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이 세상을 떠나고 5년이 흘렀다. 지난 주말에 추모식이 거행됐고, 노들섬라이브하우스에선 신해철 5주기 추모 콘서트가 열렸다. 무엇보다도 MBC ‘놀면 뭐하나?’ 유플래쉬 특집 마지막회에서 신해철의 미발표곡을 테마로 한 노래를 발표하며 그를 기렸다. 신해철이 어떤 가수이길래 세상을 떠나고 5년이 지난 후까지도 이렇게 주목 받는 것일까? 

신해철은 단지 인기 가수 한 명에 그치지 않는, 한국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의 뮤지션이었다. 그가 보여준 음악적 가치나 성찰의 치열함, 사회를 향한 열정적인 외침을 이어받은 후배가 없기 때문에 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요즘 주류 뮤지션들은 과거보다 많이 세련돼졌고 세계 트렌드에도 발 빠르게 조응한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신해철처럼 성찰과 참여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신해철은 밴드로 시작했지만 아이돌 같은 느낌의 학사 꽃미남 가수로 솔로 데뷔했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내 마음 깊은 곳의 너같은 발라드를 발표해 곧바로 청춘스타가 됐다. 이대로 갔으면 순탄한 스타의 길을 걸었을 텐데, 그는 한국에서 가시밭길이라고 할 수 있는 록밴드를 조직했다.

 

그런데도 또다시 상업적 성공을 거둬냈다. 한국 가요계에선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으로 혁명적 변화가 나타나며 가수들의 세대교체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그 속에서 80년대 분위기의 노래들이 급속히 밀려났는데, 신해철의 밴드 넥스트는 혁신적인 사운드로 90년대를 선도하며 도시인이라는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90년대 초에 락카페라는 것이 나타나 당대 젊은이들의 아지트가 됐다. 전통적인 댄스음악을 틀어주는 나이트클럽과는 달리, 최신 팝과 세련된 가요를 주로 틀었고 오늘날 클럽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락카페 DJ들이 선곡하는 대표적인 국내 뮤지션 중 하나가 신해철이었다.

 

신해철은 본격적으로 랩을 가요에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안녕에서 영어 랩을 시도한 후, ‘재즈 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등에서 한국어 랩을 심화시켰다. 그후 서태지와 아이들이 팝의 리듬감을 따라잡는 한국어 랩으로 랩 혁명을 일으켰다. 신해철은 그런 댄스 리듬의 랩이 아닌, 성찰적 의미를 담은 랩을 발전시켰다. 이 성찰의 깊이가 우리 가요 역사에서 독보적이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이 쓴 이런 가사에 울림이 큰 것은, 그의 삶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유행가 스타로 편안하게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데, 그 길을 마다하고 록밴드를 조직하는가 하면 음악실험과 사회참여로 가시밭길을 자처했다 

그의 앨범은 여타 앨범에 비해 충실도의 차원이 달랐다. 일반적인 앨범은 싱글 몇 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그 외의 무난한 곡들로 채워진다. 반면에 신해철은 앨범 한 장을 낼 때마다 피를 토하듯 수록곡 전체에 고뇌의 시간을 새겨놓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것이 그의 생명력을 갉아먹었는지도 모른다.

 

록음악은 대중적이지 않다. 이미 록음악 자체가 그런데 신해철은 록음악 중에서도 더 비상업적인 길로 갔다. 우리 가요의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프로그레시브 록을 시도한 것이다. ‘그대에게와 같은 상업적인 록음악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그렇게 돈이 되는 길로는 가지 않았다. 

그렇게 독보적인 음악적 형식에 신해철만의 성찰적 가사를 얹어 전대미문의 경지로 나아갔다. 음악실험에만 파묻힌 것도 아니다. 연예인이 사회적 발언을 할 경우 공격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끊임없이 사회에 파열음을 내며 시대와 불화했다.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그는 사람들이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잊고 살아간다고 한탄했다. 그런 속에서 그만은 상처 입은 분노를 안고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뮤지션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해철의 존재감을 이을 후배가 스타급 주류 가수 중에선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 실험적 음악도, 성찰적 가사도, 사회적 발언도 지금은 희귀하다. 그래서 신해철의 의미가 지금도 각별하고 그의 부재가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그는 비록 갔지만 그의 음악과 열정은 후배들의 길을 밝혀주는 빛으로 남았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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