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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나저씨, 후계동 판타지가 전해준 위로

 

나의 아저씨가 오랫동안 기억될 만한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남녀주인공은 그리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식의 도식적인 해피엔딩이 아닌, 모두가 마음에 맺혔던 상처를 내려놓고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마무리였다 

인물들이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시청자의 마음도 평안해졌다. 이 작품의 인물들이 대단한 세속적 성취를 이뤘기 때문에 편안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곁에 있는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며, 자기 스스로 온 힘으로 꽉 붙들고 있었던 상처를 내려놨을 뿐이다. 보통의 삶 속에서, 보통의 사람으로,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이것이 감동을 주면서 시청자에게도 잠시나마 평안함을 선사한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 스스로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으면 나도 평안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것이 모두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를 드라마가 느끼게 해줬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상처를 치유 받은 사람은 당연히 주인공인 이지안(아이유)이다. 어렸을 때 살인을 저지르고 평생을 스스로 지은 감옥 속에서 살았다. 그런 이지안을 변하게 한 것은 도청이었다. 도청을 통해 박동훈(이선균)의 일상을 듣고, 후계동 사람들을 알게 됐다. 

처음에 박동훈의 동네가 후계동이라고 나와서 이상했다. 굳이 가상의 지역을 상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후계역이라는 지하철역까지 인위적으로 만들면서 작품은 박동훈의 동네를 현실에 없는 곳으로 만들었다.

 

후계동에선 박동훈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여전히 함께 어울리며 정을 나누고 살았다. 아픔이든 기쁨이든 무조건 함께 나눴다. 누구 하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불문곡직 힘이 돼줬다. 이들은 이지안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장을 떠들썩하게 지키며 우리가 남이가후계동 정신을 보여줬다. 

처음엔 지나친 아저씨 미화라는 지적도 있었다. 꼰대 소리를 듣는 현실의 아저씨들에 비해 너무나 이상화된 아저씨들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작품의 스토리와 상관없는 동네 아저씨들의 비중이 너무 큰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아저씨 미화의 진실이 드러났다. 왜 그들의 비중이 큰 지도 드러났다. 굳이 현실에 없는 후계동이라는 지역을 만든 것과 관련이 있었다. 바로, 인간적인 정취의 판타지를 그린 것이었다. 현실에 없기 때문에 현실 지명이 아닌 가상의 후계동이다.

 

메마르게 살던 이지안은 후계동의 삶을 접하면서 차츰 인간의 온기를 알게 된다. 웃지 못했던 그녀가 마침내 웃게 된다. 박동훈과 형제들, 이들과 모두 동창인 후계동 식구들의 세계는, 정글과도 같은 대기업의 생존투쟁과 확연히 대비되는 세상이었다. 사회적으론 대기업 임원들이 성공한 사람들이지만, 루저와도 같은 후계동 식구들이 훨씬 따뜻했고 행복했다. 대기업 임원들은 계속 해서 정글 속에 남았지만, 후계동 식구들과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평안을 찾았다.

 

시청자도 그런 모습을 보며 편안해졌다는 건, 모두가 후계동 식구들이 전해주는 삶의 가치, 삶의 모습에 공감했다는 뜻이다. 사회를 수직으로 보면서 위로 가기 위해서 안달복달하지 않고 옆과 함께 온기를 나누는 삶. 언제나 내 편이 돼주는 지인들과의 유대. 이해타산 따지지 않고 때론 돕고 때론 도움 받으며 같이 누리는 삶.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행복 

하지만 후계동은 판타지다. 우린 정글 같은 현실에 산다. 작품 속 대기업 삼안E&C 내부의 이전투구가 우리가 발 딛은 세상의 모습이다. 그럴수록 마음이 헛헛하고 결핍을 느낀다. 바로 그런 우리를 후계동 판타지가 위로해준 것이다. 이지안을 위로해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