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능 음악 칼럼

불후의명곡은 불후의명작

 

<불후의 명곡>은 불후의 명작


 우리는 지금 ‘명곡’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옛날엔 국민가요라는 것이 있었고, 밀리언셀러라는 것이 있었다. 이젠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주말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팬들의 괴성을 동반하며 불리는 노래 중에 일반 국민들이 알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얼마나 될까?


 물론 ‘명곡’이 없다고 해서 이 시대에 음악성이 뛰어난 노래가 안 나온다는 건 아니다. 음악산업 관점에서의 명곡이 없다는 뜻이다. 산업적 명곡이란 많이 팔리고 많이 알려진 노래를 가리킨다. 과거엔 나라를 들었다 놓은 노래나 가수들이 때마다 있었다.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연말 시상식 때 불릴 정도의 노래는 적어도 모두가 ‘인지’는 했다. 요즘엔 연말 시상식 때 나오는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일반인은 모른다.


 불후의 명곡이라고 하면 어느 한 시대를 대표하고, 그래서 어느 한 세대가 공유하는, 그래서 그 추억의 기억이 ‘불후(不朽:썩지 아니함)’하게 된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불후의 명곡을 가지지 못한 세대는 불쌍하다. 불후의 명곡조차 가질 수 없는 문화적 불모의 세대, 바로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지금의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그런 세대를 낳은 지금의 시대 역시 불모의 시대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영되는 KBS <해피선데이 - 불후의 명곡>은 보석처럼 빛난다. 온 가족이 TV를 보는 주말 예능 시간대에 배치된 이 프로그램은 구세대에겐 추억을, 신세대에겐 한국 가요의 힘을 일깨워준다.


 <불후의 명곡>은 한 주에 한 명(팀)씩 가수가 나와 자신의 노래 중 최고의 5곡을 소개하고 함께 부르는 단순한 내용으로 방영된다. 그렇게 최고의 5곡이 소개되는 과정을 통해 그 가수의 역사와 그 시대의 역사가 함께 조명된다. 한국 대중문화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이다.


 지금까지 주현미, 신해철, 윤시내, 룰라, 김흥국, 송대관, 강수지, 이은하, 이승환, 신승훈, 장윤정, 조수미, SES, 김민종, 백지영, DJ DOC, 클론, 조수미, 쿨 등의 가수가 출연했다. 개인적으로는 조수미와 주현미 편이 가장 경이적이었다. 조수미는 성악가이니까 노래를 ‘심하게’ 잘 부르는 게 당연하다고 쳐도 주현미 편은 정말 놀라웠다. 뭐랄까, 노래의 신을 본 듯한 느낌이랄까? 전혀 힘들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노래하는데 경탄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그 반대편엔 신해철과 클론이 있다. 신해철과 클론은 압도적인 가창력의 소유자는 아니다. <불후의 명곡>에서 신해철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를 보여줬다. 클론은 라이브에서의 신명 나는 리듬감과 흥을 보여줬다.


 이렇게 <불후의 명곡>은 유명한 노래, 가창력으로 널리 알려진 가수들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음악적으로 덜 인정받던 가수들을 재발견해준다. 가수협회에서 밀어줘야 마땅한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당연하다. 가수협회 차원이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산업 차원에서 밀어줘야 할 프로그램이다.


 백댄서가 없어도, 보조 랩퍼가 없어도, 한국의 가요가 얼마나 풍성한지, 한국 가수들에게 어떤 역량이 숨어있었는지 느끼게 해준다. 이런 작업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자고로 아는 것은 애정을 갖는 것의 전제 조건이라고 했다. 한국 대중음악을 더 잘 앎으로서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역사를 쓰고, 제대로 아는 작업이야말로 다음 세대의 도약을 위한 바닥 다지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폭발기였던 1990년대의 호사스러운 추억을 다시 경험하게 해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승환, 신승훈, 쿨, 룰라, 백지영, SES 등이 나와 주말 TV 화면에 1990년대를 재현했다.


 1990년대는 단지 추억을 되살려준다는 정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앨범 100만 장 판매가 그리 큰 뉴스도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란. 한국 가요산업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연간 최대 판매 음반의 판매량이 2000년엔 약 200만 장이었던 것이 2007년엔 약 20만 장으로 줄었다.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7년 만에 10분의 1토막이 났다.


 일부는 음반시장이 붕괴한 대신에 디지털 음원 시장이 크므로 한국대중음악산업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건 오해다. 디지털 음원 시장의 수익은 주로 IT 업체에게 돌아간다. 음악산업의 수익이 아니다. 그리고, 설사 수익이 음악계로 더 많이 배분된다 하더라도 한국대중음악의 몰락이란 현실엔 변함이 없다. 음반에 담겨 감상되는 음악과 휴대폰에서 순간적으로 소비되는 ‘사운드’ 상품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감상되는 음악이 융성해야 소비되는 노래도 풍성해지는 법이다. 과학기술로 치면 원천기술이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노래도, 가수도 대중음악산업의 원천기술이다. 요즘엔 국민들이 다 아는 노래도 없고, TV에서 젊은 가수들이 노래를 할 때 음정만 틀리지 않아도 안심이 되는 세상이다. <불후의 명곡>에 나오는 가수들은 가수라는 직종이 노래하는 직업이란 걸 분명히 알려준다.


 노래는 좋아야 하고, 가수는 노래를 잘 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잊은 것이 산업몰락의 패인이었던 것 같다. 요즘 TV에서 누가 가수 준비한다고 하면서 보여주는 모습은 다이어트나 외모가꾸기, 춤연습 등이다. 그리고 개인기나 개그 연습도 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원천기술이 사라진 자리에 응용력만 갈고 닦은 것이다.


 송대관, 윤시내, 이은하는 10대 가수로 뽑히기만 해도 감격에 겨워했던 시절의 가수들이다. 김흥국은 10대 가수가 평생 자랑이다. 그 시절엔 연말 가요 시상식이 굉장한 이벤트였다. 가요의 시대는 그랬다.


 지금 우린 가요 연말 시상식 폐지론이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얼마 전 한 젊은 가수는 시상식에 참석하면 주는 게 상인 줄 알았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가요상은 이제 그렇게 우스워졌다. 주말 가요순위 프로그램도 폐지의 위협 속에 겨우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가요순위제도도 유명무실해져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이제와선 가요순위 따위는 일반 국민들의 관심사도 아니다.


 최근 원더걸스의 ‘텔미’와 주얼리의 ‘원 모어 타임’이 국민가요의 조짐을 보였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아이돌 대결에 이어 주얼리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라이벌 구도 성립은 한국 대중음악산업의 부흥을 바라는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한 가요 프로그램에서 주얼리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함께 나와 무대를 꾸몄을 때 모처럼 가요계의 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L.O.V.E'로 주말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을 때 눈물을 흘렸다. 주얼리도 1위를 했을 때 눈물을 흘렸다. 1위 앵콜곡을 부를 때 눈물이 나와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도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주말 예능에선 <불후의 명곡>이 가요의 역사를 쓰며 과거의 풍성함을 보여주고, 가요프로그램에선 젊은 가수들이 새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구도만 된다면야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적어도 아직까진 한국 대중음악계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1990년대의 영광은 과거의 찬란한 꿈일 뿐이다.


 이런 때일수록 과거를 정리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뿌리가 튼튼하면 비록 잎이 마르더라도 나무가 쓰러지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한국 가요의 역사를 쓰며 한국 가수의 저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소중하다. <불후의 명곡>이 ‘불후의 명작’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불후의 명곡>을 보고 자란 세대가 또다시 불후의 명곡을 쏟아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