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에 엄청난 흥행열기가 나타난다. 평일에도 50만 명 내외의 관객이 든다는 점이 너무나 놀랍다. 블록버스터 대작 또는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키는 작품에게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지어 지난 토요일엔 하루에 99만 관객을 동원해 ‘신과함께-죄와벌’이 보유했던 역대 1월 하루 최다 관객 수 기록(91만 6천명)을 깨기도 했다. 했다. 이 정도면 천만 돌파는 기정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간판인 류승룡은 한때 천만 영화를 세 편이나 배출할 정도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지만 최근엔 침체기였다. 전작인 '염력'과 '7년의 밤'이 백만도 못 넘었고, 류승룡 개인에 대해서도 대중이 피로감을 표명하고 있었다.
류승룡을 받치는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도 관객동원력이 보증된 은막스타들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이병헌 감독도 일부 영화팬들 사이에선 유명하지만 천만 관객을 노릴 정도의 인지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신과함께’와 같은 막대한 제작비, 볼거리도 없다. 일반적인 한국 코미디 영화 정도의 느낌인데 생각 밖으로 엄청나게 터졌다.
코미디로서 평균 이상은 확실히 웃긴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웃기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액션도 기본은 한다는 정도의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 내용만 보면 천만을 바라볼 정도로 엄청난 흥행 열기가 터진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 개봉 시점의 관객 심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크게 히트했다.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내부자들’ 등이 그랬다. ‘신과함께’와 같은 거대 규모의 블록버스터나 범죄물도 흥행했다.
그러다보니 한국 영화 기대작들이 점차 무거워지거나 거대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올 겨울에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 ‘마약왕’, ‘PMC:더 벙커’를 비롯해 지난 추석의 ‘안시성’, ‘협상’, 지난 여름의 ‘인랑’ 등 기대작들이 모두 그런 분위기였다. 제작자들은 무겁거나 거대한 작품에 사회 메시지 또는 감동 코드를 집어넣으면 흥행이 될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 같다. 그 결과 그런 작품들이 너무 많아지니 관객이 지쳐버렸다.
마침 그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극한직업’이 나타났고 무게와 감동에 지친 관객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요즘 한국영화는 코미디라 할지라도 막판 눈물 코드를 강박적으로 집어넣는 경향이 있었는데 ‘극한직업’은 그런 부담스러움까지도 모두 덜어냈다.
거친 말투와 행동거지의 사람들이 치고받으면서 웃음을 주는 모습은 마치 90년대나 2000년대 초의 코미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깜짝 대흥행이 터진 것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웃을 일이 없는 것도 코미디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한국 영화계의 사회물 흥행불패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표현이 억압됐던 시절엔 영화를 통한 꼬집기에 관객이 열광했지만 정권이 교체되고 나자 그 에너지가 한풀 꺾였다. 박근혜 정부가 CJ엔터테인먼트를 좌파 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비판적 영화가 부각됐던 것은 그게 장사가 됐기 때문이었는데, 비판코드를 완전히 뺀 ‘극한직업’도 CJ엔터테인먼트 배급작이다. 기업은 결국 장사가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극한직업’에 나타나는 뜨거운 반응을 보고 또 모든 영화업계가 90년대~2000년대 초반처럼 비슷비슷한 코미디만 내놓는다면 관객은 또다시 등을 돌릴 수 있다. 뭐든지 ‘몰빵’은 피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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