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가족 같아서 갑질했으면 유산을 줘야

 

이순재가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부인이 매니저에게 사적인 집안일을 시켰다는 것이다. 이순재는 이에 대해 도의적 책임이 있지만 보도가 과장됐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매니저의 근로 조건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는 건 나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물론 가이드라인도 만들고, 매니저에 대한 갑질을 처벌할 법규정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꼭 가이드라인이 있어야만 갑질을 방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건 상식의 문제다. 노동자는 정해진 돈을 받고 정해진 일을 하는 사람이다. 돈은 정해진 만큼 주면서 일은 한도 없이 시키면 안 된다. 과거 우리 사회 일각에선 내 돈을 주는 이상 하대해도 되고 무슨 일이든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순재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반적 악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그런 악습이 완전히 근절돼야 한다. 

상대를 부적절하게 대하거나 과중한 일을 시킬 때 가족 같아서 그랬다는 말도 종종 나온다. 이순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 같은 개념에서 시작한 것이다. 아내가 손주, 아들 같은 생각에 말도 놓고 그랬는데, 그 친구는 나이가 40대였다보니 그런 정서가 좀 불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의 최초 보도에도 “A (이순재)와 회사 측은 이전 매니저들은 가족 같았기 때문에 집안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가족처럼 여겼다는 말이 공사 구분 없이 일을 시킨 것에 대한 알리바이가 되면 안 된다. 이번 이순재 논란의 진실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갑질 논란에 가족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부적절하다. 과거부터 이런 용법이 악용된 사례가 누적됐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예를 들어, 공관병 갑질 논란 당시 박찬주 사령관이 아들처럼 생각해 편하게 대한 건데 일부 소통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해서 논란이 됐었다. 가족이란 말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성범죄 사건에도 가족 비슷한 용법이 많이 등장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박희재 전 국회의장의 캐디 성추행 사건이다. 당시 박 전 의장은 "손녀 같아서 귀엽다는 표시는 했지만 정도를 넘지 않았다"며 손녀를 언급해 공분을 샀다. 

2016년엔 한 목사가 젊은 여신도를 성추행했는데 딸 같은 아이였다. 사랑이다. 부모가 아이들한테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2017년엔 10대 제자를 성추행한 태권도 관장이 적발됐다. 그 관장은 "딸 같아서 이러는 거다"라며 강제로 입맞춤을 한 혐의 등을 받았다. 2018년엔 한 업체 회장이 자신보다 훨씬 어린 자사 매장 여성 점주에게 수십 차례 음란 메시지를 보낸 것이 드러났다. 그 회장은 친딸 같이 내가 돌봐줬다. 아버지 같으니까 장난을 쳤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부당한 일을 하고 가족처럼 생각했다고 해명한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이순재 논란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가족이란 단어가 언급됐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이런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가족이란 말이 얼마나 많이 악용됐던지 갑질을 비판하는 김신영의 노래 주라주라가족이라 하지 마이소.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라는 가사까지 있다. 

원칙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 앞으로 갑이 을에게 정해진 노동의 범위를 벗어난 지시를 하거나, 혹은 인격적 무시, 혹은 추행 등 부당한 행위를 하며 가족 운운하는 순간 바로 대상자의 상속권을 인정해주는 원칙 말이다. 가족처럼 생각하면 유산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활하고 여가도 즐길 만큼의 용돈도 주고, 결혼하면 보금자리 마련하는 것도 도와주고, 유산까지 일정 부분 남겨줘야 가족처럼 여겼다는 말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