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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혐오 이용 정치, 신종 코로나마저 정쟁수단인가

 

한국당 측이 우한 폐렴이라는 명칭을 또 고집했다. 30일 국회 최고위원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황교안 대표가 우한 폐렴이라고 말하며 "처음에 우리(한국당)가 우한 폐렴이라고 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국민에게 편한 표현을 쓰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최고위원회에선 더 격한 발언이 나왔다. 조경태 최고위원이 "우한 폐렴을 우한 폐렴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더불어민주당, 과연 국민의 대표라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만 중국에 대해서 한없이 약한 정권"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황교안 대표는 그 전날인 29일에도 우한 폐렴이라며 명칭 문제를 언급했었다. 당연히 명칭 논란이 일었는데 이틀에 걸쳐 또 명칭 논란을 제기한 것이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 감염병의 명칭을 전한 것을 두고 친중적 기조 때문이라며 비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실은 우한 폐렴을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우한 폐렴이 아니니까 우한 폐렴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사건 초기엔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우한이라는 지역에서 폐렴 증상의 감염병이 유행했으므로 우한 폐렴이라고 잠정적으로 지칭했을 뿐이다. 그게 공식 명칭이 아니었다. 공식 명칭이 나오면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게 당연하다.

 

공식 명칭이 나왔다. WTO‘2019 노벨 코로나바이러스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조차도 아직 임시라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공식명칭이 나왔기 때문에 현 단계에선 지금 나온 이름을 부르면 된다. 다만 노벨이 새롭다는 뜻의 외국어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번역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이름을 정부가 전한 것이다. 이름이 그렇다면 그렇게 쓰면 된다. 이걸 정치권이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이제부터 국제적 공식 명칭도 정당 따라 달리 쓸 것인가? 

1차 공식명칭을 이런 식으로 정한 건 선진 시민사회의 수준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과거엔 부정적인 사건에 지역 이름을 아무 생각 없이 붙였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태안기름유출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의식이 올라가면서, 함부로 지역에 낙인이 될 만한 이름을 붙이는 건 반인륜적이라는 각성이 생겼다. 그래서 이춘재살인사건, 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로 이름이 바뀌었다. 

물론 이춘재살인사건은 범인이 밝혀져 이름이 바뀔 계기가 생긴 탓도 있지만, 어쨌든 그 전부터 화성이라는 지역을 콕 집어서 언급하지는 말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다수의 편리함을 위해 소수의 억울함을 무시하던 문화에서, 다수가 불편해지더라도 소수의 억울함을 돌아보자는 문화로 바뀐 것이다. 이런 걸 바로 시민의식의 성숙이라고 한다.

 

외국도 그렇다. 과거엔 감염병 사태에 지역 이름을 아무 생각 없이 붙였었다. 20세기 최악의 전염병 사태인 스페인 독감부터 홍콩독감, 에볼라바이러스, 지카바이러스, 메르스에 이르기까지. 메르스는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뜻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관행이 특정 지역, 민족에 낙인을 찍고 혐오를 조장한다는 인식 하에 메르스 발병 직후인 2015년에 WHO가 감염병 명명 원칙을 새롭게 정했다.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식품 종류, 문화, 주민·국민, 산업, 직업군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2019년에 생긴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1차 공식명칭에 ‘2019 노벨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문재인 정권의 정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배경인데도 한국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문제 삼으며 감염병 사태를 정쟁에 이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것이 국가적 재난에 임하는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당을 비롯한 일부 보수정치세력에선 현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듯한 태도가 그전부터 나왔었다. WHO가 감염병 때문에 여행과 무역에 제한을 두지 말라고 하고, 아직 국제비상사태도 선포되지 않았으며, 한국의 메르스 사태 때 다른 나라에서 한국인 입국 금지를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인 입국 금지를 주장하며 국민의 공포심과 혐중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메르스 사태 때 한국인 입국 금지를 주장한 건 일본 우익이었는데, 한국당에서 같은 수준의 주장을 했다. 

어떤 보수 패널은 우한에서 수송해온 한국인을 수용하는 문제에 대해 지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지역반발을 부추기는 듯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확진환자를 서울 또는 수도권 지역 대형병원으로 옮겨 수용하는 것에 서울시민에게 양해나 동의를 구한 적 없고 그냥 행정절차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행정에 지금까지 문제제기도 없었다. 그럼에도 진천과 아산 등에서 반발 조짐이 나타나니까 그 지역 정서를 이용부터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것이 감염병 사태로 정부를 공격해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반사이익을 보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하지만 감염병 사태는 전 국민에게 닥친 위기이고 국가적 재난이다. 공당이 이럴 때 혼란, 공포, 혐오를 부추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과연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한국당의 보다 책임 있는 자세가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