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캡틴 마블, 대놓고 페미니즘 영화가 맞았다

(일부 스포일러 있음)

캡틴 마블은 개봉 전부터 페미니즘 논란에 휩싸였다. 주연인 브리 라슨이 원래 페미니스트라고 알려졌고, 그녀 스스로 “(‘캡틴 마블) 위대한 페미니스트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영화라고 했다. 감독 중의 한 명도 여성이고, 작가진도 여성 위주이며, 북미 개봉일을 세계 여성의 날에 맞췄다 

요즘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에 대한 반발도 커진다. 그래서 개봉 전부터 해외에서 캡틴 마블반대 움직임이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외국보다 더 극심해 혐오 대립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래서 캡틴 마블에 대해 평점테러가 나타나며 극단적 비난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개봉되고 나니 페미니즘 색채가 의외로 강하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그냥 히어로 액션 영화인데, 페미니즘으로 마케팅을 했을 뿐이고 사람들이 휘둘렸다는 것이다. 그 말대로 전면적으로 페미니즘을 내세우지 않은 건 맞다. 하지만 히어로 영화의 틀 안에 여성주의의 코드를 분명히 장착했다. 그런 점에서 개봉 전의 소문대로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가 맞다.

 

영화는 초반에 주인공이 여성이기 때문에 좌절을 겪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어린이 자동차 경기장에 오빠만 데려가려는 아버지, 운동경기를 하다 무너지는 모습, 여성이라서 파일럿이 될 수 없다는 조롱을 듣는 모습 등이다. 

외계인 남성 대장에겐 감정적이 되지 말라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듣는다. 여성은 감정을 앞세워 눈물을 잘 흘리고 이성적인 업무처리를 못 한다는 편견의 표현이다.

 

캡틴 마블은 통제장치를 벗어던지며 각성한다. 그때 영화는 여성들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각성한 후에는 여성 보컬 록그룹 노 다웃(No Doubt)저스트 어 걸(Just a Girl)’이 흐른다. 주인공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각성하는 장면인데 굳이 여성들의 자각을 연결시키고, 남녀를 초월한 초인이 된 주인공의 모습을 남성들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여성으로 연결시키는 설정은 억지스럽다. 어쨌든 그런 억지스러운 설정을 할 정도로 이 영화는 페미니즘을 강력히 내세운다. 마지막엔 또 다른 여성 보컬 록그룹인 홀의 노래도 배치했다.

 

그밖에 공중전을 벌이는 파일럿도 여성이고, 에너지 코어를 개발하는 박사도 여성이며, 캡틴 마블과 여성 친구는 깊은 우정의 워맨스를 형상화한다. 반면에 감정적이 되지 말라며 훈계하던 외계인 남성 대장은 캡틴 마블에게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그는 캡틴 마블에게 힘을 증명하라고 하지만 캡틴 마블은 너에게 증명할 필요 없다며 남성의 시선,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여성상을 구현한다. 이러니 작심하고 페미니즘 영화다. 

그동안 영웅 액션 활극은 철저히 남성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여성을 내세우는 작품의 등장이 반갑다. 지금 수많은 누리꾼들이 이 작품에 반발하고 있는데, 여성 히어로 단독작은 이제 두 편 나왔을 뿐이다. ‘원더우먼캡틴 마블인데 반면에 그동안 남성 히어로 작품은 무수히 많았다. 여성 히어로물 두 편 정도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발할 이유가 있을까?

 

사람들은 브리 라슨의 인성을 문제 삼기도 하는데, 남성 액션 주인공들도 인생사 털어보면 문제점은 많다. 굳이 브리 라슨의 인성에 예민하게 집착하는 것 자체가 여성 히어로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외모지상주의가 이 영화에 대한 반감에 한몫했다. 우리는 전형적 미모가 아닌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데 남성들이 느끼는 전형적 미인상에서 벗어난 배우를 낙점한 것 자체가 제작진의 기획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델을 캐스팅한 원더우먼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일부 누리꾼이 브리 라슨의 턱이 각이 졌다며 조롱하고 거부감을 보이는데, 그 부분도 제작진의 기획일 수 있다. 우리는 무조건 계란형 얼굴에 집착하지만 미국에선 각진 턱이 강인한 남성의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 바로 그런 강인함을 여성의 얼굴에서 찾은 것이다.

 

다만 아쉬운 건 브리 라슨의 액션 구현력이 아직 미진하다는 점이다. 액션영화 주인공이 몸을 잘 못 쓰는 건 문제다. 캡틴 마블의 전투력이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다른 어벤져스 멤버들과 비교가 안 된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저스티스 리그에서 슈퍼맨이 혼자 너무 강해 영화가 맥이 빠졌는데 앞으로 어벤져스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할까? 미래에 대한 이런 우려는 있지만 아무튼 지금 개봉한 캡틴 마블만큼은 나쁘지 않게 나왔다. 그렇게 비난하면서 평점테러를 가할 수준은 아니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