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드라마 전성시대다. 법의학자와 검사를 내세운 MBC '검법남녀‘, 판사들의 일상을 파고든 JTBC '미스 함무라비’, 최고 로펌 변호사들을 그린 KBS '슈츠‘, 악의 축인 판사와 그에 맞선 변호사를 그린 tvN '무법변호사’ 등이 법조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SBS에선 사기꾼과 검사의 이야기인 ‘스위치-세상을 바꿔라’가 얼마 전에 종영했고, 7월에 ‘친애하는 판사님께’가 방영될 예정이다. 각각의 드라마에서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다보니 이젠 사건과 사건이 겹쳐 헷갈릴 정도로 법조드라마가 폭주한다.
시청자들의 장르물에 대한 요구가 1차적인 이유다. 그동안 한국드라마는 사실상 멜로드라마로 일원화됐었다. 어느 장르를 내세워도 멜로라인이 핵심 주제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청자들을 식상하게 했다. 그즈음 미국 드라마가 국내에 널리 보급됐는데, 사건을 치밀하게 풀어가는 미국 드라마에 한국 젊은 시청자들이 호응했다. 지상파와 차별화해 젊은 시청자들을 공략하려 한 케이블 채널이 이 점에 주목해 사건을 풀어가는 장르물에 집중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자 지상파 방송사들까지 이 흐름에 동참해 장르물의 대유행, 법조드라마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엔 시청자들이 사건 뉴스를 많이 접하지 못했다. 종편이 활성화된 이후엔 하루 종일 사건 뉴스를 접하게 됐다.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그 사건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공권력에 대한 답답증, 범죄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반복하는 것 같은 사법부에 대한 공분이 일어났다. 흉악범죄에 대한 공포심도 커졌다. 이렇게 사건이 대중의 관심사가 되면서 사건 자체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장르로 부각됐다. 한때 침체기를 맞은 듯했던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사건 탐사 보도로 부흥했다. 각 매체들도 사건 부문을 강화하는 추세다. 그러자 드라마에서도 형사 또는 법조인들이 나와 사건을 파헤치게 됐다.
정의를 요구하는 시대분위기도 법조드라마 유행에 한몫했다. 대통령 탄핵심판과 국정농단 재판을 보며 결국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곳이 법정이라는 점을 대중이 절감했다. 100만 명 이상이 촛불집회를 할 때도, 힘에 의한 정권 전복이 아닌 적법 절차에 따른 권력 이양을 내세웠다. 적폐청산도 법에 의거해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다. 날마다 매스미디어를 장식하는 특검, 검찰, 판사들의 보도를 보며 사법시스템에 의한 정의실현을 욕망하게 됐다.
법조계에 대한 불신도 영향을 미쳤다. 법 지식과 인맥을 활용해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피해나가는 ‘법꾸라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만드는 전관예우, 행정부나 입법부에 비해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인 검찰과 법원에 대한 불신, 법으로 이득을 챙기고 권력에 굴종하는 법비(法匪)에 대한 분노가 올바른 법조계에 대한 열망을 낳았다. 그것이 법조드라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무법변호사’에선 지방도시에서 법비로 군림하며 대법원장이 되려는 판사를 응징한다. ‘슈츠’에선 검사의 증거조작을 밝히자 조직이기주의로 고발자를 공격하는 검사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스위치’에선 사기꾼이 검사가 되어 ‘법꾸라지’ 권력자를 잡아냈다. ‘미스 함무라비’에선 사법부 내부의 파벌, 차별, 행정처 중심의 보수적 조직문화 등이 그려졌다. 사건, 정의에 대한 관심과 법조계 개혁에의 요구가 이어지는 한 법조드라마의 인기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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