엄중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할 사안임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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