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신재민 폭로사태, 지나친 과민반응인 이유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잇따른 폭로로 온 나라가 흔들렸다. 신 전 사무관은 문재인 정부에 실망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와 다른 게 무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감옥 갈 각오로 진실을 밝힌다는 것이다 

워낙 극단적인 표현으로 폭로에 나서 대중에게 충격을 줬다. 최순실 사태를 연 고영태의 폭로와 이 사건을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용을 차분히 따져보면 이게 그럴 정도까지의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먼저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KT&G 사장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기업은행을 통해 연임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만약 사실이라고 해도 임기 중간에 압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과거 정부가 국정원을 이용해 검찰총장 혼외자를 캔 것처럼 사생활을 캐서 흔든 것도 아니고, 연관된 사람들을 세무조사하면서 압박한 것도 아닌, 그저 임기를 마치고 연임하는 것에 대해 KT&G 주총에서 기업은행을 통해 6.93% 지분 만큼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게 과연 국정농단에 비견될 정도의 문제인지 의문이다.

 

신 전 사무관 말대로 청와대가 무리하게 나섰다면 영향력을 모두 행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KT&G의 최대주주는 9.09% 지분의 국민연금공단이고 기업은행은 6.93% 2대 주주다. 그런데 주총에서 국민연금공단이 기업은행과 다른 소리를 냈다고 한다. 기업은행이 연임 반대했는데 국민연금공단은 중립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신 전 사무관 주장이 흔들리는 대목이다. 어쨌든 기업은행은 6.93% 만큼의 목소리를 냈을 뿐이고 다른 주주들에 의해 묵살돼 KT&G 사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이게 그렇게 엄청난 잘못일까?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서울신문 사장도 밀어내려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서울신문 사장은 임기를 마치고도 2개월을 더 재직하고 그만 뒀다고 한다. 서울신문에선 기획재정부가 33.9%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KT&G보다 더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주주권을 발동하면 되는데, 그랬을 경우 신 전 사무관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벌써 논란이 터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란은 없었다. 

신 전 사무관은 2017년에 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높이기 위해 1조 원 바이백을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이백은 신구 국채를 교체하는 일종의 만기 연장 개념이어서 취소하든 실행하든 국가채무비율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신 전 사무관은 바이백을 부채를 갚는 조치처럼 이야기했는데, 부채를 갚을 때는 바이백이라고 하지 않고 조기 상환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신 전 사무관은 2017년에 청와대가 국가채무비율을 높이기 위해 4조원 적자국채 추가 발행을 밀어붙인 것이 부당하다고 했다. 그런데 기재부는 당시 4조원 국채를 발행했더라도 국가채무비율 증가폭이 매우 미미했을 것이기 때문에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의 사실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4조원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하자는 청와대의 의견은 결국 기재부에 의해서 묵살됐다. 청와대의 의견이 묵살된 것을 최순실 사태에 비할 정도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 일부 매체들이 기재부 직원들을 취재해 보도한 것을 보면 "신 전 사무관은 당시 다른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기억이나 들은 내용을 파편으로 모아 얘기하는 것 같다", "자기 생각, 느낌 이런 것들을 추정해서 지어내서 얘기하는 것 같은데 사실이 아니다", 이런 식의 반응이 나왔다. 이 점도 신 전 사무관의 주장에 의혹을 갖게 한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기재부에 의견을 제시하고, 기재부가 기업은행을 통해서 KT&G 주총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절대로 해선 안 될 잘못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특히 기재부를 마치 독립된 사법부처럼 여겨 청와대의 개입에 분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들이 그가 극단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로만 보면 신 전 사무관을 고영태에 빗대며 국정농단에 준하는 사태의 폭로라고 하는 건 과민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말 큰 문제들이 향후에 드러날 수도 있는데, 그건 그때 가서 판단할 일이다. 아직 그 정도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폭로만 나온 상황에서 지나치게 공론장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아닐까? 섣불리 상황을 규정하기보다, 추가로 나오는 사실관계들을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