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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라디오스타 김구라 퇴출운동까지 초래한 대중정서의 힘

 

김구라가 라디오스타방송 때문에 난타당했다. 퇴출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김구라가 이번 주 방송에서 김생민을 무시하고 조롱했다는 것이 이유다. 

김생민의 절약하는 습관이 화두였다. 그는 부산 처제네 집에서 먹고 자며 아이스박스에 먹을 것을 담아 처제네와 함께 해변으로 나가는 것이 여름휴가라고 했다. 유일하게 바깥에서 쓰는 돈이 파라솔 대여비인데 그나마 두 집안 합쳐 한 개만 빌린다고 했다. 명품이나 커피전문점 커피 같은 건 사지 않고 무조건 아낀다. 

김구라는 이런 김생민의 생활태도를 아주 이상하게 여기며 조롱했다. 문제는 그렇게 조금이라도 아끼는 것이 대다수 평범한 서민의 삶이라는 점이다. 김구라가 서민을 조롱한 셈이 됐다.

 

후배들한테 술 살 일이 있을 때 닭하고 맥주로 9만 원 선에서 막는다는 김생민의 평범한 말을 아주 이상하게 여기는 장면도 서민에게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김생민이 본인보다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신동엽에게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에 짜증을 내는 모습도 납득이 어려웠다. 

김생민이 스타급 연예인들과 자신을 분리하며 스타들이 자기처럼 활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자 김구라는 화를 내며 김생민에게 이상한 피해의식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한 피해의식이 아니다. 스타급 연예인과 일반 패널급 리포터는 방송사의 대우에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김생민은 그동안 스타연예인이 아닌 그저 방송 직업인으로 출퇴근하며 생활비를 벌어온 사람이다. 엄청난 출연료와 칙사 대접까지 받는 연예인들을 바로 옆에서 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비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공감해주긴커녕 짜증을 낸 것이다. TV만 틀면 나오다시피하는 대한민국 최고 스타급 MC가 말이다. 심지어 김생민이 출발 비디오여행23년 한 것이 방송인의 꿈이라고까지 했다. 과연 고액 출연료 반납하고 일반 패널 정도로 활동하는 게 스타들의 꿈일까? 설마. 이러니 시청자들이 김구라의 말을 희롱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김구라가 출연자를 온갖 꼬투리를 잡아 막무가내로 공격하는 건 원래부터의 캐릭터여서 새삼 반감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하다. 만약 절약하는 사람들만 초대했으면 상황이 나았을 것이다. 하필 낭비하는 사람과 절약하는 사람을 동시에 출연시켜서 비교하게 만들었다. 그 상황에서 김구라가 낭비하는 역할인 조민기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달랐던 것이 화근이었다. 

조민기는 초고가 카메라와 렌즈를 샀다가 쓰지도 않았다’, ‘아이 게임기 사주러 일본에 다녀왔다’, ‘아이 가방도 일본에서 사왔는데 못 쓰겠더라’, ‘안경이 800개다등등 황당한 낭비담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김구라는 조민기에겐 김생민처럼 공격하지 않고 계속 존중해주는 태도를 취했다. 다른 MC가 안 좋게 이야기하면 컬렉터를 우습게 보지 말라며 조민기를 두둔하기까지 했다.

 

김구라는 과거 케이윌의 피규어를 우습게 다뤘다가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그 기억 때문에 낭비벽 조민기를 존중해야 할 컬렉터 프레임으로 대했을 수 있다. 김생민에겐 일반적인 짠돌이 놀리기 프레임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대비되는 바람에 파괴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김구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욜로족과 짠돌이특집이었다. 연예인 돈자랑, 낭비벽을 욜로족으로 미화하면서 서민적인 삶을 웃음거리로 삼는 포맷이었던 것이다. 그 구조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역할들을 했다. 돈이 아까워 스크린골프를 안 쳤다는 김생민을 우습게 본다든지, 밥값보다 비싼 커피전문점 커피를 주자 이렇게 비싼 커피를하며 고마워한 김생민을 바보 취급하기도 했다. 욜로족 출연자가 그렇게 아껴서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게 뭐예요?’라고 답답하다는 듯이 묻기도 했다. 서민들은 뭘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가족 부양하고 먹고 사는 과정 자체가 그런 건데 말이다.

 

이렇게 프로그램의 구조 자체가 아끼는 사람을 조롱하도록 짜인 것이었는데 김구라에게만 과도하게 비난이 집중된다. 김생민의 소심한 토크 스타일도 공격적인 스타일인 김구라를 가해자로 보이도록 했다. 김생민이 만약 들이받는 스타일이었다면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김생민이 구석에 수동적으로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도 그를 소외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예능이라고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일인데 지금처럼 엄청난 반발이 나타난 것은, 그만큼 이 시대 대중의 정서가 황폐하다는 걸 말해준다. 빈부격차로 인한 분노가 김구라한테 터진 것이다. 마침 연예인 금수저 논란으로 부의 세습 철옹성을 쌓는 부자 연예인에 대한 반감이 생긴 시점이라 더 논란이 커졌다. 이번 사건은, 대중의 사회경제적 분노를 이해 못하면 정치인뿐만 아니라 연예인에게까지 큰 일이 터질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