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월화드라마 ‘너도 인간이니?’는 로봇 주인공을 내세웠다. 오로라 박사(김성령 분)는 재벌 2세와 결혼했지만 남편이 일찍 사망한다. 하나뿐인 아들 남신(서강준 분)을 키우며 살아가는데 후계자가 필요해진 재벌 회장 시아버지(박영규 분)가 남신을 강탈해간다. 아들을 잃은 오로라 박사는 남신과 똑같은 로봇(서강준 1인2역)을 만들어 마음을 달랜다. 재벌 경영권 다툼의 와중에 서종길 이사(유오성 분)의 청부로 남신이 피습당해 혼수상태에 빠진다. 오로라 박사는 로봇을 남신 대역으로 투입해 남신이 깨어날 때까지 남신의 자리를 지키려 한다. 이에 로봇 남신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 로봇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에 대한 호기심과 공포심이 커졌다. 대중정서와 시대변화를 반영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로봇 소재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MBC의 ‘보그맘’과 ‘로봇이 아니야’가 먼저 로봇 소재에 도전했지만 시청자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번엔 KBS가 ‘너도 인간이니?’로 로봇 소재에 도전한다.
도전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한국의 제작환경에서 로봇을 제대로 그리는 건 어렵다. 제작비와 특수효과의 한계 때문이다. ‘너도 인간이니?’는 이 문제를 사람과 똑같은 로봇이라는 설정으로 해결했다. 로봇이긴 하지만 사람과 똑같기 때문에 사람이 연기하면 특수효과를 많이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터미네이터’급의 액션도 물론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사람과 똑같은 로봇이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로봇 설정이긴 하지만 결국 남주인공이 초능력을 발휘하는 로맨스 드라마가 되었다.
- 초능력 남친의 계보 -
남주인공이 인간 아닌 존재로 초능력을 발휘해 여주인공을 지켜주는 로맨스는 최근 들어 대세가 됐다. 2012년에 영화 ‘늑대소년’이 히트했다. 괴력의 늑대소년인 송중기가 박보영을 지켜준다는 설정이다. 영화 홍보카피는 ‘영원히 지켜줄게’였다. 늙지 않는 특수한 존재이기 때문에 여주인공을 정말로 영원히 지켜줄 수 있다. 순정이 변치 않는 특수한 존재이기도 해서 사랑도 영원히 지킨다. 드라마에선 2013년작 MBC '구가의 서‘가 있다. 이승기가 구미호로 변하는 반인반수로 수지를 지켜줬다.
2013년 말엔 SBS ‘별에서 온 그대’가 대히트했다. 김수현이 별에서 온 초능력 외계인 역할이었다. 지구에 온지 400년이 지났어도 나이를 먹지 않고, 조선시대 때 좋아했던 여성을 환생한 현대에도 여전히 사랑한다. 400년 동안 부를 축적해 재벌 이상으로 부자이기도 했다. 2014년 ‘아이언맨’에선 몸에서 칼이 돋는 괴력의 남친이 등장했다. 재산도 많았다. 2015년 ‘밤을 걷는 선비’에선 이준기가 이유비를 구해주는 수호귀 뱀파이어로 나왔다.
2016년엔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가 최대 히트작이 됐다. 공유가 영원불멸의 존재이며, 신통력의 소유자이고, 재산도 재벌급인 도깨비였다. 도깨비가 사랑하는 단 한 명의 여성인 김고은은 무일푼에 오갈 데 없는 신세였다. 2017년엔 남주혁이 물의 신 하백으로 등장하는 ‘하백의 신부’가 방영됐다. 하백은 여주인공 신세경을 전생부터 변치 않는 마음으로 사랑했고 신력과 재력으로 지켜줬다. 여기서 신세경도 경제적으로 곤궁했다.
올해엔 김래원이 불멸의 존재이며 괴력의 소유자에 엄청난 재력을 갖추고 명민한 사업가이기까지 한 KBS '흑기사‘가 방영됐다. 여주인공 신세경은 거처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처지였고, 김래원은 신세경을 전생부터 현생까지 사랑했다. 그리고 현생에서 신세경이 늙어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다. 같은 기간 tvN에선 ’화유기‘가 방영됐다. 이승기가 불멸불사 제천대성 손오공인데 재벌을 부하로 둬 재력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재벌 3세 로봇이 나오는 ’너도 인간이니?‘가 등장한 것이다.
이런 인간 아닌 초능력 남친의 특징은 괴력, 불멸, 재력, 그리고 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능력과 재력으로 초라한 여성을 지켜주면서 그녀만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다. 여성이 늙어도 마음이 변치 않고, 죽어도 그 다음 환생을 기다리며 수절(?)한다. 다른 여성에겐 아예 눈길도 안 준다.
여성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로맨스의 대상이 과장되게 형상화된 캐릭터다. 로맨스 드라마들이 이어지면서 여성들이 요구하는 남자주인공의 능력치가 점점 올라갔고 급기야 재벌로도 모자라 초능력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너도 인간이니?’의 로봇 남신은 로봇의 물리력으로 여성을 구해주는 건 기본이고, 인공지능의 정보력으로 여성에게 맛집이나 좋은 메뉴를 순식간에 추천해주기까지 했다. 결정장애 시대에 맞는 데이트의 이상형이 표현된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 속 초능력 남친은 여성의 요구에 맞춰 진화한다. 궁극의 로맨스 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다.
- 인간다움을 묻다 -
‘너도 인간이니?’는 이런 로맨스 드라마의 설정에 진지한 물음도 추가했다. 바로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한 물음이다. 인간과 똑같이 생겼지만 로봇인 남신은, 과연 인간이 아닌 단순한 기계인 걸까? 기계니까 사용처가 없어지면 용도폐기하고 그의 뜻 따윈 무시해도 되는 걸까? 사랑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걸까? 한편,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과연 인간다운 인간인 걸까? 몸이 기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진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인간형 로봇이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의문들이다. 서구 영화에선 진작부터 다뤄왔던 질문이지만 우리 드라마에선 먼 나라 이야기였다. ‘너도 인간이니?’를 통해 드디어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도 로봇을 내세워 인간성을 묻기 시작했다.
극중에서 재벌 회장은 회사 증식을 위해 며느리로부터 손자를 무자비하게 빼앗아 자기 뜻대로 로봇처럼 훈육한다. 서종길 이사는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재벌 2세를 암살하고, 3세까지 해치려 한다. 이에 반해 로봇 남신은 인간의 소중함이란 가치를 지킨다. 로봇에게 입력된 로봇 3원칙 중에서 제1원칙이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로 인간의 소중함을 지키는 로봇이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보다 더 인간다움에 가깝지 않느냐고 작품을 말한다.
로봇 남신이 인간을 위해도 사람들은 그를 기계로만 대한다. 그때 작품은 로봇의 상처에 집중한다. 남주인공으로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초기 여주인공으로의 몰입 유도엔 실패했다. 여주인공이 비호감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의 캐릭터 반전과 둘의 로맨스에 한국형 로봇 드라마의 성패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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