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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엑소 첸 탈퇴하라는 팬덤 갑질

 

신종 팬덤 갑질 시대다. 엑소 첸의 퇴진을 요구하는 팬클럽 성명서가 발표되더니, ‘첸 탈퇴해’, ‘chen out'을 내건 시위까지 나타났다. 팬 무서워서 아이돌 해먹기힘들겠다.

이 사태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첸의 결혼 발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남이야 결혼을 하든 말든 제3자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특히 팬이라면 축하해줄 일이다. 첸은 이번에 2세 소식까지 알렸는데, 이것도 당연히 축하해줄 일이다. 물론 갓 데뷔한 아이돌 멤버가 결혼한다면 다른 멤버들에게 민폐일 수 있지만, 엑소는 데뷔 8년차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에 배신감을 느꼈다는 팬들이 속출하더니 급기야 퇴출 요구와 시위까지 나타난 것이다. 누구를 좋아하다가 안 좋아지면 안 좋아하면 그만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집단적으로 퇴출요구까지 하며 공포감을 조장하는 것은 당연히 갑질이고 협박이다.

 

과거부터 청춘스타 팬덤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팬들은 청춘스타에게 유사연애 감정을 품는데 청춘스타가 자기 짝을 갖는 순간 유사연애 판타지가 깨지기 때문에 실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열애설이 나면 청춘스타 팬덤이 반토막 난다는 말이 있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팬덤이 떨어져나가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집단적으로 퇴출요구까지 한다는 점이 문제다. 퇴출요구를 하려면 범죄라든가 그밖에 반사회적, 비도덕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 빅뱅에서 퇴출된 승리가 그런 경우라고 하겠다.

 

하지만 결혼과 2세는 반사회적 행위가 아니고 범죄는 더더욱 아니다. 그 반대로 사회적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다. 요즘 비혼 저출산이 우리 사회에 위협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이걸 빌미로 팬덤이 퇴출을 요구하는 건 황당하다. 

팬덤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커진 시대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요즘엔 팬덤이 스타를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신인시절부터 팬들이 열과 성을 다해 스타를 육성하고, 특히 오디션이 유행한 다음부터는 팬이 스타를 만든다는 관념이 보편화됐다.

 

그러다보니 팬덤이 마치 스타에게 어떤 지분을 가진 투자자처럼 행세하게 됐다. 스타가 자신들에게 빚졌다는 채권자 의식도 생겨났다스타가 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을 때 스타를 꾸짖으며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려 드는 것이다. 

윤리적 관점도 생겼다. 스타가 정해진 연예인의 규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건 윤리적이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건 비윤리적이라고 여긴다. ‘꿈을 향한 열정’, ‘프로다운 성실한 태도를 찬미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걸 악덕이라고 여기게 됐다. 그래서 신인 스타가 연애에 한눈을 팔면 나태라는 악덕을 저지른 것이고, 기성 스타가 결혼을 하면 프로의 도의를 저버린 것이 된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팬덤이 열애, 결혼을 발표한 스타를 윤리적으로 준엄하게 꾸짖는 것이다.

 

여기에 다중의 목소리가 커진 시대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개인들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목소리를 내는 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도 그런 개인들의 목소리가 영향을 미쳤다. 뭔가에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해지다보니 아이돌 팬덤의 목소리와 행동력도 더 커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첸의 퇴출 선언이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결혼과 2세 소식에서 비롯된 소동이라는 점이 황당하다. 범죄도 아니고 반사회적 행위도 아닌, 축하해줄 일인데 말이다.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헛웃음이 나올 일이다. 

팬덤이 스타를 쥐고 흔들려는 갑질 의식이 문제다. 팬은 그 뮤지션을 좋아해주는 사람이고, 뮤지션은 그런 팬과 대중을 위해 음악활동을 정상적으로 하면 된다. 사생활까지 팬의 결재를 받을 이유가 없다. 팬들이 뮤지션의 음악에 집중하고, 음악을 응원해주는 문화가 발전해야 케이팝의 수준도 더 올라갈 것이다. 결혼 같은 이슈에 집중하면 음악적 발전은 공염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