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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렇게 질타할 일인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종영 후 공분이 일면서 역대급 비난이 터졌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일제히 분통을 터뜨리면서 송재정 작가를 공격했고, 다시는 송재정 작가의 작품을 보지 않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렇게 비난 받을 수준인지는 의문이다. 

이 작품은 증강현실로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사람이 실제로 죽고, 죽은 사람이 게임 캐릭터로 살아나 주인공을 공격하는 장면에선 거의 경악할 지경까지 됐다. 한국 드라마로선 보기 드문 상상력이었고 신선한 장면이었다. 매 주 다음 회를 기다리게 하는 이야기의 힘도 있었다. 이 정도면 기본은 훨씬 넘은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막판에 실망이 컸던 것은 초반에 너무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역대급 충격과 재미였기 때문에 엄청난 기대가 생겨났는데 후반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실망이 커졌다. 그래서 망작이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드라마 평균적 재미와 완성도가 30 정도라고 했을 때 이 작품은 처음에 90을 기대하게 했는데 끝나고 종합해보니 60 정도가 됐다. 이 정도면 100에 비해 실망스럽긴 해도 매도할 수준은 아니다.

 

회상 장면의 남발도 지적받았다. 그건 이 작품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과 연관이 있었다.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결과 먼저 보여주고 그 과정을 각자의 관점으로 표현했다. 그러다보니 자꾸 과거로 돌아갔던 것인데 이것은 회상의 남발이라기보다 그냥 작품의 서술 특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거기에 더해 인물의 속마음을 일일이 영상으로 보여준 것이 문제였다. 주인공이 우는데 그렇게 감정이 차오르게 된 과거 기억을 다 보여주고, 어떤 대사를 하면 그 대사와 이어진 앞 대사 장면을 다시 보여주고, 이런 식의 설명이 과도했다. 그런 정도는 시청자가 알아서 추측하게 놔뒀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진짜 회상 장면까지 더해지니 회상 지옥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이 일로 시청자가 과도한 과거 장면 재생을 호환마마보다 싫어한다는 것을 작가가 깨달아야 한다.

 

시청자가 실망하고 화가 난 가장 큰 이유는 충격적인 게임 설정의 이유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설정으로 충격을 줬으면 그 이유가 나와야 했다. 설정이 경악스러울수록 시청자는 설명을 갈구했는데 그게 마지막에 거대한 실망을 잉태했다. 평화 캐릭터인 엠마 주위에서 실제로 칼부림이 일어나 버그가 생겼다는 식의 허술한 설명은 차라리 안 하니만 못 했다.

 

다음부터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다면 아예 설명에 대한 기대 자체를 차단하는 방법을 고민할 일이다. 그러니까 이번처럼 사람들이 시원한 설명을 잔뜩 기대하게 만들었다가 막판에 실망시키지 말고, 대놓고 처음부터 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신비하게 그렇게 됐다고 정해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나인에서도 향을 태우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황당한 설정이 나왔지만 시청자는 설명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신비로운 향이라고 정해놨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컨대, 시작할 때 세주가 프로그램 짜는 중에 괴이한 번개가 치든 해서 게임에 신비로운 힘이 들어갔다고 묻지마로 정해놨으면 시청자가 설명을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판타지로 받아들인다.

 

기본 설정에 대해선 그렇게 단순하게 넘긴 다음에, 그렇게 신비로운 힘에 의해 생긴 새로운 세계관에 대해선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그 내용을 설명해야 한다. 이 작품에선 막판에 정작 버그의 출발점인 마르코 등은 정리되지 않고, 재가 된 현빈이 살아있는 등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나타났다. 이런 세부적인 부분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설명해줘야 시청자가 작품을 뛰어난 명작이라고 느낀다. 

, 주변 인물들을 병풍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조금의 능동성을 부여하는 것이 극의 활력을 강화한다. 민폐 답답 세주와 눈물바람 희주가 능동적으로 유진우와 협력해 사람 죽이는 게임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유진우가 스스로 희생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이었으면 시청자가 보다 만족했을 것이다.

 

이런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기억할 만한 신선한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송재정 작가는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차기작이 궁금한 작가 중의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