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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한도전 국회는 안 되나

 

무한도전 국회는 안 되나


 MBC 무한도전은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특집으로 청와대행을 기획했었으나 좌절됐다. 예능 대표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 국민 오락프로그램이다시피 한 무한도전의 청와대 방문을 시청자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MBC는 총선 전 청와대 부대변인의 무릎팍도사 출연 시도 사건으로 이미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무한도전까지 청와대로 찾아간다면 세인의 오해를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정치적으로 극히 민감한 시기다. 그런 의미에서 시청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청와대 특집을 포기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후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이에 대해 입을 열었다.


 "다문화가정 어린이 150명과 함께 '무한도전' 멤버들이 청와대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을 때 우리의 의도는 정형화된 어린이날 특집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국무회의실이나 대통령 집무실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대통령이 앉는 의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좀 더 자연스럽고 분방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담아 보고 싶었다."

 "여느 어린이날 행사처럼 어린이들이 짜여진 대본대로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지고 질문을 받는 식이 아닌 '환상의 짝꿍'같은 느낌으로 현장에서 돌발적인 상황들을 담아 보고 싶다는 것이 청와대행의 취지였다"

[뉴스엔 2008-06-05]


 뜻은 정말 좋았다. 김 PD의 말에 따르면 초점은 청와대가 아니라 다문화가정 어린이에 있었다. 어린이날에 맞춰 다문화가정 어린이에 조명을 비추는 것은 긍정적인 기획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선진화를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런 게 정말 ‘선진조국창조’에 부합하는 사고방식이다.


 우리나라는 희한할 만큼 폐쇄적인 나라다. 반만년 역사 단일민족의 신화가 살아있는 순혈주의 공화국이다. 혼혈에 대한 배제의식이 놀랍도록 강하다. ‘타자’와 섞이는 법을 아직 모른다. 그저 강한 타자, 즉 백인을 숭배하거나, 약한 타자들을 멸시하기만 할 뿐이다.


 혼혈은 약한 타자이며 ‘잡종’이다. 순혈의 세계에서 잡종은 터 잡을 곳이 없다. 인순이는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삶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잡종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잡종의 삶은 눈물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더 이상 순혈주의로는 성숙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심지어 같은 한국인인데도 자기 핏줄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아기들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이 폐쇄성으로는 개방적인 선진사회로 발돋움할 수 없다.


 김태호 PD는 "똑같은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받고 심지어는 멸시까지 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에게는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하고 이 어린이들도 장차 대한민국 국민의 하나로 성장해가며 현 정부의 수혜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인식까지 접근해 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바로 이런 문제의식이다. 과거 혼혈인의 숫자가 적었을 때는 혼혈배제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었다. 지금은 혼혈인 문제가 한국사회의 매우 중대하고도 시급한 사안이 됐다.


 농촌지역에선 요즘 국제결혼 비율이 25%에서 33%까지 치솟고 있다. 다문화가정 어린이 문제는 한국사회 현안중의 현안이다. 장차 이들이 한국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컸을 때 우리에게도 인종폭동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처럼 가면 인종폭동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학력사회, 학벌사회인데 지방 혼혈 아이들은 반드시 학력이 낮기 때문이다.(낮은 경제력 때문에) 그러므로 고학력 고학벌이 될 수 없다. ‘후진학력 후진학벌’로 주변인 주변인종이 된다. 타자배제 약자멸시가 보편화된 우리 풍토상 이들의 집단적 박탈감은 시간문제다.


 순수 한국인끼리는 그것이 양극화나 지역차별 정도에서 그치지만 인종차별로 비화할 땐 해결책이 없다. 그러므로 무한도전같은 국민 오락프로그램이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었다.


 김태호 PD의 바람대로 피부색,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 같은 ‘한국인’이라는 정체감을 확립해야 한다. 인종갈등이라는 함정은 모래지옥이다. 미국은 그 함정에 빠져 사회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소수인종이 사는 지역은 너무 위험해서 외지인이 함부로 나다니기 힘들 만큼 취약한 사회다.


 김태호 PD는 "현재로서는 이 아이템을 다시 시도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안 된다. 이런 기획을 사장시켜선 안 된다. 무한도전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주권의 집합지.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이방인. 이방인이 주권의 집합지에서 제집 안방처럼 놀면서 자신들도 대한민국의 주권자라는 것을 자각케 함.’


 하지만 시청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유지. 국민오락프로그램의 청와대 방문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적 이익에 국민오락프로그램이 부역하는 효과.’


 두 개의 생각이 충돌했다. 시청자는 하나의 정치인인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에 무한도전이 복무하는 것을 우려했을 뿐이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축제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후자는 살리고 전자는 피해가는 것이 정답이다.


 우리나라엔 주권자를 대리하는 기관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청와대, 또 하나는 국회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국민 직선으로 선출된다. 청와대와 국회가 다른 점은 하나는 승자독식 기관인데 반해 다른 하나는 보다 다양한 민의가 반영된 구성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한 마디로 청와대에는 한 정당의 대표자만 있지만 국회에는 여러 정당, 여러 지역의 대표자들이 함께 있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무한도전의 원래 기획의도와 시청자들의 우려를 절충한 공간을 찾는다면 국회가 가장 적당하다. 국회의장실과 본회의장에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데리고 가 안방처럼 놀게 한다면 아무도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무한도전의 원래 기획의도도 충족된다.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나중에 국회의원을 뽑거나, 혹은 그 자신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같은 한국인끼리도 농촌의 가난한 집안 사람들을 배제한다. 대통령이 강남 부자들로 대표되는 상위 5%, 10%만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얼마나 주눅 들어 크게 될까?


 서울 강남 유명 아파트와 한 학군에 있는 빈민촌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자기가 사는 동네가 어디인지 말을 못한다고 한다. 가난한 동네에 산다는 것이 알려지면 ‘왕따’를 당할 위험이 있단다.


 농촌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국가적 왕따를 당한다면 주권의식이 생길 턱이 없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도 요원하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무한도전과 함께 국회에 가서 활개 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당당한 한국인으로 거침없이 크길 바란다. 청와대가 안 된다면 무한도전, 국회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