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가 2012년에 MC 해머와 함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에 섰을 때, 이런 광경을 당분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거라고들 했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이 다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에 섰다. 이번엔 공동 공연이 아닌 단독 공연이다.
방탄소년단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미국 데뷔 공연을 치른 것이다. 원래 주최 측에선 공동 공연을 제안했지만 방탄소년단 측에서 단독 공연을 요구해 성사시켰다고 한다.
그 결과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무대만 보면 영락없는 주말 ‘뮤직뱅크’ 화면인데 관중석에서 서양 사람들이 리액션을 하는 비현실적인 그림이 현실화된 것이다.
놀라운 점은 방탄소년단이 단지 출연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방탄소년단 공연이 그날의 하이라이트였다는 보도가 미국 매체에서 나올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다. 해당 공연 이후 구글 트렌드 검색어 1위에 오르고 트위터 언급량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폭발해, ‘세계 최다 트윗 그룹’이라는 타이틀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르게 됐다.
방탄소년단의 이번 미국 활동에선 또 다른 놀라운 광경이 연출됐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 쇼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집단적인 아이돌 응원 방식을 똑같이 따라한 것이다. 과거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장면이다.
미국에서 기존 한류의 한계를 넘어선 점도 놀랍다. 기존 한류가 아시아 커뮤니티의 여성들 중심이었다면 방탄소년단은 일반적인 10대~20대로까지 영향력을 넓혔다. 또, 여성을 넘어서서 서구의 젊은 남성들에게까지 호응을 얻었다.
그렇다고 ‘강남스타일’을 넘어섰다고 하기는 어렵다. ‘강남스타일’은 서구권에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보편적 호응을 얻어냈다. 반면에 방탄소년단은 아이돌이고, 아이돌 시장은 원래부터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방탄소년단이 싸이를 넘어섰다고 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강남스타일’과는 다른 열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0~20대 시장의 뜨거운 호응, 즉 ‘강남스타일’ 때와는 팬덤의 질적인 수준이 다른 것이다. 또, ‘강남스타일’이 우연한 사건이었다면 방탄소년단은 케이팝 제작시스템의 산업적 결실이란 점이 다르다.
‘강남스타일’이 떴다고 해서 다른 한류 그룹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지만, 방탄소년단 신드롬은 다른 한류 그룹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아이돌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우리 시스템이 만들어낸 다른 팀들의 성공 가능성까지 커지는 것이다. 방탄소년단 미국 인기의 산업적 의미다.
또 다른 의미는 한국인과 한국어의 위상 제고다. 싸이는 우스꽝스런 캐릭터로 떴다. 당시만 해도 서양 사람들이 한국 남성을 멋있다고 느끼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코믹한 B급 캐릭터가 동양인이 서양에 어필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봤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멋있는’ 스타일로 떴다. 서구 남성들까지 방탄소년단을 멋있다고 인정할 정도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방탄소년단은 한국인 멤버들로 구성돼 한국어로 노래하는 팀이다. 우리가 세계에 문화적으로 진출하는 데에 한국어는 넘기 힘든 장벽이라고 인식됐었다. 그래서 송승환이 ‘난타’를 만들 때 언어를 제거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한국어로 노래해 미국 라디오 방송망을 뚫었다. 이것도 근시일내에 가능할 거라고 여기지 못했던 일이다. 방탄소년단의 콘텐츠, 실력, 매력 등이 상상을 뛰어넘는 기적을 가능케 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이 완전히 뒤바뀐 건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전기를 마련해줬을 뿐이다. 이 정도만이라도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방탄소년단의 성과가 놀랍다. 한국 아이돌 산업이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이렇게 아이돌 산업만 발전하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방탄소년단의 성과는 경탄할 만하다. 부디 방탄소년단의 활동이 케이팝에 ‘방탄’ 보호막으로 작용해 한류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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